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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백련지 연꽃은 없었지만, 푸른 연잎도 장관

[경남도민 생태·역사 기행] (5) 전남 무안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4년 09월 03일 수요일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경남도민일보가 함께 진행하는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은 6월 25일 경북 포항을 다녀온 다음 7월 한 달을 건너뛰고 8월 13일 전남 무안으로 다섯 번째 걸음을 놀렸다. 조선 후기 우리나라 전통 다도를 중흥시킨 스님 초의(草衣)선사가 탄생한 자리와 동양 최대 백련 군락지로 알려진 회산백련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창원 만남의 광장을 오전 8시에 출발한 버스는 세 시간 남짓 걸려 초의선사탄생지에 가 닿았다. 같은 전남의 신안과 함께 갯벌이 너르기로 유명한 서해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 시간 남짓 걸려 초의 탄생지에 도착했더니 가는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대각문(大覺門)이라 적힌 정문을 통해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복원된 초의 생가가 숨은 듯이 앉아 있고 앞으로는 층층이 나란한 차밭이 나온다. 차(茶)라 하면 경남 하동 야생차나 전남 보성 녹차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도 차나무를 볼 수 있다니….

하지만 알고 보면 차나무가 그렇게 드문 존재는 아니다. 전통차에 대한 우리 관심이 드물 따름이다. 먼저 어지간한 절간에는 대체로 차밭이 만들어져 있다. 이런 가운데는 품질 좋은 차를 생산해내는 절간도 있는데 이를테면 사천 다솔사가 그러하다. 심지어는 지역 주민을 위해 일부러 차나무를 심고 가꾼 데도 있는데 창원 진해 장복산 일대에 가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초의선사 탄생지. 잘 만들어진 차밭 사이로 올라가는 모습. /김훤주 기자

보통 사람들은 전통차라 하면 만들기도 어렵고 마시기도 어렵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금도 차나무는 새순을 내어놓는데, 그것을 잘라 적당한 방법으로 말리고 비비고 덖거나 뭉치면 그만이다. 물론 사전 지식 전혀 없이 즐길 수 없기는 커피를 비롯한 다른 마실거리와 다를 바 없지만.

조선 시대 스님은 천민이었다.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런데 초의선사는 달랐다. 당대 으뜸가는 지식인이었고 갖은 학문에 능했던 추사 김정희와 오랜 시간 친구로 사귀었다. 둘이 그렇게 친하게 지냈음을 알려 주는 비석이 여기에 마련돼 있다. 추사가 초의한테 보낸 편지에서 따온 글귀를 새긴 것이다.

"고요히 앉은 자리에 /차는 반이지만 향기는 처음과 같고// 묘한 작용이 있어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잘은 모르지만 그윽함은 느껴진다. 이를 두고 열정적으로 해설을 하시는 사진작가 겸 전직 대학교수인 박종길 선생은 차와 선(禪)이 다르지 않음을 일러준다고 풀이한다. 그렇기는 하겠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자세를 고르고 몸과 마음을 열어나가는 그런 경지가 실행은 못해도 상상은 되는 것이다.

박 선생의 해설은 그치지 않는다. 한 칸짜리 일지암 초당에서는 초의선사가 이 띠집을 고쳐 짓고 거처하면서 <동다송(東茶頌)>·<다신전(茶神傳)> 같은 책을 썼다고 소개한다. 다신전은 찻잎을 따서 마시는 전체 과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고 동다송은 다도와 우리 차에 대해 일러주는 책이다.

이처럼 초의 또한 추사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둘은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살이 갔을 때 초의가 가장 먼저 찾아가 함께 머물면서 위로하기도 했다고 박 선생이 설명을 이어나가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이런 바탕으로 55살 때인 1840년 헌종한테서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종사(大覺登階普濟尊者草衣大宗師) 시호를 받았고 이를 새긴 빗돌이 여기에 세워졌다.

초의선사기념관과 조선차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용호백로정을 찾았다. 기와를 얹은 용호백로정 바로 곁 연못에서는 몇 송이 꽃을 빼어문 연들이 줄지어 있었다.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들어간 몇몇은 연꽃을 사진찍고 더불어 사람도 찍었다.

회산백련지에서 몇 남지 않은 연꽃이지만, 포커스를 맞춰 사진을 찍는 모습.

가까운 서해명가(061-285-8533)에 들러 그야말로 정성껏 깔끔하게 잘 차려낸 밥과 반찬에 동동주까지 한 잔씩 곁들인 일행은 회산백련지로 향했다. 다음날인 14일부터 나흘 동안 '무안 연꽃축제'가 같은 장소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기에 연꽃은 당연히 피어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가는 길에 보니까 듬성듬성 연꽃이 피었기에 아직 피지 않았나 싶었으나 그것은 대부분이 이미 지고 남은 몇몇이었다.

알아봤더니 원래 개최 시기는 7월 하순이지만 올해는 보름 넘게 늦췄다고 한다. 까닭을 물었더니 세월호 참사 때문이란다. 하기야 세월호에서 숨진 사람들 생각하면 이런 걸음조차 아직은 조심스러운 것이다. 어쨌든, 넓이가 10만 평 남짓으로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일제강점기 물세 수탈을 조금이나마 벗어나려고 조선 백성들이 들판 한가운데를 피땀으로 파고 들이세운 저수지에서, 하얀 연꽃들을 줄줄이 눈에 담는 즐거움은 아쉽지만 누리지 못했다.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 초당 앞에서.

하지만 꽃이 적으면 또 어떠랴, 한 바퀴 둘러보기는 해야지…. 기대했던 대규모 연꽃을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주어진 사정에 적당히 맞춰 즐기고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던 반면 물 위에 푸른 연잎이 이렇게 너르게 펼쳐지는 것도 장관이라는 이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연꽃 몇 송이 드문드문하고 실하게 맺힌 연밥은 그보다 좀 덜 드문드문하고 푸른 연잎과 푸른 잎사귀를 매단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산책로를 깜냥껏 걸으며 사진을 찍곤 했다. 또 여기저기 마련된 쉼터에 모여 얘기를 나누거나 하다가 오후 3시 30분 발길을 돌려 창원으로 돌아왔다.

용호백로정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참가자들.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에서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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