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76) 안영규 밀양 유명안농원 대표

'밀양' 하면 '얼음골 사과'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얼음골 사과'라고 하면 사과 가운데 박혀 있는 '꿀'을 떠올린다. 하지만 요즘 '얼음골 사과'에는 '꿀'이 없는 것이 많다.

'밀양 얼음골 사과 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유명안농원' 안영규(46) 대표에게 얼음골 사과와 꿀 이야기를 들어 보자.

◇'꿀'은 꿀이 아니다 = 얼음골 사과는 밀양 중에서도 산내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를 말한다.

"이곳은 일교차가 크고 산이 경사가 큽니다. 또 최남단이라 꽃 피는 시기가 최소 1주일에서 보름가량 빠르고, 늦게까지 수확할 수 있습니다. 즉 나무에 20~30일 더 달려 있을 수 있어 식감, 맛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안 대표는 꿀이라고 말하는 밀병 증상을 "칼슘제를 적기에 못 써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또 제때 수확하지 않은 사과에서 이 증상이 더 잘 나타난다고 했다. 요즘은 재배 기술이 발달·보급돼 과거에 비해 보다 체계적으로 사과를 키우기 때문에 이 증상이 없는 사과가 많다는 것. 밀병 증상은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지만, 맛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밀양 유명안농원 대표 안영규(왼쪽)·정순선 씨 부부. /이원정 기자

◇사과나무가 살길 = 넉넉지 못한 집안 5형제 중 셋째인 안 대표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짓기로 하고 사천농고 자영농과를 졸업했다.

당시 밀양은 얼음골 사과가 알려지던 시기. 사과가 아니면 농사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어린 마음에 느꼈다. 5200㎡(1600평)에 사과나무를 심어 놓고 입대한 안 대표는 제대 후 그 나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때는 아직 나무가 어려 수입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막일을 하며 생활했다.

그러던 중 안 대표를 자극하는 일이 생겼다. 친구가 사과 재배로 성공한 것을 본 것이다. 사과가 앞으로 살아갈 방안이라고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버는 족족 투자했다.

현재 안 대표는 사과 3만 5000㎡(1만 700평), 맥문동 3300㎡(1000평), 콩 6600㎡(2000평), 대봉 1600㎡(500평) 정도 재배하고 있다. 이 중 2만 3000㎡(7000평)가량은 안 대표 소유이고, 나머지는 임차했다.

"아직 어린나무가 많아 생산량은 적은 편입니다. 현재 45t가량 수확하는데 나무가 크면 90t까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조생종에 해당하는 홍로는 8월 말부터 수확해서 출하하며, 재배 면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사는 보통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수확한다.

◇여러 단체 활동에 매진 = 학교에서 배운 기술은 농사를 짓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욕심' 앞에 성공은 없었다.

"수확을 많이 내려고 나무 간격을 무시하고 무조건 많이 심었습니다. 밀식 장애가 와서 엉망이 됐죠. 결국 다 없애야 했습니다. 다시 재배기술을 배우고 적용하면서 소득도 늘어났습니다."

3년 전 농사를 잘 짓는다고 자만에 빠졌을 때도 위기가 왔다. 병이 와서 한해 농사를 망친 것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 공부한 덕에 회복할 수 있었다.

1992년 제대한 안 대표는 농사를 지으며 4H 등 여러 봉사 단체에서 활동했다.

"4H는 농촌 학습 봉사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촌에서 실질적인 정보 교환을 하고, 급한 일이 있으면 품앗이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 4H 활동을 통해 회의 진행 방법, 단체 운용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안 대표가 지역 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09년 무렵.

"농촌진흥청 탑프루트 시범단지에 밀양 산내면 13농가가 모여 만든 얼음골 사과단지가 지정됐습니다. 총무를 맡아 관리를 시작했죠. 2013년에는 경상남도의 명품 농산물 브랜드 이로로 재배농가로 지정돼 활동 중입니다."

지역 사과 농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도 안 대표의 일. 향토산업육성사업으로 3년간 매년 14차례 기술 교육을 해야 하고, 브랜드 육성사업으로 연간 8차례 교육이 있다.

사정이 이러니 안 대표의 부인 정순선(47) 씨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다. 안 대표가 다른 농가의 멘토로, 단체 총무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동안 농사일은 아내 몫이다.

"아내가 고생이 많습니다. 저는 돈 모으는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아내를 만나서 저축도 하고 살게 됐습니다. 항상 고맙죠."

◇사과나무 분양으로 차세대 소비층 확보 = 밀양 얼음골 사과 발전협의회는 사과 축제 등을 통해 얼음골 사과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은 지역에서 축제를 열었는데, 올해는 12월 초 서울 청계천에서 소비자를 찾아가는 축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안 대표가 사과 홍보를 위해 또 하나 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은 사과나무 분양. 꽃 필 무렵 예약받아 도시민들과 사과밭 구경을 가서 15만 원에 나무 한 그루를 지정하도록 한다. 관리는 안 대표가 해 주고, 도시민은 언제든 와서 열매 솎기, 잎 따기, 열매에 글자 만들기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수확은 최소 30㎏을 보장한다.

"100그루를 분양하면 최소 500명이 이 지역에 와서 밥을 사먹고, 하다못해 음료수 하나라도 사먹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또 사과나 사과즙을 사가니까 농가 활성화도 되죠. 행사를 연 4회만 해도 2000명이 방문하는 겁니다. 수확 때면 2배가량 방문객이 늘어나니까 동네가 시끌벅적합니다. 이때는 동네 할머니들이 호박이나 콩 등 채소를 가지고 길에 나와 파시기도 합니다."

이 사업은 밀양시 농업기술센터와 협의해서 5년 전 시작했다. 첫해 100그루로 출발해 250그루까지 늘렸지만, 올해는 하지 않는다.

안 대표가 여러 단체에 몸을 담고 일하는 바람에 여력이 없어서다. 내년에 어느 정도 단체 일을 내려놓고 나면 다시 분양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참여객들이 평생 고객이 됩니다. 나아가서는 차세대 소비자를 확보하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 사과 밭에 와서 나무에 달린 사과를 바로 따 먹은 경험을 아이들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6차 산업 확대가 꿈 = 안 대표는 여러 사과 콘테스트에 끊임없이 출품한다.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평가받기 위해 전국 품평회에 나가는 것이다.

"상은 안주면서 심사위원들이 지인들에게 선물할 사과는 꼭 저한테 연락합니다. 그런 걸 보면 모양은 안 좋아도 맛은 최고라는 거겠죠. 앞으로는 외형을 예쁘게 키우는 데 신경 쓸 겁니다. 밀양 얼음골 사과인 부사는 수분율이 낮습니다. 씨가 10개 들어차야 온전한 모양이 나오는데 여긴 3~4개 정도입니다. 그만큼 모양이 찌그러지고 예쁘지 않죠. 수분율을 높이기 위해 사과밭에 꽃사과를 심었습니다."

안 대표는 6차 산업에 관심이 많다.

"지역 전체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차세대 소비층 확보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향후 체험관도 만들 생각입니다. 이 지역은 교통이 좋기 때문에 치즈교실, 연극촌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체험장을 운영하면 얼음골 사과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추천 이유>

◇이문헌 밀양시농업기술센터 과수화훼담당 = 안영규 대표는 3만 ㎡ 이상 규모에 사과를 재배하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4H 출신의 젊은 강소농입니다. 고품질 사과 생산기술로 소득을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지역 실정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연구·접목하면서 이웃농가에 기술을 파급하는 진정한 농업인입니다. 특히 온라인 판매망 구축과 사과나무 분양사업 등 추진으로 농업의 6차 산업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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