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길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무엇을 바꿀까'…'경제성장'주류 패러다임 벗어나 일상 변화 이끌어야

계간 <창작과 비평>은 최근 발행된 2014년 가을호에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바꿔나가야 할 한국사회 과제를 진단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그 가운데 '변혁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진보)운동진영의 실천 방식과 문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의 글 '운동권 문화와 운동하는 삶의 문화'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돌아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뿐만이 아니다. 밀양 송전탑, 노후 원전, 국정원 대선 개입, 쌍용자동차 해고, 의료·철도 공공성 파괴 등 야권과 진보세력 입장에선 존재감을 드러낼 '이슈'가 넘쳐나는데 정권과 보수세력은 여전히 공고하다. 유정길은 현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과거(1970~1990년대)였다면 전국적으로 학생운동이 들고일어나고 사회단체들도 격렬한 집회를 통해 여론을 모으며, 언론이 그 이슈를 받아 뉴스를 만들고 종교단체들이 권위를 갖고 마무리로 힘을 실어 결국 사회의 무게중심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운동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되었으며, 편향된 언론은 사회의 균형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뉴라이트나 어버이연합 등 보수운동이 조직화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결국 모든 건 '나쁜' 박근혜 정권과 보수언론, 보수세력 탓일까? 그리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유정길이 주목하는 건 '진보' 그 자신, '운동' 내부다. 툭 하면 들이대는 이분법. 투쟁, 전선, 정치권력에 대한 집착. 없는 적도 만들기. 보수와 별다를 바 없는 생산력주의·성장주의 노선. 그리고 '주변'을 소외시키는 '중앙' 지향성.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밀양 송전탑 등 각종 이슈가 넘쳐나지만 진보세력의 힘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숱한 투쟁이 이어졌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하고 결말은 다시 또 다른 갈등과 대립의 시작이다. '적'을 완전히 절멸시키지 않는 한, '우리'가 계속 강하지 않는 한 악순환은 불가피하다. 유정길은 "대안적 투쟁 방식은 적보다 높은 차원에서 적을 대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적을 규정하지 않는 것. 전선을 만들지 않는 것. 투쟁보다 연대(일부 단체 간 연대가 아니라 대립이나 투쟁의 반대 개념으로서 연대)에 집중하는 것. "나아가 적을 구원(?)하겠다는 생각, 그들마저 살리도록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투쟁, 전선에 대한 과도한 집착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분법적 사유에는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다른 것을 지배하려는 '폭력적 질서'가 존재한다고 했다. 진보는 무조건 '좋은 사람'이고 아군이며 반대로 보수는 무조건 '나쁜 사람'이고 적이라는 인식은 진실과도 거리가 멀지만 세상에 미치는 해악이 너무나도 많다.

유정길은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사회적 욕구와 의지가 강할수록, 사회가 극단적이고 험악할수록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희박해지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성이 떨어지며 적개심과 배타성이 강화된다"면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지 않을 때 다양한 비판과 논쟁, 토론이 가능해진다. 이분법은 상황을 선명하게 하는 데 유용한 방편이지만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가장 심대한 장애"라고 말했다.

이분법적 가치는 '전부 아니면 무'의 관념이다. 80%의 선한 가치가 있다고 해도 20%의 문제가 발견되면 그 20%를 전면화해 상대를 배제한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면 그 20%는 20%일 뿐이다. '부분'만을 문제삼을 뿐이다. 부분적인 다름이나 오류를 상대의 전체로 단정해 배제하지 않는다.

요즘 운동의 목표는 오직 하나, 정치권력 교체와 변혁에 온통 쏠려 있는 듯하다. 물론 정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가 중심이 되면 반드시 주변화되는 영역이 생기기 마련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넘쳐나지만 역설적으로 국가의 힘은 강화되고 의회 정치와 자율적 시민사회의 역할·영향력은 축소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는 정치권력만 바꾸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운동은 정치적 변화만이 아니라 일상세계를 바꾸어나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공동체운동, 지역운동, 대안교육운동, 도시텃밭운동, 생협운동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시대적으로 중심이 되는 이슈와 주변적인 이슈는 나눌 수 있지만, 중심적인 일과 주변적인 일은 없다. 모든 것이 중앙이며 모두가 가장자리다."

◇생산력주의·성장주의와 결별

유정길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근대적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대안적 가치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생산력주의·성장주의 노선과 결별이다. 오늘날에도 좌우파를 막론하고 주류는 여전히 생산력주의자며 성장주의자다. 생산과 소비를 고도화하는 경제 성장만을 '발전'으로 간주한다.

그는 "과거의 지향이 물질적인 풍요였다면 이제 지속가능한 사회에서 패러다임은 '자발적인 청빈, 주체적인 가난'을 지향하며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라면서 "녹색주의자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동시대인들의 합의라는 현세대주의에도 반대한다. 미래세대와 생명까지 자연과 자원에 대한 결정권에 동참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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