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29) 충남 공주시 한옥마을

코스모스 꽃길 따라

새도록

아기별들 놀다간 자국

가을이 성큼 다가와

꽃잎으로 수놓는다.

바람이 지나다 흘린 알밤

돌담 속 깊숙이 묻어 두고

서두르는 아기 다람쥐 양 볼에선

한 움큼씩 쏟아지는 가을.

낙엽이 주저앉아

가을 허리 매어 두고

기러기 나래 짓에 하늘 오르면

타작 소리 온 동네 합창을 한다.

산마다 가을이 활활 타오르고

여치 없이 소리 주워담아 살찌는 마을.

귀뚜라미 스르르 깊어 가는 가을.

-김규성 시인 '가을'

여운이 길다. 괜스레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날 밤 귓가를 맴돌았던 '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왕우왕' 개구리보다는 뭔가 큰놈이 울어대던 소리도 기억을 깨운다.

희미하게 한지에 스며들던 노란 등이 주던 편안함은 여전히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한옥은 자연을 오롯이 담은 집이다. 한지를 곱게 바른 문을 열면 흙 위의 자연과 곧바로 눈높이를 맞추며 소통할 수 있다. 그 문을 타고 싱그러운 바람이 한들한들 불어온다.

바람은 방안에 들어와서도 막힘이 없다. 앞뜰과 뒤뜰로 연결된 문은 잠시 머물던 바람에 길을 내어준다.

문을 닫으면 한지를 통과한 보드라운 햇살이 방 한 귀퉁이를 비춘다.

기둥과 천장, 마룻바닥이 된 소나무와 삼나무는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황토와 닥종이 등에서도 자연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한옥은 우리를 이야기한다. 벽과 벽으로 경계를 이루지만 한 발만 내디디면 대청마루와 툇마루가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독립된 공간을 이루는 칸과 소통을 이루는 길이 공존한다. 닫혀 있되 열려 있고, 열려 있되 닫혀 있다.

예전 공주여행에서 잠시 들렀던 공주한옥마을(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12, 041-840-8900)에서 꼭 하룻밤 묵고 싶었던 계획을 가을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실행에 옮겼다.

방문을 열면 그림 같은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한옥의 낮은 거침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흙길 위를 거닐다 금세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대청마루를 통과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활기찼던 한옥의 낮이 지나면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온다. 밤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 탓에 어두워지지 않는 도시의 밤과는 다른 생경한 풍경이다.

처마 끝에 달린 노란 등이 달빛과 어우러져 은은하게 마당을 비춘다.

달빛은 방안으로 들어와 한귀퉁이를 차지한다.

저 멀리서 들리는 인경 소리는 평화롭다. 툇마루에 무릎을 세우고 걸터앉았다. 목을 힘껏 뒤로 젖혀 유난히 별이 많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편리함 속에서도 한옥에 담긴 자연의 이치는 깨달음을 주고 운치는 설렘을 준다.

회벽의 고층 건물에 익숙했던 눈이 나지막한 수평의 한옥 지붕에 편안해진다. 한옥에 들어서면 괜스레 몸과 마음이 넉넉해지는 이유는 곳곳에 숨어 있다.

한옥의 모든 규칙은 우리 몸과 직결되어 있단다. 예를 들면 마루로 통하는 문지방의 높이는 어깨너비와 같으면 앉았을 때는 팔을 편하게 올릴 수 있는 높이가 된단다. 주로 앉아 있는 방은 주로 서서 생활하는 마루보다 높이가 낮단다.

굳이 이런 것을 따지지 않아도 이미 몸이 알아챈다.

경쾌한 새들의 지저귐이 창호지를 통과해 귓전을 두드리는 아침이 오기까지 괜스레 설레던 한옥에서 가을밤은 길고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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