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 밀양, 잊지않겠습니다 "웃어요 할매"

할매 두 분이 민화투를 치고 있었다. 동전 대신 돌멩이 바구니를 옆에 놓고 화툿장을 맞추는 모습은 평온했다.

765㎸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다시 지은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움막을 찾은 지난달 29일 풍경이다.

움막에서 보이는 위양리 화악산 기슭에는 철탑이 솟았다. 빨랫줄 같은 전선을 거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철탑을 쳐다보는 밀양 주민들은 아프다. '누구는 보상받았다', '끝났는데 쉬시라'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땐 속이 상한다. 잊힐까 두렵다. 

손희경(78) 할매는 부북면 덕촌마을에서 시집왔다고 '덕촌할매', 정임출(73) 할매는 동래 정씨라고 '동래할매'라 부른다. 다큐 <밀양전>에서 밀양 싸움을 전해준 주인공들이다.

덕촌할매는 "내가 장군이면 철탑을 뽑을 건데"라며 손을 휘저었다. 덕촌할매는 17살에 대대로 위양리에 뿌리내리고 살던 권씨 집안에 시집왔다. 허리는 굽고 몸무게 34㎏의 가냘픈 몸으로 산을 오르고 움막을 지키며 싸워왔다.

밤 기온이 차가워진 이맘때다. 지난해 10월 2일 한국전력은 경찰 3000명을 앞세워 밀양 초고압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 밀양에는 전쟁 같은 날이 계속됐다. 산을 오르다 막아선 경찰과 충돌하고, 병원에 실려갔던 할매들은 다시 맞섰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움막을 짓고 새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주민 손을 잡으려고 오는 연대자들 발길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부북면 위양리 움막의 주민과 연대자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부산에서 온 김일석 시인과 박운제 씨, 밀양 시민 정수 씨, 위양리 주민 손희경 할매, 정임출 할매와 윤여림 할배 부부. /표세호 기자

그렇게 지난 1년, 한전은 밀양 구간 철탑 조립공사를 최근에 마쳤다. "죽어버리겠다"며 움막을 지어놓고 구덩이 파서 저항했던 움막은 뜯기고 높이가 100m나 되는 철탑이 꽂혔다.

주민들은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10년을 싸워온 할매·할배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연대자들이 찾아와 손을 잡을 땐 웃는다.

동래할매는 남편 윤여림(75) 할배와 함께 싸워왔다. 할배는 암수술을 받아 몸이 쇠락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내외는 김해에서 40년 동안 대규모 원예농사를 짓다 지난 2004년 밀양으로 왔다. 이듬해 송전탑 반대 싸움이 시작됐으니 편하게 노후를 보내려던 꿈은 물거품이 됐다.

2011년 겨울 문턱부터 고통이 심했다. 화악산 철탑 예정지에 벌목작업이 시작됐던 때다. 추운 겨울에도 할매들은 나무둥치를 끌어안고 "내 다리를 베라"며 온종일 저항했다. 중장비가 들어올 땐 맨몸으로 노숙도 했다. 동래할매는 "그때는 연대자들이고 뭐고 아무도 없었다. 그때 받은 모욕을 생각하면 말도 못한다"고 했다.

중단과 재개를 되풀이하던 공사는 2013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5월 공사 재개 때 할매들은 목줄을 걸고 옷을 벗어젖혔다.

한전은 지난해 10월 공사를 재개할 때는 저항이 심한 부북면을 맨 나중으로 돌렸다. 주민들은 철탑 자리에 127·129번 움막을 지어 구덩이를 파고 쇠사슬과 가스통도 준비했다.

덕촌할매는 "큰아들이 움막에 데리러 왔을 때 '너거가 할 일을 내가 하고 있다'고 하니 말을 못하고 돌아갔다"고 했다. 동래할매는 "공사 들어오면 죽을 거라고 그랬지. 그런데 행정대집행 이틀 전에 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이 울면서 가스통은 치우자고 밤새 나를 설득해서 내가 졌다"고 했다.

할매들은 강제 철거가 있던 지난 6월 11일 새벽 구덩이에 들어가 목에 쇠사슬을 감았다. 129번 움막 철거가 끝나고 127번으로 넘어온 경찰에게 "날 죽이고 뜯어라"며 발버둥치다 혼절했다.

덕촌할매가 이토록 처절하게 송전탑과 싸워 온 것은 시아버지가 유언처럼 남긴 '고향을 지켜라'는 말씀 때문이다. "칼을 들고 움막을 찢는데 백정 같았다. 이제야 '옳게 죽겠구나' 싶었다. 저승에서 떳떳하게 시아버지를 뵙겠구나 싶었지."

발길 끊지 않고 손 잡으러 오는 연대자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공사업체만 배 불리고 촌 사람들 희생을 강요하는 정의롭지 못한 에너지 정책을 알려달라고 했다.

할매들 마음은 변함 없다. 동래할매는 "저 철탑 서 있어도 언젠가 빼야 한다"고 했다. 덕촌할매는 "내가 살아 있는 한 끝까지 해야지. 내 눈에 저 탑이 안 보이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했다.

움막 싱크대 앞에는 큰 글귀가 보였다. '철탑을 쌔리 뽑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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