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황준원·도경희 부부

같은 장면도 시대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게 다르다. 여자 집 앞에서, 그녀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남자…. 옛 시절이라면 남자의 '순수한 마음' '애타는 사랑' 같은 것으로 포장될 수 있겠다. 그런데 오늘날은 쉽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스토커'라는 단어가 불쑥 끼어들었다. 한쪽이 그냥 한두 발짝만 더 다가갔음에도 이 말이 남발되는 지금이다.

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여기 이 부부를 보면 그렇다.

지난해 3월 결혼 후 부산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황준원(30)·도경희(33) 부부는 2011년 가을 처음 만났다. 남자 직장 선배가 중간 역할을 했지만 단둘이 만나는 소개팅은 아니었다. 여럿이 어울려서 함께한 술자리였다. 남자는 1985년생, 여자는 1982년생이었다. 앞서 남자 직장 선배는 여자에게 미리 귀띔했다.

"준원이가 연상의 여자에는 관심이 없데. 세 살 차이면 관심 없어 할 테니, 적당히 나이를 속여서 얘기하는 게 좋을걸."

여자는 그래도 너무 낮추기는 그랬다. 양심껏(?) 두 살만 속여 1984년생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방 들통 나고 말았다. 띠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자는 1984년생이 무슨 띠인지 모르고 우물쭈물했다. 이상하게 여긴 남자가 흔히 말해 '민증을 까라'고 했다. 여자는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남자보다 세 살 위임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자는 싫지 않았다.

"겉으로는 나이 문제로 서로 티격태격했죠. 그래도 나이와 상관없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술자리를 이끌며 분위기를 아주 유쾌하게 하는 사람 말이에요. 그런 모습에 반해 버렸죠."

그 다음 날 남자는 여자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여자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다만 술친구 관계는 유지했다. 둘 다 주당이었다. 한번 만나면 둘이서 소주 10병은 거뜬히 마셨다. 둘은 몇 달간 계속 만나기는 했지만, 그 장소는 오직 술집이었다.

이런 시간 속에서 남자는 나름 착각을 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이 정도면 연인 관계는 맞잖아.' 이런 생각 속에서 그는 2박 3일간 여자 집 앞을 지킨 적이 있다.

"사귀게 되면 일상적으로 전화·문자를 주고받잖아요. 한번은 계속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오피스텔 앞에 찾아갔죠. 밤이 되어도 안 들어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렇게 2박 3일 동안 기다렸어요. 회사도 다른 핑계 대고 안 갔죠. 먹는 건 근처 편의점에서 해결했고요. 제가 오피스텔 주위를 계속 얼쩡거리니까 거기 사는 사람한테 신고가 들어왔나 봐요. 경비실에서 '이상한 사람이 돌아다니니 문단속 잘하라'고 방송까지 했죠. 나중에는 경비실 아저씨하고도 친해져서 음료수도 드리고 그랬죠. 여자친구를 결국 만났는데,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거더라고요. 물론 여자친구는 저한테 어이없어 했죠."

그래도 여자는 남자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아프다고 하면 약 사 들고 오고, 퇴근 후 먼 거리에서 매일 찾아와 미소 짓는 모습에 조금씩 마음이 녹았다. 결국 첫 만남 후 1년 만에 연인관계에 들어섰다.

둘 데이트 장소는 여전히 술집이었다. 그 흔한 영화관·커피숍 같은 곳도, 여행도 가지 않았다. 여자는 원래 사람 많고,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래도 그렇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둘은 '속도위반'으로 계획보다 빨리 결혼했다. 15개월 된 아이 때문에 한동안 하지 못한 오붓한 술자리를 최근 다시 시작했다.

남자는 처가에 가는 걸 매우 반긴다. 외동이라 형제 많은 아내 집에 가면 사람 사는 냄새를 더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가에서도 술이 빠지지 않는다. 처제, 둘째 처형 등 주당 멤버 몇이 있다. 다음날 이들이 먹은 술병을 보면 장모님은 매번 놀란다.

둘은 다시 술잔을 두고 마주앉았다.

남편 준원 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2박 3일 동안 기다린 것 말이야. 그때는 '집착'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좀 이해가 안 되기도 해."

아내 경희 씨는 '집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걸 지금의 섭섭함으로 돌려 말한다. "요즘 나한테 하는 게 옛날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초심을 잃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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