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박성구·이종남 부부

1979년, 여자는 부산 무역회사 연구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결혼 후 경북 청도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로부터 "주말에 놀러나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에는 일이 많으면 주말할 것 없이 근무해야 했다. 여자는 모처럼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선보러 간다'고 말하고 청도로 향했다. 친구 집에 도착하자 한 남자가 있었다. 친구 남편의 지인이었다.

사실 이 자리는 친구 부부가 남자·여자를 자연스레 엮어주기 위한 자리였다. 사연은 이랬다. 앞서 남자는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히 사진첩을 보게 되었고, 사진 속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남자는 친구에게 소개해 달라는 마음을 전했고, 마침내 그 자리가 성사된 것이었다.

둘은 친구 집에서 그렇게 처음 만났다. 여자는 다음날 기차로 부산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이 마산이던 남자가 함께 기차를 타자는 것이었다. 둘은 청도역에서 새벽 5시 기차를 함께 탔다. 남자는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그냥 병에 든 따듯한 우유 한 병을 사서 여자 손에 쥐여줄 뿐이었다.

그런 첫 만남 후 일주일 뒤였다. 남자가 예고 없이 여자에게 연락했다.

▲ 부부는 1980년 2월 결혼 후 경주로 신혼여행을 갔다.

"지금 부산 구포에 도착했으니 바로 좀 만납시다."

여자는 얼떨결에 만남에 응하기로 했다. 사실 여자 또한 싫지 않은 마음이었다.

'결혼 적령기를 지난 내 나이 24살…. 그런데 첫인상이 멋있었던 이 남자는 직장도 꽤 괜찮으니 처자식 먹여 살리는 건 걱정 없을 것 같고….'

그렇게 둘은 두 번째로 만났다. 남자는 얼마 전 허리를 다쳤다며 계속 아프다는 말을 했다. 여자는 '이 남자 왜 이러지'라면서도 약국에서 파스를 사다가 붙여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소박하게 스며들었다.

남자는 이후에도 불쑥불쑥 찾아오고는 했다. 어느 날은 직장 관용차를 몰고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 직장 동료들이 이 모습을 봤다. 이후부터는 '부잣집 남자하고 결혼한다'는 소문이 퍼져버렸다.

사실 둘은 연애 기간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적이 없다. 1979년 10월이었다. 둘은 대구에서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할 작정이었다. 부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온 나라에 비상이 걸렸다. 둘은 대구에 도착했다가 곧바로 다시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1979년 마지막 날, 다시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남자가 마산 자취방에 여자를 초대했다. 그런데 여자가 도착해 보니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여자가 한 명 있었다. 남자는 여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셋은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런데 뭔가 묘한 기류가 있었다. 여자는 얼마 후 알게 됐다. 남자가 소개한 사람이 여동생이 아니라 여동생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동생 친구가 남자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그날도 예고 없이 자취방에 찾아오는 바람에, 셋이 어색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서 여자는 이 문제를 확실히 정리해야겠다 싶었다. 셋은 다시 만났다. 여자는 여동생 친구에게 '어떤 사이냐'고 물었다. 여동생 친구는 '아무 사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남자·여자는 이러한 6개월간 연애를 뒤로하고 1980년 2월 부부가 되었다.

창원에 사는 박성구(63)·이종남(59) 부부 이야기다. 모처럼 옛 사진첩을 꺼내놓고 34년 전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그런데 종남 씨는 결혼 후 마음고생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부부는 이렇게 옷을 차려입고 종종 사진을 찍는다. 지난해 모습.

"결혼하고 알게 됐는데, 남편이 곗돈을 부어야 했어요. 당시 월급이 13만 원이었는데, 한 달 들어가는 돈이 13만 5000원이나 됐습니다. 그걸 2년 가까이 감당해야 했죠. 급할 때는 일숫돈까지 써가며 막고는 했습니다. 그때 스트레스 많이 받았죠. 결혼 잘못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우리 첫째 딸이 요즘 말로 '허니문 베이비'거든요. 지금도 키가 좀 작고 피부가 많이 까무잡잡한데, 아마 배 속에 있을 때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건 아닐까요."

남편 성구 씨는 그때의 미안함을 이 말로 대신한다.

"그때나 지금까지나, 집안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우리 애 엄마가 잘 이끌어 줘서 고마울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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