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밀양구간 송전탑 완공…반대 주민 "돈·폭력 철탑 다 뽑아야 공사 끝나"

23일 오전 11시 밀양시청 앞에 주민들이 모였다. 밀양구간 초고압 송전탑 조립공사가 끝난 날이다.

주민들은 "공권력과 돈으로 세운 철탑, 우리는 한 기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철탑을 뽑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밀양 765㎸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이계삼 사무국장은 오랜만에 단장·부북·산외·상동면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인 집회에 대해 "우리는 죽지 않았다고 보여주는 자리"라고 했다. 이날 송전선로 경과지 4개 면 주민과 연대시민 230여 명이 함께 했다.

대책위 공동대표 김준한 신부는 "우리 주민들은 처음부터 보상은 필요없다고 했다. 경북 청도경찰서장이 청도 주민들에게 돈 봉투를 돌린 것을 봤듯이 한전과 경찰은 돈만 주면 다 되는 것처럼 살아왔다"며 "철탑 뽑는 날이 공사 끝나는 날이다. 우리가 오늘 공사 시작을 선포하자"고 말했다.

밀양 주민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부북면 평밭마을 한옥순(여·68) 씨는 "진실을 알릴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월 지역농협 이사에 출마했을 때 돈으로 자신을 매수하려했다는 의혹을 폭로했던 상동면 고답마을 서보명(57) 씨는 "한전이 나를 1000만 원짜리 사람으로 평가한 것 같아 기분 나빴다. 입 닫은 사람들 양심선언들 나오게 될 것"이라며 "오늘 철탑 완공했다는데 웃기지 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고 말했다.

23일 오전 11시 밀양시청 앞에서 주민들이 "공권력과 돈으로 세운 철탑, 우리는 한 기도 허락하지 않았다"며 나무로 만든 철탑을 부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표세호 기자

산외면 골안마을 안영수(55) 씨는 "땡볕 아래 아스팔트에 앉은 이 가련한 처지가 미래를 위해 국가의 정의로운 발전을 위한 밀알이 될 것이다. 돈과 경찰 폭력으로 지어진 철탑은 전부 무효"라고 말했다.

상동면 동화전마을 김정회(42) 씨는 "한전은 철탑 값을 말해달라. 한 평 프로젝트로 농사지은 감자와 맥문동 팔아 철탑 사서 고물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집회에는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345㎸ 송전탑 반대 투쟁을 벌이는 주민들도 참석했다. 삼평리 한 주민은 "경찰서장의 돈 봉투는 우리 할머니를 모독하고 또 한 번 죽인 것이다. 비리로 얼룩진 송전탑 끝까지 뽑아내고 비리를 밝혀내자"고 말했다.

밀양 주민들과 연대해온 시민도 함께했다.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 이정화(여·42) 씨는 "송전탑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무너진 것을 보는 게 가장 가슴 아팠다. 나라가 나서서 이웃과 이간질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6월 11일 밀양시가 경찰을 앞세워 농성움막을 강제철거할 당시 끌려나오다 여경 머리채를 잡은 것 때문에 재판에 넘겨진 주민에 대해 "힘없는 할매들이 억울하게 들려나오는데 '고맙다'며 나와야 하나. 당연히 머리채라도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맨몸과 온몸으로 싸워온 지난 10년과 앞으로 다짐을 담은 성명서를 상동면 여수마을 김영자(여·58) 씨가 대표로 읽어내려갔다.

한국전력은 이날 울산 울주군 신고리 핵발전소 3·4호기 생산전력을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는 765㎸ 송전선로 90.5㎞ 구간 161기 철탑 중 밀양구간 69기 조립공사를 마쳤다고 밝혔다. 한전이 지난해 10월 경찰 3000명을 앞세워 공사를 재개한 지 1년 만이다.

김 씨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싸움,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던 풍찬노숙의 괴로운 저항들이 10년간 이어졌다. 신고리 3·4호기 준공 기약이 없다. 우리는 저 철탑에 서려 있는 모든 불법, 폭력, 비리, 회유, 협잡, 음모를 지난 10년간 몸서리나도록 겪었다"고 했다.

이어 "한전은 어떻게 철탑을 세웠던가. 거대한 공기업 전체가, 정부조직이, 밀양시청이 그리고 연인원 38만 명 경찰이 달라붙어 밀양시 4개 면을 뒤집어 놓았다. 더러운 돈과 공권력의 힘이 아니었다면 단 한 기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전은 이날 철탑완공 보도자료에서 "그동안 주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공사를 진행했다"며 "밀양지역 그간의 갈등 해소를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한전과 경찰의 폭력에 대한 사죄와 정신적·물질적 고통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또한 밀양 사태를 만든 전원개발촉진법과 전기사업법, 제대로 된 보상이 아닌 초고압 송전선로 강행을 뒷받침하는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지원·보상법 등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정부와 정치권에 개정을 촉구했다.

한전은 11월까지 가설 공사를 마치고 12월에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에 전기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이날 집회는 나무로 만든 철탑을 부수는 상징의식으로 마무리됐다. 주민들은 송전탑을 넘어뜨려 순식간에 산산조각을 냈다. 구호를 외치다 손뼉치고 노래를 부르며 한 시간 동안 집회를 마친 주민들은 오랜만에 함께 점심을 먹었다.

주민들은 이날 정부와 한전에 물었다. "한전은 이렇게 많은 주민을 이렇게 오랜 세월 고통스럽게 만들어놓고서 과연 '갈등해결'을 말하고 있는가. 그 입이 부끄럽지 않은가. 국가가 국민을 속여도 되는가. 국가가 국민을 폭력으로 짓밟아도 되는가."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