[몰비춤]밀양, 잊지 않겠습니다 "웃어요 할매"

밀양 사태는 국가폭력의 민낯을 생생히 보여줬다. 정부와 한전, 경찰은 국가사업이라는 공익성을 내세우며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주민들은 법원 문도 두드렸지만 공익사업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결론뿐이었다.

온전히 살고 싶다는 목소리는 폭력에 짓밟혔다. 주민들의 저항이 격렬한 만큼 짓누르는 힘도 셌다. 사회적인 파장도 컸다. 왜 밀양 주민들이 싸우는지? 편하게 쓰는 전기가 왜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하는지? 핵발전소가 왜 문제인지? 그 깨달음은 전국에서 두 차례나 밀양희망버스로 이어졌다.

지난 10년 세월을 주민들은 온몸으로 맞섰다. 그러나 희생도 컸다. 주민 두 분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12년 1월 산외면 보라마을 이치우(당시 74세) 씨가 분신을 했고, 2013년 12월 상동면 고정마을 유한숙(당시 74세) 씨가 음독을 했다.

오랫동안 이뤄왔던 마을공동체는 갈가리 찢겼다. 정부와 한전은 오로지 돈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마을발전기금, 개별보상을 둘러싼 분란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지난 2009년 주민들의 민원을 받은 국민권익위원회는 갈등조정위원회를 열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지난 2013년 5월 공사재개 때는 국회 중재로 전문가협의체를 꾸렸지만 다수에 밀려 '대안이 없다'는 결론을 낸 보고서가 나왔을 뿐이다.

▲ 한전이 밀양구간 철탑 조립 공사를 마친 지난 9월 23일 오전 11시 밀양시청 앞에서 주민들이 "공권력과 돈으로 세운 철탑, 우리는 한 기도 허락하지 않았다"며 철탑을 뽑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경남도민일보DB

이후 정부와 한전은 공사재개를 위한 수순을 밟았다. 9월 정홍원 국무총리가 밀양을 방문해 '대승적 결단'을 주민에게 요구하며 보상만 내세웠다. 노선변경 등 우회송전, 지중화 요구는 씨도 먹히지 않았다. '보상 필요없다'고 밝혀왔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전은 지난해 10월 경찰 3000명을 내세워 공사를 밀어붙였다. 충돌 현장마다 아수라장이었다. 밀양 주민에게 인권은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별 대응을 하지 못했다. 부상은 다반사였고, 수없이 병원에 실려갔다. 구속사태도 생기고 많은 주민이 사법처리됐다.

국가폭력은 지난 6월 11일 철탑예정지 농성움막 강제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에서 절정에 달했다. 경찰은 칼을 들고 천막을 찢으며 직접 철거에 나섰고, 주민들을 끌어냈다. 할매들이 목에 쇠사슬을 감고 옷을 벗어 던져도 소용없었다.

공사는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한전은 지난달 23일 밀양구간 69기 송전탑 조립공사를 마쳤다고 했다. 11월까지 전선가설공사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국민 모두를 위한 공익사업이라는 점에서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고 이해를 해주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한전이 철탑을 완공했다고 한 날 주민들과 연대자 230여 명은 밀양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철탑뽑기 공사선언'을 했다.

할매들은 나무로 만든 송전탑 철거 상징의식에서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쏟아냈다. 신발을 벗어 두드리고 들고 온 우산이 휠 정도로 내리쳤다. 짓밟혔던 아픔을 되갚듯 나무송전탑을 마디마디 부러뜨려 가루를 냈다.

부북면 동래할매는 사람들에게 끝나지 않은 밀양 싸움을 많이 알려달라고 한다. "우리만의 일이 아니니까. 우리야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지만 후손들이 문제니까."

지난 6월 11일 행정대집행으로 농성움막이 뜯겨나간 자리에 높이 100m 송전탑이 들어섰다. 가설 공사가 진행 중인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화악산 127번 철탑. /표세호 기자

주민들은 새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과지 8개 마을에 다시 움막을 지어 촛불문화제를 열고, 도시민과 만나는 밀양 장터를 열고 있다.

법적 투쟁도 진행 중이다.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받았던 폭력과 인권유린에 대한 국가배상소송과 헌법소원, 송전탑 건설 명분만 만들어주는 현실성 없는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보상·지원법에 대한 위헌소송도 준비 중이다.

밀양 주민들은 손을 잡아줄 이들을 기다린다. 송전탑 때문에 괴로워하다 세상을 떠난 유한숙 할배는 10개월째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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