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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이 왜 훌륭한지 와보니 알겠어요"

[토요 동구밖 생태·역사교실] (13) 산청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4년 08월 26일 화요일

전날 내리기 시작한 비는 역사탐방을 떠나는 이튿날이 되자 줄기가 더욱 굵어져 있었다. 이처럼 날씨가 궂었음에도 8월 14일 떠난 일곱 번째 역사 탐방에 참여한 아이들이 서른 명이었다. 역사에 무엇 그리 관심이 많겠느냐마는 탐방을 따라 나선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보니 그래도 대견하다 싶다. 진해 웅동지역아동센터와 동부지역아동센터 친구들과는 두 번째 탐방길이다. 서먹서먹했던 첫날과는 달리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찾아간 곳은 산청 단성에 있는 문익점 목화시배유지 전시관이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오기 전까지 우리나라(고려)는 중국에서 짠 면을 많이 들여오고 있었는데, 값이 비싸서 일반 백성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목화에서 나오는 따뜻한 솜이 든 이불은 물론 그것으로 만든 옷감이 없었던 가난한 서민들은 한겨울에도 성긴 삼베옷을 입고 춥게 살아야 했다.

산청 단성이 고향인 문익점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고려와 사이가 나빠지자 원나라가 중국 운남이라는 남쪽 지대로 문익점을 귀양보냈다. 여기서 문익점은 지천으로 밭에 널려 있는 목화를 보게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문익점이 아니라 누구라도 목화씨를 들여올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문익점이었기에 가능했을까? 그건 상상에 맡겨두면 될 것 같다. 문익점은 같은 단성에 살던 장인 정천익에게 목화씨를 보내 3년 만에 싹을 틔우게 하고 목화 덩이에서 씨를 빼내고 실을 잣는 방법을 알아내 널리 알렸다.

목화시배유지에 만들어진 목화밭을 둘러보는 모습.

산청에 도착하자 빗줄기는 더 굵어져 있었지만 돌아볼 곳이 전시관 안이라 별 무리가 없었다. 셋씩 모둠을 이룬 아이들이 열다섯 문제가 적혀 있는 미션 종이를 받아들고 함께 들어갔다. 처음 탐방 때와는 미션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어른들 도움 없이도 스스로 척척 답을 찾아나서는 모습에 절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에 문익점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서 안다고 했다. 나중에 돌아올 때 쓴 느낌글은 학교에서 문익점을 배웠는데 또 목화시배유지 전시관을 간다고 해서 재미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것이 많았다. 별로 기대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직접 답을 찾아가면서 전시관을 돌아본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교과서에서 문익점과 목화씨를 배웠는데 전시관에 와서 보니 너무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들이 많을 줄 몰랐다." "목화씨를 들여오기 전에 어떤 옷을 입고 살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겨울에 정말 추웠겠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옷을 입고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문익점이 왜 훌륭한지 생생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충 이런 얘기들이다.

문익점 목화시배유지 전시관에서 미션 수행을 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

아이들의 말과 글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거의 박제나 다름없다. 이름이나 사건, 연도를 외우고 그렇게 외운 바를 시험 답안으로 맞히면 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해서 얻는 높은 점수와 제대로 아는 역사 사이에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일본과 문제가 되는 독도나 중국과 갈등이 빚어지는 동북공정 사태를 보면서 우리도 역사를 학교 필수과목으로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이런저런 의견이 많다. 그런데 필수과목 지정에 앞서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느냐는 방법이 더 중요하지 싶다는 생각을 이런 아이들을 통해 새삼 되새기게 된다.

만약 아이들이 그냥 한 번 전시관을 돌아보는 것으로 그쳤다면 이런 재미와 새로움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찾은 답을 확인해보고 틀린 것은 다시 찾아나서는 열성을 보였다. 목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전시관에서 알아보고 자세히 그리기가 마지막 문제. 그리고 이어서 목화가 자라는 밭으로 옮겨가서 그림과 실제를 견줘 보는 일도 잊지 않는다.

여느 왕릉과는 모습이 다른, 가락국 마지막 임금 구형왕의 무덤.

점심을 먹고는 구형왕릉을 찾아갔다. 아이들은 구형왕릉이라는 이름조차 아주 낯설다. 앞서 가는 길에 버스에서 구형왕과 구형왕릉에 대해 되도록 알기 쉽게 설명을 했다. 창원 지역 아이들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통해 다들 한두 차례는 국립김해박물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 박물관은 가락국을 비롯해 가야 문물을 전문으로 다루는데, 구형왕릉이 그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김해에 있었던 가락국은 신라에 멸망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 임금이 바로 구형왕이었다면서 나라가 힘이 없어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을 받거나 망하게 되면 백성이나 임금이나 불쌍하기는 매한가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배고픔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이나 전쟁으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도 다 나라가 힘이 없어 그렇다고 하자 아이들은 격하게 공감하는 분위기다.

경주나 다른 곳에서 본 왕릉의 모습은 어땠느냐고 물으니 크고 둥글다고 답한다. "자, 그러면 나라가 망한 임금 무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지?" 대충 그 정도로 밑밥을 던져놓고 구형왕릉으로 이동을 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비구름과 안개비로 거뭇거뭇한 왕릉은 더욱 을씨년스러워보였다. 덕분에 '망한 나라 임금의 무덤'의 이미지는 더욱 극대화되는 효과는 있었다.

우산을 쓰고 왕릉 둘레를 거닐면서 아이들은 다들 한마디씩 한다. "무슨 왕릉이 저래요? 돌로 쌓아놨잖아!" "가운데 구멍이 있는데 거기 들어가면 뭐가 있어요?" "무덤을 지키고 서 있는 사람들(석인상)은 누구예요?" "좀 쓸쓸해보여요, 임금인데 무덤이 너무 작아요." "주변에 돌담은 뭐예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뚜렷하게 남는 기억은 손으로 그려보는 데서 나온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설명을 많이 하기보다 한 번이라도 손수 그려보게 하는 편이 훨씬 낫다. 날씨가 좋았다면 무덤 앞에서 그려보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해 버스 안에서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아이들은 다른 왕릉을 볼 기회가 생기면 더불어 구형왕릉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역사는 다만 역사 그 자체로 남거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지난날 옛적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보는 것이다. 문익점 목화시배지 전시관에서는 교과서에 박혀 있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조금이나마 더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무엇을 배웠다면, 구형왕릉에서는 국가와 그 구성원이 제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도 바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앞으로 역사탐방을 차근차근 하면서 몰랐던 것도 배우고 그러면서 좀 더 의젓한 친구가 됩시다." 아이들이 입을 모아 대답한다. '예!!!' 대답만으로도 흐뭇하고 보람찬 시간들이다.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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