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이 시대 어른'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경남도민일보 초청 강연…언론, 교육, 사회에 대한 따끔한 일침 쏟아내

오늘 많은 분이 오셨는데 제가 시간 낭비나 시키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학교 교무회의에서도 별로 말을 안 합니다. 제일 큰 이유는 말하는 사람 뜻대로 듣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여든살 되어도 남의 말을 잘 듣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뜻을 알리기보다, 사람들과 친하기 위해 말을 해요. 오늘 서로 친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자리 제목이 '쓴맛이 사는 맛'인데 이게 함께 사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게 할머니들 말이에요. 아프거나 죽은 자식을 받아들인 할머니들의 지혜입니다.

학교에 교명을 새기려고 하는데 돌 옆이 깨진거라. 그런 돌에 새기면 아이들이 안 좋아할까봐, 성자의 깨우침이 아니고 민중들의 깨우침인 '쓴맛이 사는 맛'을 새기게 된 겁니다. 글 새기고 있을 때 '야들아 무슨 말인지 알겠나' 하니 '네 좋은 말이네요. 힘들어도 결국에는 잘 된다는 말 아닙니까'라고 해요. 그건 비관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학교에서 '쓴맛이 사는 맛' 글을 본 아이들이 대학 가면 그럽니다. 누가 '어디서 배웠노'라고 물어보면 '학교서 배웠다'고 한답니다. 그런 소리 한두 번씩 들으니 기쁩니다.

쓴 나물 먹어볼 만 하잖아요. 쓴 나물 안 먹은 사람은 그 기막힌 깊은 맛을 어떻게 맛볼 겁니까. 쓴나물에 설탕 넣었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 구역질 나지. 나는 에스프레소를 모를 때부터 전혀 설탕 우유 안 넣고 쓴맛으로 먹습니다. 인삼 쓴맛도 아주 깊은 맛입니다.

현재가 늘 쓴 것이지, 지나간 과거는 과거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래도 줄을 세워 본다면 1953년 7월 27일 형님이 자살한 것입니다. 형님 자살보다도 내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가 절망적으로 살아있는 모습이 형님 자살보다 더 난감했고…. 그리고 전쟁 나서 그 많은 주검을 볼 때…길 조약돌처럼 봤거든요. 길에서 시체를 얼마나 봤는지. 물론 광산에서 사람 죽은 것은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그 맛이 제일 쓴맛이지만 어쨌든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지금 나라가 어떻습니까? 서로 의견 다르고 불신하고 깔아뭉갭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자기 유리한 것만 하고 살려고 합니다.

밀양 송전탑도 그 불쌍한 할매·할배들 고생하는 거를 정쟁하는 사람이라고 꺼리로 삼습니다.

그리고 세월호는 아무 것도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놈도 거짓말, 저놈도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허구를 이번에는 제대로 고치기 위해 제대로 밝히자는 겁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자마자 추기경이라는 사람이 정치적 질문에 답 안하려 한답니다. 그게 왜 정치에 관여된 것입니까? 이 사회가 온통 유병언이 아닌 사람이 없으니 그걸 좀 고쳐보자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 양반이 정치적 문제에 답 안하겠다는 말만 안했어도, 제법 남의 슬픔을 이용해 먹는 패거리로 생각 안했을 것인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모든 종교가 남의 슬픔, 남의 절망을 이용해서 자기 교세를 확장하죠.

프란치스코는 교황이라고 불리는 것도 부담스러워 조그만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인데, 어디 슬픈 사람들한테 대전으로 오라고 계획을 짭니까? 대전으로 찾아가든지 팽목항으로 찾아가든지 해야지. 하느님과 예수가 슬픈 사람을 직접 찾아가지, 오라고 합니까? 발 씻고 입맞추고 하는 걸 소중하게 생각하는 프란치스코를….

가톨릭 신자들은 좀 거북하더라도, 내 거짓, 내 게으름, 나부터 바꿔야 합니다.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 양반이 이번에 뭐하러 오겠노 생각하다, 혹시 기자회견 선언하고 평양도 방문하겠다 기대했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화해될 수 있는 게 우리 동족이거든. 가톨릭이나 정부 쪽에서 의견만 내놓았더라도 가지 않았겠나. 아니면 평양 방문해서 이리로 내려오든지. 미국 대통령도 못할 것이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교황 밖에 없습니다. 이런 나 같은 촌로도 생각하는 것을 왜 누구도 그런 얘길 안 했을까.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우리 사제단의 큰 잘못입니다. 소 잡는 칼을 가지고 닭 잡았다는 소리지.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했다는 게 아닙니다.

오바마가 근래 왔을 때도 그렇습니다. '냉전시대 쇼윈도로 써 먹은 건 사실이고, 갈등의 희생을 일으킨 데 우리가 책임 있습니다. 앞으로는 동족상잔 갈등을 이 비극에 이용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길 바랐는데 안 그랬어요. 그거 생각 못해서 안 하겠습니까. 전쟁 있어야 재미보는 상인이나 정치패가 굳이 그런 말 안하길 바랐기 때문이죠. 실제 미국은 갈등 제조업자입니다. 갈등을 만들어야 자기들이 모양도 나거든요.

남을 깔아뭉개고 올라서봤자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모든 학교는 일제 영향으로 늘 앞잡이 하는 교육입니다. 그걸 희망으로 하고 가방끈 길게 하고 있습니다. 또 가방끈 긴 사람들은 어느 틈엔가 누구 앞잡이에 길들여 있습니다.

▲ 그림 권범철 기자.

나는 힘 있으면서도 유병언과 달리 사는 사람은 김수환 추기경밖에 못 찾아내겠어요. (주변이)전부 유병언입니다.

우리 민중이 활발히 깨우치지 못한 데서 오는. 지금은 배가 그리 고픈 시절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리한 거짓말에 쉽게 속을까? 그건 게을러져서입니다.

추기경도 아무렇지 않게 불행한 사람을 이용해 전쟁 일삼는 패로 몰지 않습니까. 이건 우리가 깨어 있다면 그런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말 하는 추기경 책임은 책임이고, 가끔 그런 말 부끄러워 못하게 하도록 해야 하지요. 어떻게 하면 우리 이웃이 더 현명한 마음을 갖게 할까가 오늘 여기 온 사람들 할 일입니다.

서울대 연·고대 입학생 부모 소득이 점점 더 국가경제 발전 속도보다 높아진다고 합니다. 강남에 집·학교가 있는 학생이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 경쟁도 포기했다는 이야기인데, 인간적 성취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학력·지식에서 치이더라도 하층 사람들이 도전적 삶의 지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우선 그런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특권은 의지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밖에 없습니다. 없는 놈은 조건 때문에 의지라도 쉽게 가질 수 있으니까요. 이는 학교도 해야 하고 사회도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쉽게 포기한 상태를 용납 안 해야 합니다. 포기는 아편쟁이와 비슷한 겁니다. 포기·불안·공포는 우리 인생의 반면교사 아니면 아무 짝에 소용 없습니다. 이걸 바로 반면교사로 (활용)할 수 있으면 그것이 '쓴 맛이 사는 맛'이 되는 것이죠.

우리 학교(효암학원)는 학생들에게 자발적으로 하게 하지, 학교 선생에 의지하지 마라고 합니다. 강하게 가르치면 결국 세뇌하는 겁니다. 세뇌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인간은 무식할 권리가 있습니다. 배우기 싫으면 무식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선생님뿐만 아니라 글에도 의존하면 안 됩니다. 잘못된 글도 천지입니다. 인문학적인 것 전부 그 시대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힘있는 자의 호불호가 정의가 됩니다. 정의는 인간의 합의에 의해서만 되는 거니까, 너무 사명감에 과하게 쫓기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기 싫은 걸 남한테 하는 것, 이런 건 합의된 것입니다. 이런 것 말고는 너무 옳다 그르다에 의존하지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이 모든 구조가)힘 있는 자들이 다 만든 것입니다.

요즘 언론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언론이 광고업이 되었습니다. 언론인은 원래 비판하는 게 본업 아닙니까? 그럴수록 더 노력하지 않으면 개 짖는 겁니다. 나는 우리 학생 중에 방송국 취직했다고 하는데, 광고장사하러 가는 건데 그거 취직했다고 말합니다. 언론인은 많은 월급 주면 썩습니다. 간단합니다. 돈 더주면 썩지…. 여기 경남도민일보도 월급 많이 주면 부자편 들 겁니다. 간단합니다. 그래서 언론인은 가난하게 살고, 쓴맛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그런 성질이고, 권력이 그런 성질입니다. 성인도 권력 쥐면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가들이 그걸 인정하면 좋은데 전부 자기 똑똑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거기서 이미 희망이 없는 겁니다.

내가 볼 때 돈 버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100만, 1000만 명 죽어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 재미를 어떻게 버려요. 물욕·색욕 저리 가라야. 도박에서 이기는 게 제일 재미있듯이 돈벌이가 제일 재미 있습니다. 그래서 이건 맛을 안 봐야지, (돈)맛 보고 내버리기는 어려워요.

우리는 행복해지면 됩니다. 돈 없어도 즐겁고, 자리 없어도 즐겁고….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데 부동산 임대하는 사람보다 내가 농사하고, 고기 잡을 줄 알고, 그러면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어요.

지금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자기는 배도 부르고 가방끈 제법 있으니, 이런 소리 한다고 들릴 겁니다. 내가 여기 서서 제일 부끄러운 게 돈 많이 번 것입니다.

제가 지금도 이사장 아닙니까. 선생들 자리 주고 안 주는 그 짓하는 자리 아닙니까. 이것도 권력이니. 어르신이란 말이 사실 별로 반갑지 않습니다. 나를 위선으로 몰아넣는 소리거든. 어른 노릇하게끔 위선 속에 몰아넣는 소리니까 질색이죠. 오늘 제가 한 말 잊어주고 스스로 생각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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