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들으며 얼음위 쌓인 눈 밟는 기분이란…


거창 금원산(1352m)은 가까이에 있는 기백산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산이다. 색깔로 치면 금원산은 검은 산이고 기백산은 흰 산이 된다. 금원산의 금은 그냥 얹어놓은 글자며, 대표적인 검은 동물인 원숭이를 뜻하는 원(猿)자가 핵심이다.
기백산의 흰 백(白)자는 두루미(鶴)와 통한다. 옛날에는 기백산과 금원산 아래 모인 마을을 일러 원학동이라 했다. 증거가 거창읍내에서 금원산 들어가는 들머리 오른쪽 냇가에 조그만 솔숲과 바위가 어우러진 데에 있다. ‘원학동’을 붉게 새겨 넣은 바위가 있다.
음양설에서 검은색은 무겁고 어두워 땅을 향하니 음이고 흰색은 가볍고 밝아 하늘로 오르니 양으로 본다. 음과 양이 모두 모였고 널찍한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다 물까지 풍성하니 좋은 동네라는 것이다.
하지만 왜 원숭이인가. 하필이면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은 원숭이를 빌려왔는가. 이를테면 ‘지금 여기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들소(buffalo)가 야성의 상징이 되어 있는 것과 닮아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선조들의 뿌리깊은 사대주의가 느껴지는 듯해 께름칙하다.
어쨌거나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다 보니 전설도 많다. 왜구를 피해 효자 번전이 늙은 아버지를 업고 무릎으로 기어올랐다는 피발린 바위(베루바위.마슬암)가 기슭에 깔려 있고 지금은 절터만 남은 동암사에서 내내 허연 쌀뜨물이 흘렀다는 미폭(米瀑)이 매표소 못 미쳐 오른쪽에 걸쳐 있다.
전설의 단골 선녀들이 금원산 골짜기를 놓칠 리 없어 선녀못도 위쪽에 마련돼 있는데 조금더 올라가 왼쪽으로 들어가면 유안청폭포가 나오고 오른쪽은 지재미골로 이어진다.
지장암이 있었다는 지재미골 들머리에는 문바위가 놓여 있다. 고려 충신 이원달이 조선 개국 이후 세상과 담쌓고 지내다 아내와 함께 세상을 떴다는 곳이다. 또 선비들이 한데 모여 공부하던 장소라는 유안청 너른 바위도 있다.
유안청에는 물이 흐른다. 너비가 곳에 따라 30m는 됨직하다. 물은 200m쯤 위에서부터 세 단계로 층을 이루어 떨어진다. 물론 지금은 얼음이 두껍게 깔린 위에 눈이 10cm 이상 덮고 있다. 물은 얼음 아래로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른다. 옆에는 가느다란 버들 잎눈이 보송보송 솜털을 머금고 있다.
바위라는 것, 바위 위로 물이 흘러 폭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볼 때는 눈 쌓인 풍경이 그냥 참 밋밋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했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니 느낌까지 달라진다.
눈 아래 얼음, 얼음 아래 다시 물이 바위를 타고 흐른다. 눈을 들어 둘러봐도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너르다. 열흘 전 내린 눈에 발목까지 잠기는데 버들의 잎눈은 생명을 틔우는 봄기운을 건네준다.
여기서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임도를 세 개 건너면 팍팍한 오르막길이다. 이리저리 꼬부라지며 30분 넘게 오르면 능선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발길을 재게 놀려 1시간쯤 더 가면 동봉에 이른다. 동봉에서 산마루까지는 10분 200m 정도만 가면 된다.
산마루에 집착하지만 않으면 금원산 자연휴양림을 세로로 질러가는 임도를 따라 걷는 재미도 작지 않다. 눈 내리는 겨울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즐거움이다. 지난달 말 내린 눈이 채 녹지 못하고 사람 발길을 맞고 있다.
어떤 부부는 딸아이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어떤 남녀는 나란히 팔짱을 끼고 추억거리를 남긴다.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데 왼쪽으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쇠막대를 질러놓은 오른쪽으로 가면 아직 아무도 발자취를 남겨놓지 않았다.



△가볼만한 곳

금원산 바로 옆에는 수승대가 있다. 경남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만한, 이른바 ‘국민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풍경은 오히려 금원산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발품 팔아 힘들여 오르지 않아도 되니 힘든 나날에 찌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사철 내내 문을 여는 눈썰매장도 있는데 값이 어른 5000원,아이 3000원으로 싼 편이다. 하지만 거리가 떨어져 있다 보니 오후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몰려 많이 탈 수 없다.
일찍 서둘러 오전 10시 개장 시각에 맞추어 아이들과 1시간 반 어울리다가 명승을 둘러보고 금원산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골라잡을 수도 있겠다. 수승대 한가운데는 거북바위가 있다. 이를 둘러싸고 흐르는 물소리가 대단한데, 어떤 곳은 물이 검푸른 게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거북바위에는 온갖 낙서가 다 돼 있다. 옛날 사람들도 뭔가 자취를 남기고 싶어했나 보다.
수승대는 풍광만 좋은 게 아니다. 왼쪽에는 구연서원이 있는데 드나드는 문인 관수루(觀水樓)는 왼쪽 어깨를 자연석에 기대고 서 있다. 바로 앞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잎을 떨군 채 서 있고 자연석 너머에는 배롱나무도 함께 서 있다. 봄철이나 가을철 잎과 꽃이 한창일 때는 그것만으로도 그림이 되고도 남는다.
건너편에는 요수정이 있다. 흐르는 물이 좋아 찾는 정자쯤 되겠다. 앞으로 휘영청 굽은 소나무가 둘러서 있는 데에 숨어 있지만 물을 내다보기는 참 좋은 자리다. 삐져나온 바위에다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물을 꼼꼼히 뜯어본 이는 안다. 흐르는 물도 응집력이 있어 바위를 두드리며 떨어질 때는 알알이 흩어졌다가 조금 지나야 하나로 합쳐진다. 물방울이 물 위에서 통통 튀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를 잡아두고 싶어 사진기를 갖다대지만 제대로 찍히지 않아 속을 썩인다.
수승대는 사람들이 붐비지 않을 때를 골라 찾아야 한다. 여름철에는 그야말로 ‘송곳 꽂을 자리’도 찾기 어렵다. 물에는 콩나물 시루나 대중 목욕탕처럼 사람들이 들어차 있고 곳곳에서 구워대는 고기 냄새가 등천을 한다. 깨진 수박이 뒹굴고 술주정 소리도 심심찮게 듣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여름에는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겨울철에 오붓하게 찾아보는 게 더 좋다는 얘기다.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동마산 나들목에서 자동차를 올려 진주쪽으로 가면 된다. 서진주 나들목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로로 옮긴 다음 함양 나들목으로 빠져 표지판을 따라 거창으로 가면 된다.
잇따라 수승대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를 따라 10분 정도 가다 보면 왼쪽으로 금원산 가는 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대여섯 봉우리가 어깨를 마주대고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전~통영 고속도로 덕분에 2시간 정도면 족하다. 진주에서는 국도 3호선이나 대전~통영 고속도로 가운데 입맛대로 타면 되겠다.
국도로 가려면 동마산 나들목을 지나 의령에서 빠진다. 왼쪽 길로 접어들어 국도 20호선을 따라가다 단성에서 국도 3호선으로 갈아탄다. 여기서 산청.함양을 지나 길 따라 죽 가면 된다.
진주시외버스버미널에서 거창 가는 버스는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30분마다 있으니까 교통편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다.
하지만 마산시외버스터미널은 교통편이 좋지 않다. 오전 9시 18분 첫차부터 오후 3시 54분 막차까지 8대밖에 없다. 따라서 버스를 타려면 마산에서 진주까지 가서 다시 거창행 버스로 갈아타는 게 좋겠다.
마산.창원으로 돌아올 때는 국도를 타라고 하고 싶은데, 부산으로 가는 차들이 남해고속도로를 꽉 채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국도 3호선을 따라 내려오다 단성에서 국도 20호선으로 옮겨 탄다.
다만 무인속도측정기가 곳곳에 있으므로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운전하겠다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 의령에서 1004번 지방도를 따라 함안 가야를 가로질러 내서로 빠지는 길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