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학교, 신나는 교육] (14) 경기 흥덕고등학교 이야기

혁신학교 이야기, 이번에는 경기도 용인시 공립 인문계 흥덕고등학교입니다. 2010년 개교 당시 용인지역 28개 고교 중 입학성적이 28등으로 이른바 '문제아'들로 가득한 학교였습니다. 지난 2012년 11월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학교란 무엇인가>의 그 학교입니다. 당시 방송엔 적지 않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 중 학교 담장을 넘어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다독이고 보듬어 지금은 용인에서 인기 학교가 됐습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이범희 교장이 있습니다. <교장제도 혁명>(살림터, 2013)이란 책에 실린 이 교장의 '감성적 리더십을 통한 참여와 소통의 학교 문화 만들기'란 글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흥덕고등학교의 목표는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소위 명문 학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육이 지향해야 할 당연한 고등학교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교교육의 정상화이며 교육 본질의 회복이다. 고교 교육이 정상화해야 배움으로부터 도주했던 아이들, 폭압적이고 강요된 학습 환경에서 꿈을 강제적으로 포기해버렸던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오고 삶의 동기를 회복하여 더불어 사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이런 포부로 혁신학교 교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역시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비아냥과 우려의 시선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격려와 묵시적인 응원이 있었다. 아이들은 좀처럼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범희 교장은 포기하지 않고 교사들을 격려했다. 그가 교사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용인 흥덕고교 이범희(53) 교장이 교장실에서 학생들과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는 큰 깨달음을 다시 얻었습니다. 관념적인 주장이나 미사여구, 화려한 말의 성찬이 아니라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어루만지는 선생님들의 처절한 피땀만이 답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자신의 방법으로 치열하게 아이들을 만나는 자발성, 그 지혜를 옆 선생님과 나누는 동료성이 답이지요. 지금까지의 생활지도 문제는 훈육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결핍에 있다고 봅니다. 왜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규정을 아이들에게 지키라고 강요해왔던 측면이 있습니다. 규정을 정하는 데 아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기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책임감도 높아집니다."

이 같은 이 교장의 뜻을 따르려는 교사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이른바 '짱') 아이가 일하는 치킨집에 가서 시급을 올려달라고 부탁하고, 그 아이가 배달하러 다니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함께 배달하러 다녀온 교사도 있다. 이 교장 자신도 담배 피우다 걸린 아이들과 함께 몇 시간이고 같이 운동장을 돌거나 아이들과 지리산 종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흥덕고교 한 교사의 글을 보자. 교사들끼리 서로 다독이며 아이들을 보듬어 가는 과정이 보인다.

"경화(가명)가 2학기 시작하면서 홈스쿨링 한다며 자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힘들었어요. 제가 이런 고민을 몇몇 샘들에게 말씀드렸더니 연극반 샘은 경화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주셨고, 보건 샘은 계속 상담하며 관심을 가져주셨지요. 경화가 흥덕고에서 자기 존재감을 많이 느꼈을 거 같아요. 어제 경화랑 저녁을 먹으면서 많이 행복했어요.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을 흥덕고 안에서 현실로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하고 든든하고 행복했어요."

개교 후 첫 입학식 때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 모두는 이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존재다. 너희 가운데 단 한 아이의 손도 놓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가겠다."

3년 후 첫 졸업식 때 아이들은 가시를 뗀 장미꽃을 교사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입학할 때 우리는 가시가 잔뜩 달린 존재였는데, 선생님들의 사랑이 그 가시를 없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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