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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절실하게 남긴 것, 남겨줘야 할 것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 기행] (6) 울산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4년 09월 23일 화요일

9월 17일 떠난 올 들어 여섯 번째 생태·역사기행의 빛나는 핵심은 아주 걷기 좋은 멋진 길이었다. 첫 탐방지 울산 울주 석남사 진입로도 그랬고 반구대암각화로 이어지는 길도 그랬고 반구대암각화에서 돌아나와 천전리각석까지 걸어가는 길도 그랬다. 자동차 한 대 다니지 않는 길을 다른 데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둘레 풍경만 눈에 담고 흐르는 물소리만 귀에 담으면서 그렇게 오롯이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석남사에는 10시 10분 남짓해 도착했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는 길은 전혀 가파르지 않다. 오른쪽 골짜기를 타고 참나무와 서어나무 같은 활엽수들이 마른 잎을 몇몇 떨어뜨려 놓았다. 좀 있다 단풍 들면 아주 그럴듯할 텐데 지금 푸른 기운이 조금씩 가시는 모습도 나름 괜찮았다. 제철을 맞은 도토리가 툭, 툭, 떨어지는데 줍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가 않는다.

대부분 절간은 아침나절이 부산스럽다. 이날 석남사도 거의 모든 전각마다 스님들이 염불을 하고 목탁을 치며 아침 예불을 올리고 있었고 대중이 모이는 법회까지 함께 벌어지고 있었다. 오후에 왔다면 보기 어려웠을 스님들 모습을 마주할 수 있어서 산뜻한 기분까지 들었다.

석남사 극락전에서 영가의 극락 천도를 위해 기도하는 스님과 신도.

이런 가운데 여러 전각들 그리고 석가사리삼층석탑과 '그냥' 삼층석탑을 눈에 담은 다음 대웅전 뒤쪽 승탑 자리에 올랐다. 여기서는 거의 온전하게 그대로 남아 있는 승탑을 볼 수도 있고, 고개를 들면 석남사 뒤꼭지 그윽한 느낌(지붕기와가 빛나는 푸른색으로 바뀐 뒤는 좀 덜하지만)과 석남사 감싸안은 가지산 줄기 넉넉함을 제대로 누리는 보람도 작지 않다.(내려오는 길에는 한 일행이 오른쪽 바위벼랑에서 마애비를 발견했는데, 대충 보니까 아무아무 현감의 애민선정비였다. 빗돌은 사람들 보라고 길거리에 세웠으니만큼, 적어도 조선시대는 여기에 길이 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습지, 물가는 오늘날만 아니라 옛적에도 사람들 삶터였고 동시에 놀이터였다. 물이 있으니 물을 먹으려고 갖은 짐승들이 드나들었고 사람들은 그 짐승들 잡아서 먹고 살았다. 또 물이 있으니 풀과 나무들이 말라 죽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고 두고두고 씨앗을 퍼뜨려 널리 번져나갈 수 있었다. 이런 풀이랑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둘레 산악들과 어우러지니 풍경 또한 그럴듯하게 됐고 그런 덕분에 사람들은 이런 데를 즐겨 찾아 노닐며 몸을 튼튼히 하고 마음을 닦기도 했다.

석남사에서 반구대암각화로 가는 길.

이런 옛 사람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표 명소가 바로 울산 반구대암각화다. 까마득한 옛날 먹고살기 위해 애썼던 모습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바위에다 무엇을 새기는 일은 오늘날도 쉽지 않은데 옛적 그 사람들이 갖은 곤란을 무릅쓰면서까지 왜 이런 그림을 새기고야 말았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 절실함만큼은 나름 눈치챌 수가 있다. 당장 먹을거리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 틀림없이 있기에 힘들고 어려운 시간과 노력을 여기에 쏟아붓지 않았겠는가.

전망대에서 바라본 반구대암각화. 맞은 편에서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바위그림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도 상당하다.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고래·상어 따위 물고기와 그 잡는 모습, 호랑이·늑대·여우·노루 따위 산짐승과 그 잡는 모습, 가면을 쓰거나 활이나 막대기를 든 사람 모습 등등을 아주 사실적으로 새겨놓은 바위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물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드물다. 예전에는 암각화 바로 밑에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맞은편 언덕에서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망원경으로는 그 형상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이제는 댐까지 만들어져 한 해 가운데 많은 나날을 바위그림은 물에 잠긴 채 지내야 하게 됐다.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동물 그리고 탈을 쓴 무당, 사냥꾼, 배를 탄 어부, 목책, 그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반구대암각화. /연합뉴스

그래서 일행은 반구대 들머리 암각화박물관에 들러 복제해 놓은 암각화 모형을 보면서 그 구체적인 형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먼저 더듬었다. 실물을 못 보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손쉽게 알아보도록 장치가 돼 있어 많이 지체하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밥집 '암각화 사진 속으로'에서 점심을 먹고 반구대암각화 맞은편 물가 언덕까지 우거진 수풀 사이로 골짜기랑 개울물이랑 동행하며 거닐었다. 거기 배치돼 있는 이의 자세한 해설은 두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일행들 아쉬움을 토닥였다.

그런데 여기 일대를 사람들이 선사시대에만 살거나 노닐지는 않았다. 반구대암각화에서 2km가량 떨어져 있는 천전리각석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반구대암각화에서 천전리각석으로 이르는 길도 가파르지 않다. 골짜기를 따라 그냥 평탄하게 나 있는 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반구대를 벗어나 각석 있는 쪽으로 접어들면 바위를 구르는 물이 제법 크게 소리를 내어 귀까지 즐겁게 만들어준다.

천전리각석에서는 반구대암각화와 달리 바로 코 앞에서 바위그림을 볼 수 있다. 동심원이나 사다리꼴, 잎사귀 모양, 꾸불꾸불 물결 모양, 사람 얼굴이나 여자 몸통 모양 등등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형상을 드러내 보여준다.

천전리각석에서 해설을 듣는 일행. /김훤주 기자

아래쪽에는 신라시대 왕족이 새긴 한문이 보인다. 이를 천전리 서석(書石)이라 하는데, 처음 새긴 원명이 있고 나중에 새긴 추명이 오른편에 있다. 학계에서는 여기 나오는 사람 이름과 육십갑자로 연대(법흥왕 12년, 525년)를 특정할 수 있어 귀하게 보는 모양인데, 어쨌거나 선사시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에도 우리 사람과 깊이 관련돼 있는 장소임을 일러주는 지표라 하겠다.

각석에서 개울을 건너면 공룡발자국화석이 몇몇 흩어져 있다. 사람이 노닐기 전에는 여기가 공룡들 먹이터·놀이터였을 수도 있었겠지. 천전리각석 바위 쪽에 있을 때는 잘 모르겠더니, 공룡발자국화석 너럭바위에 올라서니 골짜기가 수풀에 가려 있다가 한결 널러지면서 탁 트이는 느낌을 안겨줬다.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에서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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