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세월호 유탄 맞은 고성 조선소 '천해지'

지난 4월 세월호 사고 이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을 때다. 검·경이 대대적인 검거작업을 벌였는데 고성군에 있는 조선업체 ㈜천해지에도 경찰이 몰려들었다. 본사 직원·협력업체 직원 중 그 이유를 아는 이도 있었지만 모르는 이도 많았다. 시간이 좀 지나서야 모두 알 수 있었다.

1979년 창립한 ㈜세모가 전신인 ㈜청해진은 1988년 고성에 터전을 마련했다. 2005년 10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주로 컨테이너 블록을 생산해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와 주거래하는 조선업체다. 현재 직원수는 134명이며, 협력업체 24곳 직원까지 합하면 1300명가량 된다. 지난 2013년 매출 1100억 원, 영업이익 54억 2900만 원을 기록하는 등 재무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천해지는 세월호 이후 귀에 익게 된 청해진해운의 주식 39.37%를 보유한 최대 주주였다. 세월호 사고 중심에 유병언이라는 이름 석 자가 등장하면서 ㈜천해지도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정문에 경찰이 진을 치기 시작했고, 5월 16일에는 국세청 압류 조치가 이뤄졌다. 채권 확보를 위해 관련 부동산을 모두 압류했다. 그러자 산업은행 등 주요 금융권에서 '기한이익상실', 즉 풀어서 얘기하면 '약정 무효이니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으라'고 통보했다. 바로 연체 이자가 발생했고, 협력업체에 나갈 돈까지 막혀버렸다. 언론에서 보도가 나기 시작했고, 변기춘 대표가 구속됐다. 협력업체까지 포함한 1300명의 경제활동이 막막해진 것이다.

이에 ㈜천해지는 비교적 빨리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7월 14일 창원지방법원의 회생절차 개시가 이뤄졌다. 그로부터 2개월이 흘렀다.

신장균(63) 씨는 이전 세모 시절부터 지금까지 13년 동안 천해지 협력업체 일을 하고 있다. 법정관리 이후 겉으로는 티를 안 내려 하지만,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심정이야 어쩔 수 없다. 그는 "일반인들은 작업복에 있는 천해지 마크만 보면 '당신 구원파 아냐'라고 합니다. 제발 회사 이름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협력업체 직원 1000명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우리는 유병언, 구원파가 뭔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일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역시 15년 가까이 협력업체 일을 하는 석영기업 서경석(55) 대표는 "세모 시절 법정관리로 위기가 한 번 있었는데, 그 이후 안정적으로 흘러왔습니다. 지금 불안안 마음이야 어쩔 수 없죠"라고 했다.

장도선(55) 조선소장은 25년간 이곳에서 일한 천해지의 산증인이다.

"회사 직원 중에 구원파 교회에 나가는 이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종교활동이야 개인활동이니…. 다만 제가 소장을 맡은 이후 근무시간 내에 종교 관련 활동은 절대 금하고 있습니다. 문자라도 보낼 때는 징계위에 회부해 인사 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아해나 청해진과 관계는 완전히 단절됐습니다. 그 선을 완전히 끊은, 천해지 단독이라고 보면 됩니다."

13년간 천해지 협력업체 일을 하고 있는 신장균 씨는 "이전까지 청해진과 관련된 회사라는 건 전혀 몰랐습니다. 유병언이라는 이름도 이번에야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협력업체 직원 가족까지 다 하면 4000∼5000명 됩니다. 청해진 주식 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무 상관 없는 이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요. 이런 사정을 제대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권범철 기자

현대중공업 경영지원본부 상무이사를 지낸 임재협(62) 법정관리인은 이렇게 말했다.

"경영상태가 지난해까지 좋았습니다. 배 건조 수주한 것이 있는데, 세월호 이후 자금이 막히고, 블록 물량도 빠지는 이중고를 겪게 된 겁니다. 여기 와서 보니까 간접비에서 불필요하게 돈 나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최대한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 적자 사업은 정리하는 중입니다. 관건은 내년 물량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천해지 본사, 협력업체 직원 중 스스로 관둔 이는 거의 없다. 큰 동요 없이 현장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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