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심포지엄서 지적…"국민투표 등 다양한 방식 시민참여가 해법"제안

"한국 에너지 거버넌스는 강한 국가주도성, 단기적 경제성과 산업 경쟁력 중심, 일반성과 폐쇄성이라는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김현우 상임연구원이 17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전력정책 시민합의회의 10년, 한국 에너지 거버넌스 현주소를 묻는다'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 평가다. 이날 행사는 연구소가 창립 5주년을 맞아 마련한 것이다.

이 같은 진단은 지난 2004년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을 놓고 벌어진 부안사태를 시작으로 10년을 끌어온 밀양 초고압 송전탑 갈등, 노후원전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폐쇄 목소리, 최근 강원도 삼척에서 벌어지는 원전 철회를 위한 주민투표 논란으로 이어진 지난 10년 동안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민간이 관여한 거버넌스 역사를 관통한 것이다.

에너지 정책은 밀양 송전탑 갈등 과정과 그 여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긴 과정, 직간접적인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연결돼 있고, 갈등과 희생이 뒤따른다.

김 연구원은 "한국 에너지 정치에서 크게 바뀌지 않는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다수의 참여가 제한된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방식으로 소수 정치인, 관료 전문가, 자본가(기업)가 주도한다는 점"이라며 "소수의 정책결정자는 자기 또는 주변 이해관계자의 이익에 봉사할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책을 더욱 고착시키거나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전력마피아', '원자력마피아'로 불리는 '산업-학계-정치-언론'을 잇는 '에너지 카르텔'이 형성돼 주도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이나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지만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결정에 대한 영향력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미리 정해놓은 결론을 관철하기 위한 분할 전술로 시민사회 참여를 이용하는 경향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도 정부는 핵발전소를 더 짓는 에너지계획을 확정하거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서 민간위원이 진행과정에 반발해 탈퇴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삼척시와 삼척시의회가 핵발전소 유치신청 철회를 위한 주민투표를 하려고 하자 정부가 직접 나서 국가사무여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고 한 것도 에너지 거버넌스가 언제라도 중앙정부에 가로막힐 수 있다는 것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 연구원은 에너지 거버넌스 개선과제에 대해 "막대한 자원 투자를 요구하고 특정집단의 큰 이익이나 희생을 수반하는 에너지 정책의 성격상 경제적 집단뿐 아니라 지역과 계층, 세대에 따른 이해당사자들을 더욱 폭넓게 설정하고, 복잡한 영향을 고려하는 숙의 과정이 작동하게 하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거버넌스 기구의 공개성·투명성과 책임성·자율성 강화, 거버넌스 효과를 높이도록 국민투표, 심의·협의 등 시민참여 방식 다변화와 다층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김 연구원은 "다수결 또는 현행 법률적 기준 같은 절차적 기준에 국한하지 말고 일종의 최저선 같은 것들을 제도화하고 동시에 관행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밀양 송전탑 갈등 과정에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갈등조정위원회, 국회 중재로 전문가협의체가 구성됐으나 여러 한계에 부딪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 연구원은 "한전의 자료 제출 거부, 숙의는커녕 개방적 논의마저 거부하는 일부 위원들 태도로 거버넌스에 수반돼야 할 상호학습 과정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신고리 3·4호기 건설 지연에 따른 우회송전망 활용이나 지중화 등 주민 측에서 제안한 방안들은 정식 의제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주민과 야당 위원 반발 속에 '송전탑 건설 외 대안이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다수결의 이름으로 일방 채택했다"며 "한전은 통과의례로서의 거버넌스라는 명분을 활용해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 전원촉진개발법이라는 제도 그리고 국가 에너지 정책이라는 구도 속에서 권한이 제한된, 그리고 폐쇄된 에너지 거버넌스 기구가 갖는 한계를 뚜렷이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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