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진해 배경으로 영화 만드는 영화감독 이수지 씨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 뭔가 싶었다. 앳된 얼굴이고 얌전한 태도에 생각이 되게 많은 사람 같았다. 몇 번인가 더 만났을 때, 이 사람 굉장하다 싶었다. 영화감독 이수지(38), 진해에 터를 잡고 오직 진해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사 소금 대표. 그의 이야기를 조금 할까 한다.

이수지 감독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아버지 직장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 감독은 어릴 때 자주 맞고 오는 아이였단다. 그래서 가족들은 그렇게 맞지만 말고 반드시 때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루는 이 감독이 옥상에서 친구들을 확 떠밀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옥상 계단으로 굴러 떨어져 크게 다쳤다. 나중에 이 감독은 누구를 때려야 한다는 강박감이 그런 사고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아, 내가 할 줄 모르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꼭 실수를 하는구나. 그때 이후 이 감독은 절대 다른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으로 이어진다. 그때 제일 뒷자리에서 소설 같은 걸 끼적이다가 문득 애들이 공부하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수학 공부는 왜 하지? 언제까지 내가 잘하지 못하는 수학 공부를 해야 하지? 다시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잘하지도 못하는 것을 계속하다가는 언젠가 또 실수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수학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다른 과목을 더 잘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 감독은 자신이 살아갈 시간과 수학 공부를 계속할 때 낭비하는 시간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부모를 설득했다. 어릴 적 다른 아이를 때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부모의 말을 그대로 들었다가 사고를 쳤다, 언제까지 부모의 말만 듣고 살 수는 없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식으로 생각이 정리되자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리고, 과감하게 수학을 포기했다. 수학 시간에는 주로 소설을 쓰며 지냈다. 이 감독의 인생에서 첫 번째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물론 수학을 포기한 대가는 컸다. 대학 진학도 몹시 어렵게 했다.

다시 이야기는 10년이 지나 이 감독이 유치원 교사로 일할 때로 건너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감독은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자기 인생의 사명을 발견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데, 지금 나 자신의 사명은 뭘까? 그러다가 자신이 오랫동안 글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로 했다.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 큰 용기였다. 역시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드라마, 연극, 영화 대본 같은 걸 쓰면서 그럭저럭 지내던 중 우연한 소개로 이창동 감독을 만났다. 이창동 감독은 이 감독에게 말했다. 너의 글은 보편적이지 못하다, 너는 영화를 하지 말고 뮤지컬을 해봐라. 충격이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뮤지컬이라니!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 대본을 쓰려면 뮤지컬을 배워야 한다는 게 이창동 감독의 생각이었다. 뮤지컬을 쓰면 가사를 써야 한다. 노래 가사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만드는 영화는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거다. 이수지 감독은 그래서 창작뮤지컬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배우들이 자신이 쓴 대본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는 건 굉장히 신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5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이 감독은 드디어 영화를 해보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가고 싶고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창동 감독으로부터 이제는 영화를 해도 되겠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그때 진해를 만났다.

진해를 처음 본 건 지난 2008년이었다. 창원에 왔다가 우연히 진해까지 가보게 된 게 계기였다. 산과 바다, 근대건축들, 진해는 그대로 완벽한 영화 세트장이었다. 그리고 2011년, 아무 연고도 없는 진해에 정착했다. 영화 제작에 대해서는 기본도 모르던 때에 영화사를 차리고 스태프를 모집했다. 그게 독립영화사 '소금'이다. '소금'은 현재까지 장편영화 3편, 단편영화 11편을 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편도 개봉하지 않았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는 감독의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제 때가 왔다. 지난 주말 진주에서 열린 진주같은 영화제에서 단편 <먼지>를 개봉한 것이 그 첫발이다.

이 감독은 말한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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