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탄생을 예언한 영화가 있다. 이탈리아 감독 난니 모레티의 2011년작 <우리에게는 교황이 있다>가 그것이다. '예언'이라니,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겠다. 전 세계 12억 가톨릭 수장으로서 모두가 우러러보는 교황에 선출됐지만 고민과 방황 끝에 결국 교황직을 포기하는 멜빌 추기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멜빌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교황청을 탈출한 멜빌은 도시 곳곳에서 수많은 삶의 얼굴과 마주하면서, 또한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난해해졌음을 깨닫는다. 온 세상에 사랑과 평화를, 힘과 용기를 전파하는 마땅히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할 교황의 자리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교회는 위대한 변화를 책임질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난니 모레티는 가톨릭이 교회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과 더 가까워지라는, 세상 더 낮고 깊은 곳에서 뭇사람들과 뒤엉켜 함께 '해법'을 찾아나가라는 메시지를 그렇게 던진다. 진짜 예언인지 우연인지 아니면 이 영화의 진심이 통한 덕분인지, 우리는 그로부터 2년여 뒤 프란치스코라는 훌륭한 교황을 만나게 된다.

프란치스코는 방한 내내 우리 사회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뿐만 아니라 장애인, 위안부 피해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용산 참사 유족, 강정마을 주민, 밀양 할머니 등을 잇따라 만났다. "물질주의 유혹, 무한 경쟁 사조에 맞서 싸워라"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고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을 거부하라"는 '엄청난' 말도 던졌다.

물론 교황의 말과 행동만으로 세상이 쉬이 바뀔 리는 없다. <우리에게는 교황이 있다>가 이야기하듯 교황 역시 한 인간일 뿐이다. 교황은 지난 18일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오만하지 않도록 내 죄와 잘못을 돌이켜 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만일 그런 성찰과 다스림이 없다면 교황은 아마 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세상을 향해 절절한 호소를 던져도 비극은 전혀 중단될 기미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피해자들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으며 해고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피해와 가해의 악순환, 피와 피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최근 군대 내 폭력 사건은 교황이 언급한 '죽음의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저 멀리 팔레스타인에선, 교황이 직접 나서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렸지만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대량 학살을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영화 <우리에게는 교황이 있다>의 한 장면. 주인공 멜빌(가운데)이 수많은 신도 앞에서 교황직 수행을 거절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캡처

교황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교황에 대한 감동과 존경만으로 마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착각하고 안도하지는 않을까 그게 두려울 뿐이다. 우리에게는 교황이 있다. 그리고 교황이 간절한 마음으로 만났던 수많은 약자들이 있다. 세월호, 밀양 송전탑, 노동 소외와 탄압, 자본의 횡포, 개발주의, 군 폭력, 국가 폭력 이 모두는 결코 제각각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어떻게든 함께 만나야 하는 현실이다. 어쩌면 현재 논란 중인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한 해법의 단초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세월호'만의 고립이 아닌 보다 폭넓은 연대, 보다 근본적인 사회 개혁을 이끌어내는 '세월호 모멘텀'으로서 새로운 출발. 교황은 가난과 비인간성, 무한 경쟁 사조에 맞서 싸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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