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경남·울산-부산지역 유치전 치열…2011년 결국 건설 계획 백지화

최근 국토교통부가 영남지역 항공수요 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면서 영남권 5개 시·도가 들썩이고 있다.

첫째는 신공항 건설 필요성이 충분하다는 연구용역 결과 때문이고, 둘째는 각자 유리한 지역에 신공항이 건설되도록 하려는 속내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신공항 건설이 기정사실화한 데 따른 것이지만, 과연 지역 주민의 바람처럼 순조롭게 신공항이 건설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명박 정부 때 이미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백지화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영남권 신공항을 지역 내에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칫 '떡 줄 놈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격'이 되지 않도록 지역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과 =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검토되었지만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다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이를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구체적으로 추진됐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동남권 신공항 타당성 조사 연구 용역을 시행했다. 결과가 나왔지만 이명박 정부는 연구용역 결과 발표를 두어 차례 연기했다. 다음해에 있을 지방선거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정부는 입지평가위원회를 구성해 밀양과 가덕도를 놓고 입지 타당성을 평가했다. 2011년 3월 말에 발표된 평가 결과는 '경제성 부족'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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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입지평가위원회가 발표한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 평가분야별 세부결과'를 보면, 합격점 50점에 밀양은 39.9점, 가덕도는 38.3점을 받았다. 경제성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쓰이는 '비용 대 편익' 비율도 밀양이 0.73이었고, 가덕도가 0.7로 나왔다. 둘 다 기준치인 1에 미치지 못해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영남권 5개 시·도 주민의 입맛은 씁쓸했다.

◇갈등 =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과 입지평가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밀양에 신공항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구·경북·경남·울산과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부산이 큰 갈등을 빚었다. 각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밀양과 가덕도의 입지 우위성을 주장했다.

양쪽 진영에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경제계까지 가세해 서로 충돌했다. 각 지방의회에서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하는가 하면, 지역별로 유치추진위원회는 물론이고 포럼까지 결성해 각기 주장하는 입지가 신공항을 건설하는 데 얼마나 유리한지, 혹은 상대편 입지가 얼마나 불리한지 지적하기에 바빴다.

부산은 동남권 신공항은 우리나라 제2의 관문공항, 허브공항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24시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가덕도에 공항이 건설되면 소음공해를 걱정하지 않고 24시간 운항을 할 수 있지만 밀양은 그렇지 않은 점을 고려한 주장이었다.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인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일대 전경./경남도민일보DB

이에 맞서 대구·경북·경남·울산은 영남권 어느 지역에서라도 1시간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신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것 역시 가덕도에 신공항이 건설되면 대구·경북에서 1시간 만에 도달하기 어렵지만 밀양은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양측이 죽기 살기로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는 이명박 정부에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표면적 이유는 사업 타당성 조사 결과와 입지평가 결과였지만, 속내는 어느 한쪽을 선택했을 때 정권이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다는 분석도 있다.

즉, 밀양을 선택하면 부산 민심을 잃을 수밖에 없고, 가덕도를 선택하면 대구·경남·경남·울산 민심을 잃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여기다 수도권 중심의 여론도 한몫을 했다. 당시 서울지역 언론은 타당성 조사 결과와 입지평가 결과를 근거로, 동남권 신공항 건설사업은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수도권 외의 국민이 미주와 유럽 등을 여행하려면 인천공항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려면 4~6시간씩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나, 인천공항 같은 국제적인 노선이 없어서 남부권에서는 외국자본 투자 유치를 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했다. 이명박 정부의 백지화 결정에는 당연히 수도권 중심의 이 같은 언론 보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 뻔하다.

지난 2010년 밀양 신공항 유치 홍보 현수막이 밀양시내 전역에 붙어 펄럭이는 모습./경남도민일보DB

◇지금은 달라졌나? = 정부의 영남지역 항공수요 조사 결과 발표를 전후해, 과거 지역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지역 언론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부산은 이미 지난 6·4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서병수 후보(현 시장)가 신공항 유치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공언했다. 거기다 새누리당은 가덕도에서 김무성 현 대표까지 참석해 신공항 유치 결의를 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토부가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 발주를 앞두고 5개 시·도의 합의를 요청하고 있는 데 대해, 신공항을 건설하더라도 김해공항은 그대로 존치해야 하고, 신공항은 24시간 운영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부산 쪽의 주장대로라면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해보나 마나 가덕도가 유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국토부와 나머지 4개 시·도는 부산의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부산 쪽의 이런 주장에 맞서, 대구시의회는 지난 27일 열린 임시회에서 '남부권 신공항의 공정한 입지 선정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대구시의회는 "신공항이 국가 안보와 제2의 관문공항 확보를 위한 필수 기반시설이며, 남부경제권의 지역 경쟁력 확보와 공동발전을 위한 핵심 인프라다"며 "특정지역이 아니라 남부경제권 전체 이익에 들어맞도록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지역 언론은 벌써 기사와 사설을 통해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건설 추진 계획을 비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조사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경제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요지다. 더불어 경제성이 없는 사업에 국비를 쏟아붓는 것은 세금 낭비일 뿐이라며 2011년 백지화 당시의 논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경남도 입장 = 경남도의 입장은 지역 갈등을 최소화하고 전문가 판단에 맡기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과가 나오면 이를 수용하고, 만약 밀양이 아니라 가덕도로 결정되면 정부에서 그에 상응하는 국책사업을 보장해주면 된다는 견해다.

홍준표 도지사는 지난해부터 이 같은 논리를 펴왔다. 그러다가 지난 26일 오전 도청에서 열린 시장·군수 정책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하면, 그것은 부산공항이지 동남권 신공항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물구덩이(가덕도)보다는 맨땅(밀양)에 하는 것이 낫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주목을 받았다.

경남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신공항에 대한 개인의 의견과 소신을 말한 것일 뿐이다"며 "경남도의 기본 입장은 신공항 입지는 전문가 판단에 맡기고, 지역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자중 자제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남도가 이 같은 자세를 보이는 것은 과거와 같이 영남권 내부의 갈등이 극심해지면 또다시 3년 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분야의 한 전문가는 "5개 시·도가 국토부 결정에 따른다고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입지 타당성 조사를 이끌어가려 하고 있다"며 "이런 경우는 국토부가 과감하게 모든 것을 원점에 놓고 검토해서 입지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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