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동구밖 생태·역사교실] (14) 하동

하동은 복받은 땅이다. 기름진 들판과 반짝이는 모래톱을 곳곳에 만들며 굽이치는 섬진강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봄이면 매화·벚꽃 흐드러지고, 꽃 진 자리에 푸른 그늘을 내어주는 여름도 넉넉하다. 최참판댁·화개장터·쌍계사·칠불사 같은 볼거리에 더해 참게장·재첩·벚굴 등 먹을거리까지 얼마나 풍성한가!

8월 23일 진해 영은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한 역사탐방은 하동에서도 쌍계사로 떠났다. 십리벚꽃길이 한창 꽃잎을 피울 때 말고도 발걸음이 아깝지 않은 곳이 쌍계사다. 절을 두고 교회나 성당처럼 종교적인 장소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데가 바로 절간이다.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빚어 만든 문화재가 있고 서민들 애달픔이 담긴 기원한 흔적이 있고 전쟁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의 얼이 새겨져 있는, 말하자면 역사의 종합선물세트인 것이다. 역사탐방을 하면서 절을 뺀다는 것은 적어도 한쪽 면은 돌아보지 못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탐방에서는 국보 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를 중심으로 삼았다. 신라 시대 창원 출신 진감선사(774~850)를 기리는 내용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썼다고 해서 더 유명하다. 진감선사는 선(禪)과 차(茶)와 범패(梵唄)를 널리 알렸는데, 특히 불교 음악인 범패 대중화에 공을 들였으며 목소리까지 아름다워 배우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진해 영은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8월 23일 하동 쌍계사로 역사탐방을 다녀왔다. 쌍계사에서 자기가 본 절간을 그리는 한 아이의 모습. /김훤주 기자

비문을 쓴 최치원은 누구인가! 신라 말기 문장가·유학자로 이름높은 고운은 12살에 당나라에 유학해 18살 젊은 나이로 빈공과에 장원 급제했다. 최치원에 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앞에 두고 그 업적을 읊는다 해도 알아듣고 새길 리는 없다. 대신 최치원이 당나라에 건너간 나이와 같은 친구는 손을 들라 했더니 대여섯이 번쩍 든다. "최치원은 그 나이에 당나라 유학을 떠났는데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꼬?" 했더니 멋쩍게 손을 내린다. 하하. 그렇게 말하는 사람 또한 국민학교 1학년 여덟 살에 처음 한글 이름을 깨쳤는데 말이다.

최치원 흔적은 어디 가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특히 우리 경남은 지금까지도 그이 행적이 전해지는 데가 곳곳에 수북하다. 바위에 최치원이 먹을 갈던 자리와 무릎 자국이 남아 있다거나, 도술로 자기 호를 새겼다는 얘기 따위가 숱하게 널려 있다. 최치원은 바람처럼 물처럼 자유롭게 떠다닌 방랑시인 김삿갓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고 곁들이니 알아듣기나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더불어 가야산에 들어가 신선이 됐다는 등등 전설도 그이 사상의 한 바탕인 도교와, 그이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 알려진 바가 없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하동에 남은 최치원의 자취는 탑비뿐만 아니다. 영정(보관은 국립진주박물관)을 모시는 운암영당도 있고, 원래는 지리산 들어가면서 꽂아둔 지팡이였는데 거기서 잎이 나고 자라서 됐다는 범왕리 푸조나무, 세상에서 들은 더러운 말을 잊으려고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洗耳岩)이 그대로 있다는 얘기를 여기 대공탑비를 공부하기 전에 덧붙인다.

쌍계사 이르는 길은 늦더위가 진땀을 빼게 했다. 그러나 햇볕에서 조금 비껴나자 이내 숲그늘이 이어진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골짜기 물소리가 더욱 시원해져 마음까지 씻어준다. 일주문과 금강문을 지나자 아이들은 대공탑비를 찾아 내달린다. 탑비 관련 미션 가운데 가장 열정적으로 풀었던 것은 마지막 문제. 거기 새겨진 한자 가운데 알고 있는 글자를 열 개 이상 찾아 적기.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탑비에 머리를 박고 찾았다.

진감선사대공탑비에서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가 아는 한자를 찾고 있다.

탑비가 국보 몇 호이고, 진감선사가 어떤 업적을 남겼고, 쌍계사 옛 이름이 옥천사였고가 사실 무어 그리 중요할까! 아이들이 저렇게 신나게 열심히 빠져드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놀이고 공부가 되는 법이다. 절을 돌아보며 가장 인상에 남는 하나를 그리는 미션도 있었는데 석등·대웅전·탑비·물을 뿜는 거북 등이 꼽혔다. 으뜸 작품은 대공탑비였다. 기교나 멋은 없지만 탑비에서 자기 아는 한자를 찾아 삐뚤삐뚤 그려 넣었다. 사물을 관념적이나 형식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에는 자세히 그리기가 가장 좋다.

전각 아래 그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절에 있는 모든 것은 크든작든 다 그에 걸맞은 뜻이 담겨 있다. 문에 새긴 문양이 그렇고 벽에 그린 그림이 그렇고 달려 있는 종 또한 마찬가지다. 쌍계사에서 마지막 공부는 범종루 앞에서 이뤄졌다. 누각에 있는 사물(四物)- 범종·법고·운판·목어는 모두 임무를 띠고 있다. 이 사물들은 자기가 내는 소리로 저마다 다른 중생을 구제한다.

땅 밑에 있는 쇠로 만든 범종은 지옥 중생을, 소가죽으로 만든 법고는 가죽이 있는 모든 짐승을, 구름 모양 운판은 공중을 나는 짐승을,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목어는 물 속 중생을 구제한다는 얘기가 색달랐는지 아이들이 귀기울여 들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복습을 겸해 '깜짝 퀴즈'를 냈더니 제법 많은 친구들이 외우고 있었다. 돌아서면 또 잊어 먹겠지만 그래도 좋다. 무엇이든 시작은 작지만 그것이 조금씩 모이고 쌓이면서 더 크고 더 넓어질 테니까.

단야식당에서 나물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차문화전시관으로 옮겨갔다. 차시배지도 한 번 둘러보면 좋겠지만 더운 여름에는 지치기 쉽고 아무래도 한창 찻잎을 따는 봄이 어울릴 것 같았다. 녹차라 하면 가장 먼저 어디가 떠오르느냐 물었더니 다들 전라도 보성을 꼽는다. 하동도 보성 못지 않게 녹차 생산량이 많으니 기억을 해두라고 당부를 잊지 않았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는 아이들.

오랜 가뭄 끝에 물난리를 만난 지금은 어디 가도 물이 차고 넘친다. 화개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아이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동안의 물놀이는 가라! 그야말로 물천국이다. 오늘 공부 다 까먹어도 그만이다. 언젠가 최치원을 다시 만나게 될 때, '아 맞다! 그때 하동 쌍계사에서 공부했던 바로 그 사람이지', 이 정도만 떠올릴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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