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따뜻한 마음 없이는 못하는 직업"

무성히 자란 잡초더미가 가음정천 물길을 메우고 있다. 언뜻보면 강원도 어귀 들판 같기도 하다. 개천 옆 잘 닦인 길 양옆으로는 나무가 빼곡하게 줄지어 있다. 푸른 동네, 기분 좋은 동네다. 가로수길 오르막을 지나 코너를 도니 아파트 상가와 함께 ‘메디팜 조윤숙 약국’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네 분위기만큼 기분 좋은 목소리의 주인공 조윤숙(48) 씨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틈틈이 손님 받느라 약 짓느라 의자에 앉을 틈이 없었다. 그 와중에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소소한 안부 인사를 건넸다. 바쁘다, 생기 있다, 그리고 편하다.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사람. 조윤숙(48) 씨 첫 인상이다.

창원 대방동에서 ‘메디팜 조윤숙 약국’을 운영하는 그는 자기 이름이 내걸린 약국에서 안경을 쓰고 흰색 약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긋한 말투로 손님에게 약을 설명했다. 안경 때문일까, 약을 설명하는 직업상 전문성 때문일까. 여하튼 착실하게 공부만 할 것 같은 모범생 스타일이다. 아니,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전국 여약사대회 준비 실행위원으로 활동할 때 뒤풀이 장에서 소녀시대 Gee를 췄어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소녀시대-Gee를 무대 위에서 소화할 정도면 아무래도 공부만 하던 모범생은 아닌 것 같다.

경남약사회 홍보위원장으로 3년 동안 약사회보 만들어

경남약사회 홍보위원장으로 3년 동안 약사회보 만들어 대학생 자녀를 둔 중년이 무대에서 ‘소녀시대-Gee’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그는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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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숙 경상남도 약사회 이사./박일호 기자

“학창시절 친구들이 저보고 꺼벙이라 불렀어요. 덤벙거리고 덜렁거 리고···. 그래서 항상 차분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요.”

남들이 보면 침착하고 차분한 사람 같지만, 막상 친분이 있는 사람은 조윤숙 씨 본 모습을 안다. 그렇다. 조윤숙씨는 공부만 잘하는 인간미 없는 모범생이 아니라, 공부 좀 하는 인간미 넘치는 ‘꺼벙이’였다. 그는 조용하고 얌전한 겉 모습과는 달리 활발한 특유 성격 덕에 메디팜 경남지회 부지회장, 구 창원시 약사회 여약사회장, 경상남도 약사회 홍보위원장 등 많은 자리에서 활동했다.

경남약사회 홍보위원장을 할 당시 조윤숙 씨는 3년간 경남약사회 보도 만들었다. 1년에 4번 나오는 회보였는데 주로 약사가 사는 이야기, 수필, 연수교육 안내 등이 실렸다. 그는 약국을 운영하며 기사를 독촉하고, 광고 후원자 모집까지 도맡아 해 몸이 남아나질 않았지만 “활자에 대한 향수로 회보를 찾는 분이 많아 보람 있었다”고 회고한다.

지금은 통합 창원시 약사회 이사, 경상남도 약사회 이사로 활동 하며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조윤숙씨는 보건계열학생들이 약국, 병원 등으로 취업하는 것을 고려해 수업 중 학생들에게 환자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경험담을 말해주기도 하고 조언해 주기도 한다.

“보건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약국체인업체인 ‘메디 팜’에서 강의도 하고 있고요. 학창시절 교사가 꿈이었는데, 계속 교사라는 직업을 생각해서 그럴까 기회가 돼 약사도 하고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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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숙 경상남도 약사회 이사./박일호 기자

대화하면 할수록 조윤숙 씨는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매일 아침 1시간정도 헬스를, 일주일에 2~3번 요가도 하고 있다.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아 약은 기본으로 챙겨 먹는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준 그만의 건강비결이다. 많은 일을 맡아 했지만, 기회가 되어 열심히 했을 뿐 자신은 약사라고 말했다. 약사로서 토론하고 공부하고 좋은 약을 쓰는 게 보람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약사, 사람을 위로하는 마음 지녀야

관리 약사로 1년, 중앙동 남천 상가에서 약사생활 10년, 그리고 가음정동에서 약사생활 14년. 조윤숙 씨는 어언 25년을 약사로 살았다. 25년 차 베테랑 약사인 그도 갓 약사를 할 시절에는 부족한 게 많았다.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가 되었을 때 현장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다는걸 느꼈어요. 이론 공부는 했지만 이론 외의 현장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현실 벽을 절실히 깨달았죠.”

약학대를 다닐 때는 인터넷이 없어 약 구경도 못했다고 털어놓는 그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책 속 지식과 현장경험, 그 벽을 좁혀 주고 싶어 7~8년 정도 실습약사를 받아 교육했다. 현재는 법이 바뀌어 약사가 실습약사를 받기 위해서는 석사 학위를 가져야 한다.

“손님으로 약국에 있는 것과 약사로서 약국에 있는 것은 많이 달라요. 갓 약사가 된 후배들에게 처음 제가 겪었던 벽을 허물어주고 싶어요. 실습약사 받는 조건에 맞추고자 현재 석사 5학기를 다니고 있어요. 자격이 되면 다시 실습약사를 신청 받을 생각입니다.”

약대에서 배우는 건 책 속 지식이다. 현장에 그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은 책에 있지 않다. 그는 그것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자신 이름을 내건 약국을 냈을 땐 뿌듯함보다는 책임감이 밀려왔다. 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약국 이름을 보며 열심히 하자 마음을 다잡는다.

약국 근무시간은 보통 오전 9시에서 오후 9시 반까지다. 들쑥날쑥 하지만 평균 200~250명 정도 손님 오는데, 한자리에서 오래 약국운영을 해 손님과 대부분 아는 사이다. 다들 좋은 분이지만 간혹 까다로운 손님이 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아프니까 손님이 까다롭게 행동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것보다 가끔 술 먹고 함부로 하는 분들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하죠. 다음날 술 깨고 와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사람인지라 마음에 상처가 남아요.”

하지만 자신이 상담해준 환자가 몇년 후 다른 사람을 데려와 설명을 잘 해주고, 잘 도와준다며 그를 소개할 때 보람찬 그다. 환자들에게 많이 알려주고자 그 ‘맛’에 더 공부한다.

보통 병원은 바쁘다. 병원에서 미처 듣지 못한 내용을 약국에 와서 이것저것 상세하게 묻는 분들이 많다. 그때마다 처방받은 약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하고 나아가 앞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약사는 봉사하는 직업이잖아요. 특히 아픈 사람을 대할 때에는 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 없이는 못해요.”

보통약사는 근무시간이 긴 편이다. 돈만 보고 그렇게 긴 시간을 일할 순 없다. 국민건강을 지킨다는 마음 없인 못하는 게 약사다. 적어도 조윤숙 씨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약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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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숙 경상남도 약사회 이사./박일호 기자

약사생활 마감하면 딸과 여행다니고파

“메디팜 조원기 회장님은 약사로서 살아갈 길, 나아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시해주고 알려준 고마운 분이에요.”

조원기 회장은 조윤숙 씨에게 마음의 양식을 키워준 분이다. 그에게 있어 두 번째 부모나 다름없다. 조 회장은 약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약사 현안에 대해 많이 일깨워 주었을 뿐 아니라 약을 처방받고 나은 환자들을 엮어 만든 책, 치험례를 만드는 동기를 조윤숙 씨에게 심어준 분이다. 

“약사는 죽을 때 삶의 흔적으로 자신이 고친 환자를 남겨야 한다”는 조원기 회장 말을 듣고 조윤숙 씨는 환자 치료과정을 기록한 치험례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팔순 혹은 칠순이 되었을 때 한 분 한 분 병 치료 관련 임상자료로 치험례를 만들어 나누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치험례를 만들고자 현재 환자들 상태와 그에 따른 약 처방 등 기록물을 많이 모으고 있어요. 한 20~30년 하면 책이 되지 않을까요.”

그는 약사로서 뚜렷한 소신과 함께, 약사로서 나아갈 방향도 있다. 만약 약사가 안 되었다면 조윤숙 씨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해도 했을 것 같다.

“사회활동을 할 수도, 하다못해 동네 통반장은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주민과 같이 불편한 것도 고쳐나가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활달한 그 답게 남편도 볼링 동호회에서 만났다. 남편은 웨딩 사업을 하고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행복한 순간을 찍고 싶어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조윤숙 씨 남편도 에너지가 넘친다. 닮은 부부다. 대학 다니는 아들과 중학생 딸도 그를 빼닮았다. 딸은 종종 약국에 아르바이트하러 오는데 손님에게 상담하고 약 공부를 하는 조윤숙 씨 모습이 즐거워 보여 약사를 꿈꾸고 있다. 아들은 과대표를 맡아 과행사로 여기저기 사람 만나러 다니기 바쁘다. 아마도 활동적인 조윤숙 씨 성격을 물려받은 모양이다. 약학에 흥미를 보이는 딸과 자유분방한 성격인 아들은 누가 보아도 조윤숙 씨 자식이다. 닮은 가족인 만큼 약사 행사할 때 가족동반모임은 빼먹지 않고 간다.

“가끔 남편이 아이들에게 엄마는 어떤 엄마냐고 물어봐요. 짓궂죠.안 듣는 척 다 듣고 있는데, 그때 아이들은 엄마를 훌륭한 현모양처라고 답했어요. 바쁜 와중에 잘 챙겨줘서 그렇다나.”

아이들이 약사 활동을 보고 좋은 직업이라고 말할 때 그리고 자신이 열심히 한 것을 아이들이 알아줄 때 무엇보다 기쁜 그다.

“책, 영화, 음악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것과 얽힌 장소를 직접 가고 싶기도 하고요.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장에 가서 느껴보고 싶어요.”

조윤숙 씨는 “55세 남짓까지만 약사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55세가 되면 약 30년을 약사로 살아간 것인데, 그때쯤이면 약사를 내려놓고 여행을 다녀도 괜찮을 것 같단다. 하기야 약사를 하면 시간상으로 얽매여 당일 여행 가는 것도 어려울 법하다.

“딸과 이야기해보니 제 나이 55세 때 딸이 대학교 1학년이더라고요. 그때 같이 떠나자고 벌써 합의했습니다. 딸이 추리 소설, 특히 셜록홈즈를 좋아해 영국에 관심이 많아요. 시간 지난후 저는 약국이 아닌, 대학생이 된 딸과 함께 영국을 여행하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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