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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남해군'이라고 하는 이유 알겠어요

[토요 동구 밖 생태·역사교실] (17) 남해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4년 09월 30일 화요일

남해 하면 아름다운 섬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바다를 배경으로 이어지는 바래길이 보리암이 있는 금산, 바다에 점점이 박혀있는 섬들을 금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보석처럼 빛이 난다. 갯벌의 풍성한 맛을 느끼기 위해 찾아오는 발길도 끊이지 않고, 덤으로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누릴 수 있는 독일마을·미국마을도 유명하다. 그래서 남해를 통째로 일러 보물섬이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옛날 남해는 절해고도(絶海孤島), 권력에 밉보인 이들을 가둬 두는 데 안성맞춤인 귀양처, 유배지였다.

9월 20일 마산 새샘·산호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역사 탐방을 떠나는 버스에서 남해를 가본 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스물일곱 가운데 딱 둘만 손을 들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남해는 그저 자기 삶과는 아무 상관 없는 알지 못하는 세상일 뿐이다. 이래서는 남해의 명소 유배문학관이 낯설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좀 거창하게 시작을 했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은, 배 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은 아무리 소질을 타고 났다 해도 사람 마음을 울리는 훌륭한 작품을 쓸 수가 없다. 인간은 가장 외롭고 힘들고 괴로운 경험을 통해 성숙하게 된다. 온 몸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경험과 감정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비로소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멀리 외딴 섬에 가둬졌을 때 그 외로움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이 승화가 돼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유배문학이다."

남해 유배문학관에서 주리를 트는 형틀에 직접 앉아보는 아이들.

초등학생들이 이런 심오한 말뜻을 알아들으려나…. 그러든지 말든지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간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기 마련이지만 그게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 경험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입맛에 맞지 않다고 귀찮다고 불편하다고 얼마나 투덜대며 살아가는지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자." 이어지는 말에 고학년 아이들은 제법 몇몇이 고개를 끄덕인다. 유배문학관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낯설기만 했던 유배문학관이었지만 막상 들어가서는 그야말로 작지 않은 재미와 커다란 울림을 아이들에게 안겨줬다. 한 시간 동안 유배문학관을 돌아다니면서 형벌 체험도 하고 유배지에서 느끼기 마련이었을 적막한 심정을 작은 공간에 갇혀 경험하기도 했다. 글을 팔기도 하고, 서당을 열기도 하고, 빌어먹기도 하고, 장사를 하기도 하고, 있는 집 사람들은 본가에서 지원을 받기도 하면서 제각각 유배 생활을 꾸렸던 그이들의 고달픔과 괴로움을 어렴풋이나마 들여다보기도 했다. 들어갈 때는 뭐가 뭔지 몰랐는데 유배문학관이 정말 좋았다는 글들이 돌아오는 버스에서 쓰는 소감문에서 쏟아졌다.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립다고 말을 쓰자니 쓰기도 전에 눈물이 이미 흥건하다"로 시작하는 서포 김만중의 사친시(思親詩)를 손수 적어보게 했던 것은 예상보다 훨씬 효과가 컸다. 세 번째 유배지였던 남해 노도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친 김만중은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유명하다. 눈물로 써 내려간 사친시를 옮겨 적는 동안 부모를 대하는 자기 모습을 돌아봤다는 아이들도 여럿이었다. 아마도 이 친구들은 김만중이 어떤 사람인지는 잊어먹어도 사친시를 또박또박 적어내려갔던 기억만큼은 마음에 두고두고 새겼을 것이다.

근처 밥집에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 이순신영상관으로 옮겨갔다. 유배문학관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남짓 걸리는데 토·일요일에는 정각이 될 때마다 영상을 보여준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을 담은 20분짜리인데 제목이 '마지막 바다 노량'이다. 뻔한 내용일 이 영상의 반전은 3D에 있었다. 만약 그냥 평범하게 만들었다면 완전 실패작이 되었을 테지만 아이들은 3D에 열광했다.

이순신 장군이 숨진 관음포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첨망대에서.

포탄 파편이 여기저기 머리 위로 쏟아지고, 날아오는 화살은 꼭 눈을 관통하고야 말 것 같은 생생함이 있었다. 어느 때는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느낌도 든다. 아이들은 숨을 죽이며 화면에 집중했다. 덕분에 이순신 장군 이미지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사실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전달 방법도 중요함을 여기서 새삼 느끼게 된다.

'마지막 바다 노량'을 보고 쓴 느낌글 가운데 뭉클한 작품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이순신 장군님 고맙습니다." 딱 한 문장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 썼다. 그런데 비뚤비뚤하게 쓴 이 한 문장이 왜 이다지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는지…. 이순신 장군 전기를 읽고 이순신 장군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노라 뜬구름 잡는 다짐을 독후감이나 일기에 쓰곤 한 어릴 적 기억이 대부분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훌륭한 인물은 못 되더라도 이순신 장군에게 이렇게 경건하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대견하고 또 진실해 보이는가! 다 3D 덕분이다.

영상물을 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찾아갈 이락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락사(李落祠)는 이순신 장군(李)이 떨어진(落= 숨을 거둔) 자리에 지은 사당(祠)이라는 뜻이다. 이락사 자리는 전사한 이순신 장군을 옮겨온 최초 육지다. 아무래도 '최고' '최초' 이런 낱말에 사람들은 흔들린다. 아이들도 최초라는 말에 "정말요?" 하면서 반응을 보여온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다 이순신 장군 고향이 어디인지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들이 죄다 경상도 아니면 전라도다. 충청도라고 답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영화 <명량>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지금, 아이들 답을 듣고 있자니 문득 얼마 전 겪었던 일이 웃음 속에 떠올랐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순신 장군 죽는 장면이 왜 안 나왔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대사를 기다렸는데 끝까지 안 나오더라고…." 그야말로 '쩝쩝'이었다. 아이들에게 너희는 바보처럼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을 절대로 헷갈리지 말라 당부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관음포 바다가 보이는 데로 갔다.

가을 바람과 새소리가 이어지는 숲길을 걸어 첨망대에 오르자 관음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바라보이는 곳이 영상관 화면에서 싸움이 벌어졌던 바로 그 바다라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400년 전 이 바다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지금은 바다를 메워 만든 공단이 멀리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그만큼 세월이 또 흐르고 나면 어쩌면 바다가 완전 사라지고 뭍으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득해진 역사를 다만 기록으로 더듬을는지도 모르겠다. 첨망대를 둘러보고는 재잘거리며 나오는 아이들은 이러거나저러거나 발걸음이 가볍다.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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