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은 사퇴, 올 시즌 목표는 경험"

마산구장을 누비는 NC 선수 가운데 유독 안경을 고집하며 경기장에 나서는 이가 있다. 안경을 쓰고 짧게 잡은 방망이를 호쾌하게 돌리고, 안경에 흙이 튀어도 다이빙을 서슴지 않는다. 올 시즌 NC 돌풍을 이끄는 신인선수 중 복덩이로 불리는 유격수 노진혁(24)이 그 주인공이다.

노진혁은 2008년과 2011년 야구월드컵 국가대표에도 발탁된 경험이 있는 유망주였다. 큰 기대를 받으며 프로에 입단한 노진혁은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63경기에 나와 0.194(144타수 28안타) 2홈런 25타점 3도루를 기록했다. 공격적인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지만, 노진혁은 안정된 수비력으로 김경문 감독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올 시즌 초반에만 해도 FA로 영입한 베테랑 이현곤에 주전 자리가 밀릴 것이라는 지배가 완연했지만 어느덧 당당히 NC 주전 유격수로 활약 중이다.

NC가 넥센을 상대로 창단 첫 승을 기록한 지난달 30일, 마산구장에서 매섭게 방망이를 돌리던 노진혁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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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다이노스 노진혁 선수./박일호 기자

트레이드마크가 된 안경, 별명도 여럿

올 시즌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노진혁은 생전 처음으로 팬에게 ‘노량진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경을 쓴 야구선수가 인상에 남았는지 팬들은 ‘서울대생’, ‘노검사’라는 별명까지 지어줬다. 최근에는 ‘토마토송’을 개사한 응원가 덕에 ‘마산 뽀로로’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제가 올 시즌 받아든 별명들을 보면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는 것 같아요. 노량진에서 살면서 서울대에 입학한 한 청년이 검사가 됐고, 그 검사는 훗날 대통령이 됐다. 한 포털사이트에 노진혁의 일대기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가 있던데 지인이 제게 알려줘 읽어봤어요. 그 내용을 듣고 보니 부담스러웠던 제 별명들이 좋아지더라고요.”

노진혁의 직위 높은 별명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노진혁이 안경을 착용한 모습은 영락없는 모범생이다. 누구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했을 것 같은 그의 지적인 이미지 탓에 여러 별명이 탄생한 것.

사실 노진혁이 안경을 쓰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제 시력이 0.5 정도라 사물이 흐릿하게 보일 때가 잦아요. 지난해 경기 중이나 더그아웃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공을 유심히 따라가려고 인상을 잔뜩 쓰고 있으니 감독님께서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착용하라고 권유하셨어요. 감독님도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제가 왜 인상을 쓰고 있는지 아셨던 것 같아요. 감독님의 말 한마디에 곧장 안경점을 찾았어요. 그만큼 제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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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진혁 선수의 경기 모습./박일호 기자

사실 그의 시력이 나빠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야구 때문이었다. 광주 동성고 3학년 시절 런다운 연습 중 눈에 공을 맞아 눈을 다쳤다. 그 뒤로 조금씩 눈이 나빠졌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결국 현실을 거부했다. 현실을 부정한 채 안경을 쓰지 않고 훈련에 참가하고 대회에도 나섰다. 

성균관대 3학년 시절 부모님의 권유로 안경을 써봤지만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야구도 잘 되질 않았다. 안경을 착용하고 나선 대회에서 4번 타자라는 중책에도 타율이 1할에 미쳤다.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이게 다 ‘안경’ 탓이라며 필요 없는 물건으로 취급하던 ‘안경’은 이제 노진혁에게 더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됐다.

“이제는 안경이 없으면 불편해서 운동을 하기 힘들어요. 진작 사용할 걸 그랬어요.(웃음)”

아이들도 부르는 노진혁 응원가

NC 응원가 중 최고의 히트작은 권희동과 노진혁의 등장송이다. 권희동은 시즌 초반 자신의 응원가를 사람들이 비웃는 것 같아 바꿨다가 다시 본래의 응원가로 돌아왔다. 

노진혁도 처음 응원가가 나왔을 때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부끄러웠다고 한다. 동요 ‘멋쟁이 토마토’를 개사한 노진혁의 응원가는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쉽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쉬운 응원가가 부끄럽고 민망했다고 털어놨다. 

“처음 응원가를 들었을 때 저도 희동이처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내 응원가는 민망하게 만들어서 사람 맥을 빼놓을까 하는 사념에도 빠졌어요. 거기에 4월에는 수비할 때도 빈번하게 실수를 하는 바람에 더 위축됐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응원가를 교체하려는데 (조)영훈이 형이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응원가는 축복받은 것이라며 저를 말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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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진혁 선수의 경기 모습./박일호 기자

고민을 거듭하던 중 노진혁은 경기를 마치고 숙소를 향하던 중 NC 유니폼을 입은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고 결정을 내렸다.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품에 안겨서 ‘노진혁 안타 칠꺼야’ 하고 제 응원가를 부르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또 고마웠습니다. 아이들이 제 응원가를 따라하면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응원가의 소중함을 알게 된 노진혁은 5월부터 성적도 급반등을 이뤘다. 4월에는 54타수 10안타로 타율 0.185를 기록했지만 5월 타율은 70타수 20안타로 0.286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야구계에서 유격수는 0.250만 쳐줘도 고마워한다고 하는데 이를 넘기는 기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올 시즌 우리 팀 구호처럼 저는 거침없이 나아갈 겁니다.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팬들에게 받는 사랑을 보답하는 길일 테니까요.”

3개의 1호 기록, 올 시즌 목표는 ‘경험’

NC의 1호 기록을 보유한 선수들 중 유이하게 2개 이상의 기록을 보유한 선수는 주전 경쟁 중인 이현곤과 노진혁이다. 이현곤은 지난 4월 2일 롯데와 개막전에서 첫 도루에 성공했다. 이어진 3일 경기에서 NC 1군 무대 첫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노진혁도 이에 질세라 3일 첫 기록을 올렸다. 노진혁은 무사 2루에서 보내기 번트를 성공해 감격스런 첫 희생타의 주인공이 됐다. 이 희생타로 이현곤이 첫 득점에 성공할 수 있었다.

노진혁의 두 번째 1호 기록은 첫 3루타다. 1군 무대 15경기 만이던 지난 4월 18일 한화와 경기에서 만들어냈다. 팀이 2-0으로 앞선 2회 초 주자 없는 가운데 8번 타자 유격수로 출장했던 노진혁은 우중간 외야를 꿰뚫는 타구를 생산했고, 바로 3루까지 내달려 여유 있게 3루 베이스를 밟았다.

마지막 기록은 바로 인사이드 파크 홈런이다. NC의 첫 홈런은 4월 5일 삼성전에서 조평호가 쏘아 올렸다. 인사이드 파크 홈런은 빠른 발과 장타력이 없이는 양산하기 어렵다. 하지만 NC의 첫 그라운드 홈런은 겨우 65m짜리 장내홈런이었다.

노진혁은 지난 4월 27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홈경기에서 NC 구단 사상 10번째 홈런이자 첫 그라운드 홈런을 쳤다. 

노진혁은 두산 선발 김선우의 공을 때려냈고 완만한 라이너로 향하는 타구에 두산 중견수 정수빈이 대시했다. 하지만 이 판단이 노진혁에게 또 하나의 기록을 제공했다. 정수빈 앞에서 큰 바운드가 튀어 오르면서 타구는 펜스를 향해 천천히 굴러갔고, 노진혁은 3루 베이스를 거쳐 홈을 밟았다. 이날 경기 전까지 18경기에서 46타수 8안타 타율 1할7푼4리 3타점을 기록하며 아쉬움을 남겼던 노진혁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어리둥절했어요. 3루로 가는 데 주루 코치님이 팔을 돌리시더라고요. 뒤도 안 돌아보고 정신없이 뛰었어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어요. 경기가 끝나고 공이 굴러간 거리가 116m인데 공이 떨어진 지점은 65m라고 들었어요. 살짝 민망해지긴 했지만 그날 3-4로 뒤지던 경기에서 나온 홈런이라 더 의미가 컸어요. 그러고 보니 1호 기록이 3개네요. 사실 2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분이 더 좋아지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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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진혁 선수의 경기 모습./박일호 기자

지난 5월의 활약으로 노진혁은 어느덧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저는 신인왕 재목이 아닙니다. 우리 팀에는 성범이도 있고, 재학이, 태양이, 희동이 등 신인왕 자질이 충분한 선수들이 넘쳐요. 훌륭한 선수가 많기에 저는 신인왕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겠습니다.”

노진혁이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100경기 이상 출장이 목표예요. 처음 목표는 2할 5푼의 타율을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수치는 머릿속에서 지웠어요. 되도록 경기에 자주 나서 체력관리 하는 방법을 터득해야죠. 제 야구 인생 최고의 목표는 오랫동안 꾸준히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거든요.”

올 시즌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입성한 NC와 함께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노진혁. 수많은 좌절과 환호가 그의 인생에서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는 태연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 겉모습은 약해 보이지만 속은 꽉 찬 외유내강의 선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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