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30년 경력 환경미화원 이강노 씨

20여 년 전만 해도 전 국민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있었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골목에 울려퍼지는 종소리에 사람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집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 손에는 한짐 커다란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거기엔 며칠씩 묵은 집 안 생활쓰레기가 그득했다. 아침마다 고샅고샅을 누비던 쓰레기 수거 트럭 종소리가 만들던 일상 풍경이었다.

환경미화원 이강노(60) 씨. 그는 곤히 잠든 세상을 깨우던 아침의 전령사였다. 매일 새벽이면 4.5t 쓰레기 수거 트럭에 올라 마산 일대를 돌며 종을 울렸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골목 사거리에 수거 트럭이 서면 직접 종을 치며 골목과 골목을 오갔다. 이 소리를 들은 시민들은 하나 둘씩 집에서 나와 모아 둔 쓰레기를 트럭으로 가져왔다.

"종을 치고나면 사람들이 들고 나온 쓰레기 바구니를 직접 들어올려 트럭에 부었죠. 한번 8t 트럭으로 움직일 때면 일이 고되기가 이루 말할 것도 없었지요."

이 씨는 마산지역 환경미화일에 산증인이다. 지난 1985년 친척 어른 추천으로 마산시에서부터 일을 시작한 그는 올해로 꼬박 30년을 채웠다. 올해를 끝으로 정년퇴임을 맞는데 마산에서 두 번째로 오랜 경력을 가졌다. 쓰레기 수거 트럭은 물론이거니와 거리 청소로 마산 전역 안 맡아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현재는 자신이 거주하는 마산회원구 내서읍 지역을 맡아 아침이면 거리 청소에 열중이다. "새벽 3시 반만 되면 일을 하러 나옵니다. 오전 8시까지 청소 작업을 하고 아침을 먹지요. 식사 후에는 9시부터 다시 아침에 나온 무단 투기 쓰레기와 거리 이물질를 마저 정리하고 11시면 돌아와 휴식한 뒤 점심을 먹지요."

본래 마산지역 환경미화원 일과 시간은 오전 6시부터. 하지만 30년 동안 몸에 밴 부지런한 습관이 몸을 좀체 가만히 두지 않는다. "새벽이면 눈이 떠지는데 멀뚱히 가만이 있기도 그렇고 허허. 일도 일찍이 해두면 다들 좋지요." 커다란 입에서 터지는 너털웃음이 정겹다.

그도 그럴 것이 내서는 다른 지역보다 일이 많은 편이다. 주민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려서가 아니라 산과 하천이 어울린데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선 터라 각종 풀이나 낙엽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떨어지는 탓이다. "산에서 바람타고 넘어오지요. 아파트 조경수에 가로수까지 낙엽이 참 많아요. 그래서 부지런하지 않으면 거리가 쉬이 지저분해지죠."

담당 구역이 아니라도 때때로 비가 온 다음날 광려천 변으로 떠내려 온 쓰레기를 치우는 데 지원을 나가기도 한다.

작은 체구지만 단단해 보이는 그의 몸에는 훈장(?)인 양 군데군데 상처가 보인다. 쓰레기 수거 차량을 타는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가운데 새겨진 쓰린 아픔이자 영광의 표시이다.

특히 오른쪽 팔에는 아스팔트에 쓸리면서 남은 30㎝ 남짓한 흉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 씨는 쓰레기 수거 트럭을 맡아 16년여 일했다. 트럭에 매달려 이동하는 작업 특성상 크고 작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팔에 상처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생겼어요. 당시에는 마산 쓰레기를 창녕 남지 매립장에 내렸는데 쓰레기가 많아 그랬는지 가던 도중에 차가 넘어져 버렸어요. 그때 오른팔을 땅에 짚었는데 그 상태로 몇십 m를 차와 함께 미끌려 갔죠." 팔에 난 상처는 그때 느꼈을 고통을 짐작게 했다. "그 뒤에도 차에서 떨어지거나 지나던 차에 부딪혀 병원 신세도 졌죠. 수거 트럭이 화물 칸이 높은 탑차로 이뤄져 있다보니 전깃줄에 머리가 닿는 건 예사고, 굴다리에 부딪히기도 하고 허허."

안전의식, 보호장구 등 모든 것이 지금보다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청소 장비도 넉넉하지 않은 것은 물론 손에 익지 않아 불편한 탓에 직접 몸에 맞는 도구를 만들어 일했다.

"대빗자루는 대부분 환경미화원들이 직접 만들어 썼지요. 뒷산 대나무밭에서 나무를 잘라와서 바싹 잘 말린 다음에 잎을 엮어 빗을 만들곤 했죠. 쓰레받기도 페인트 깡통을 구해서 모양을 낸 다음 손잡이도 만들어 붙여서 사용했죠." 지금이야 보급 장비도 늘고 기능도 좋지만 아직까지도 손수 만들어 쓰는 것이 대빗자루란다.

현재 거리 청소용으로 나온 플라스틱 빗자루는 막대가 무거운데다 성능이 대빗자루 그것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환경미화일만 30년. 이 씨는 고된 일이지만 이 일을 통해 아파트도 장만하고 자녀들도 부끄럼없이 남부럽지 않게 성장한 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일하는 동안 시민의식도 많이 성장해 거리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많이 줄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은 횡행하는 불법 투기다. "거리 청소를 할 때면 아직도 제가 비질을 하는데 그곳으로 쓰레기를 던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많이 아쉽죠. 근무하는 것 뻔히 보면서 그래도 되느냐 따지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 조금 더 더불어 사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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