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 채현국 선생 철학 '쓴맛이 사는 맛'

"학교가 아이들을 돈·권력의 앞잡이로 키워선 안 된다. 입시 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를 하라."

두 시간 동안 한 번도 앉지 않았다. 물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28일 오전, 강연을 위해 <경남도민일보>에 온 채현국(효암학원 이사장) 선생은 젊었다. 그가 처음 입에 댄 건 커피를 탄 소주였다.

'거리의 철학자', 민주화 운동의 '숨은 조력자' 등으로 불렸던 채현국 선생이 세상 밖으로 나온 건 한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서다.

당시 인터뷰에서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고 젊은이들에게 한 말은 크게 공명했다. '이 시대의 어른'이란 별칭도 이때 얻었다.

하지만 '자유주의자' 채현국은 이게 불편하다. 심지어 '농약'이라고 한다. 당장은 듣기 좋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독약'이라는 이야기다. 때문에 그는 강연을 갈무리하며 경고한다.

▲ 채현국 선생은 "인문학적인 것은 전부 그 시대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힘 있는 자의 호불호가 정의가 된다"고 현 시대의 정의를 꼬집었다. 그는 또 "돈 버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100만, 1000만 명이 죽어도 아무 상관 없다. 돈이 그런 성질이고, 권력이 그런 성질이라서 성인도 권력을 쥐면 썩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일호 기자

"오늘 한 이야기가 쓸 만하더라도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세요."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중앙방송(현 KBS) 연출직 PD로 입사했다. 하지만 박정희를 칭송하는 드라마를 만들라는 지시에 3개월 만에 사표를 던지고 아버지의 탄광사업을 도왔다. 돈을 꽤 벌었던 그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탄압받던 이들의 숨은 후원자가 됐다. 해직 기자에게 집을 사주거나 사업을 정리해 직원들에게 나눠준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가 사업을 정리한 이유도 유신시대에 '돈 버는 괴물'이 되기 싫어서였다.

현재 효암학원(양산 개운중·효암고) 이사장인 그는 학교가 돈과 권력의 '앞잡이'를 키워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가난할수록 '입시 공부'가 아니라 '진짜 공부'를 해야 희망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 학교의 교정엔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새겨 넣은 바위가 있다. 부정을 통한 철저한 긍정의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가난한 자의 특권은 의지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 나이로 올해 80세인 그는 지금도 공부 중이다. 최근 동아시아 고문헌을 통한 역사 연구에 몰입해 있다. 하지만 책을 쓸 계획은 없다. 문자는 약속이 되고 약속은 자신을 속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연과 식사를 마친 후, 샌들에 흔한 검정색 백팩을 멘 그는 우포늪지킴이 이인식 선생의 트럭을 얻어 타고 마산역으로 향했다. 지인의 칠순 잔치에 초대받아 서울에 가기 위해서다.

그의 가방엔 손자에게 줄 책 두 권과 그의 책 한 권, 그리고 수건 한 장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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