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32) 전북 정읍시 구절초 축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시인 안도현은 17살 때 박용래의 시 '구절초'를 읽고 좋아했지만 정작 구절초를 알게 된 것은 그 후 20여 년이 지나서였다고 한다.

가을꽃을 떠올려본다. 국화 정도만 형상이 떠오를 뿐 구절초나 쑥부쟁이는 그 모습을 그리는 것조차 아득하다. 구분은커녕 생김새조차 일면식이 없는 것 같다.

이런, 나와 의절이라도 해야 하나.

가을꽃을 찾아 떠난다. 서둘러야 한다. 무심한 계절은 오는가 싶게 갈 것이다. 서늘한 바람이 깊어지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절은 더욱 서럽다.

축제장을 가득 채운 구절초.

김용택 시인은 시 '구절초' 중에서 "구절초 피면은 가을 오고요/구절초 지면은 가을 가는데"라고 했다.

구절초 축제가 열리는 전북 정읍으로 향했다.

제9회 정읍 구절초 축제가 내달 3일부터 열흘간 '솔숲 구절초와 함께하는 슬로투어'라는 주제로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아직 초록 자태를 지키는 나무 아래로 가을꽃 향연이 시작됐다.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리고 이름 모를 들국화들이 정읍으로 향하는 길목을 안내하고 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고 지며 계절을 알려주고 있다.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하다.

작가 이효석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달빛에 비친 메밀밭을 묘사하면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말로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표현했다.

문장이 모자란다. 이런, 또다시 나와 의절을 하고 싶다.

안타깝지만 구절초는 멀리서 보면 마치 산에 눈이라도 온 듯 은은하게 자태를, 가까이서 보면 선명한 노란색이 개구진 발랄함을 뽐내고 있다는 말 이외에 별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구절초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음력 9월 9일에 꽃과 줄기를 잘라 약재로 쓰는 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5월 단오에는 줄기가 다섯 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이 오면 아홉 마디가 되는 풀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줄기에 아홉 마디의 능(모서리)이 있어서 구절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그 모양이 예뻐 관상용으로 그만이다.

시인 박용래는 구절초를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이라고 노래했다.

시 일부를 인용하자면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뿌리를 대려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여우가 우는 추분(秋分)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라고 했다.

구절초 사랑의 방송국.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구성진 강원도 사투리로 "뱀이 빨라"라던 강혜정이 머리에 꽂았던 꽃이 바로 구절초다.

구절초는 예로부터 민간약으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부인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절초 잎은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방향 물질이 있어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고 하니 알면 알수록 참 신기하기까지 한 꽃이다.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와 그 아래로 구절초 핀 샛길을 걸어 가을의 절정으로 들어간다. 축제 기간에 찾으면 아름다운 구절초를 감상하는 것 이외에 효능과 활용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전북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 571번지. 축제 준비를 위해 27일부터 내달 2일까지는 공원 출입이 통제된다.

문의 063-539-6172~3.

전망대에서 바라본 행사장 모습.

또 다른 구절초 축제는 어디서 열릴까?

◇공주 영평사에서도 '제15회 장군산 꽃축제'가 내달 2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 영평사 주변은 물론이고 장군산 기슭 1만여 평을 수놓은 구절초를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의 구절초는 자생적으로 피어난 꽃이 아니라 주지 환성 스님이 구절초에 반해 사찰 주변에 10여 년 전부터 가꾸었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구절초를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식물이라고 하여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부른다. 축제 마지막인 18∼19일에는 사찰 음식 전시 및 시식과 구절초 꽃차와 효소도 시음해 볼 수 있다. 세종시 장군면 영평사길 124번지.

장군산 꽃축제가 열리는 공주 영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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