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밀양장터'열려, 농성장 철거 이후 첫 행사…전국 각지서 연대자들 모여
밀양 할매들이 전국의 연대자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경찰과 한국전력을 향했던 날 선 목소리는 온화하게 바뀌었고, 긴장이 가득했던 얼굴은 미소를 잔뜩 머금었다.
6월 11일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이 강제 철거된 이후, 흩어졌던 밀양 할매들과 연대자들 약 200명이 모였다. 지난 30일 오후 4시 밀양시 상동면 고정삼거리 주차장에서 '미니팜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이 주관한 첫 '밀양 장터'에서 송전탑 반대 연대의 끈이 다시 이어졌다.
밀양 주민들은 농성 움막이 강제 철거된 지난 6월 11일 이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시즌2'를 준비해왔다. 그중 하나가 도시민들과 상부상조하며 연대의 끈을 더 튼튼하게 하고자 '미니팜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을 만들었고 이날 처음으로 장터를 열었다.
마늘, 된장, 매실액, 각종 효소 등이 손님을 맞았다. 얼핏 보면 흔한 장터 같았다. 둘러볼수록 이 장터, 뭔가 이상했다.
농작물은 밀양 주민들이 직접 기른 것으로 자신의 마을,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정마을 이OO 흑미(1㎏) 1만 원, 밤(1㎏) 5000원'. 장터에 나온 사람들은 765㎸ 송전 철탑 반대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거나 밀양 할매를 그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판매자인 밀양 주민들은 "와 줘서 고맙다"며 사람들에게 연신 인사를 했고, 장터에 온 사람들도 "힘내라"며 파이팅을 외쳤다. 장터에서 가격을 흥정하며 물건 사기에 급급한 일반 장터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직접 담근 된장과 감식초를 들고 나온 골안마을 김해댁은 "6월 11일 움막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는 행정대집행 때 상처를 많이 받아 마음을 추스르고 달려보자는 의미로 장터에 참여했다"면서 "십 년 동안 경찰, 한전 직원과 길을 막고 싸우다가 화기애애한 장터에 오니 기분이 정말 좋다. 장터에 온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고정마을 박정순 할머니도 "마음이 안정되어 좋다"고 말을 건넸다.
밀양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아크릴수세미, 카드 지갑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획 장터에는 물건이 동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용회마을에서 매주 금요일 밀양 할매와 손바느질을 하는 정미숙(40) 씨는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손바느질 모임을 생각해냈다. 바느질 덕분에 할매들이 옛 기억을 새록새록 끄집어내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면서 "주민과 함께 만들어 낸 물건이 잘 팔리니 기분이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단장면, 상동면, 부북면에서는 자신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던 연대자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내놓았다. 순대, 오징어튀김, 도토리묵, 부침개…. 할매, 할배들이 팔을 걷어붙여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보니 사람들의 입에 침이 고인다.
고답마을에서 온 한 할배는 "우리 마을은 80% 이상이 송전탑 건설하는 거 반대한다. 경찰들이 가장 골치 아파 하는 마을"이라면서 "장사는 처음해 봐 서툴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과 연대자들이 함께하는 장터니까 마냥 좋다"면서 열심히 서빙을 했다.
학생이나 가족 단위 사람들도 밀양 장터를 많이 찾았다. 할매들이 만든 떡볶이와 순대 등을 사 먹었다는 차민석(17) 군은 부산에서 왔다. 차 군은 "밀양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등 밀양 송전탑에 관심이 많았다. 싸우고 대치하는 분위기 대신 화합하고 나누고 즐길 수 있어서 좋다"면서 "금방 사물놀이가 한창일 때 밀양 할매들이 어깨춤을 추고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암울한 상황 속에서 기분이 짠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적정기술 도구 전시와 시연을 하는 '에놔지 장터', 연대자들이 중고품을 판매하는 벼룩시장 '아놔! 바다 장터'도 열렸다.
이계삼 밀양 765㎸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첫 밀양 장터에는 8개 마을이 참여했으며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도시 연대자들이 함께 여는 장터"라며 "판매 금액은 각 마을이 가지거나 일정 부분 기부를 한다. 밀양 장터는 앞으로 매달 마지막 주에 계속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