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했어요]설현수·박삼선 부부

창원에 사는 설현수(57)·박삼선(56) 부부. 다가오는 28일은 결혼 32주년이다. 서로 첫사랑으로 만나 연애한 11년까지 합하면 4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현수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밀양에서 부산으로 전학을 갔다. 남녀 합반이었고, 눈이 동글동글한 소녀에게 반했다. 물론 삼선 씨다. 현수 씨는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직접 건네줄 용기가 없어 친구 손을 빌렸다. 얼마 후 답장이 왔는데, 삼선 씨도 싫지 않은 마음을 담고 있었다. 둘은 그때부터 줄곧 편지로 연애했다.

"그 당시에는 학생이 연애하면 정학까지 당하던 시절이었어요. 사귄다는 소문이 나면 절대 안 됐죠. 그래서 주로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았습니다."

현수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대구로 다시 전학 갔다. 그전까지 1년 넘는 시간 동안 바깥에서 데이트한 것은 딱 두 번이었다. 그것도 단둘이 아닌 다른 친구가 낀 채였다.

고등학교 때는 서로 대구·마산에서 지냈기에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여전히 사랑의 징검다리는 편지였다. 스무 살 지나 현수 씨가 군대 가기 전에야 몇 년 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날은 엇갈린 발걸음을 하기도 했다.

"부산대학교 앞 가장 가까운 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죠. 당시 저는 서울에서 회사 생활 할 때였는데, 몇 시간을 달려 부산으로 갔죠. 부산에 도착해서 아내 집에 전화하니, 지금의 장모님이 '삼선이는 어디 저 멀리 갔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당시 딸 연애하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아 그렇게 말씀하셨던 거죠. 저는 그 말만 듣고 다시 서울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대학교 앞 다방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현수 씨가 23살 때 군대에 가자, 삼선 씨는 매일 편지를 보냈다. 당시 삼선 씨는 외딴곳에 발령받아 교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편지 쓰는 것이 곧 낙이었다. 한번 보낼 때 편지지 3~4장에 빼곡히 내용을 담았다. 그렇게 34개월 동안 보낸 편지가 500통도 넘는다.

현수 씨는 1982년 8월 제대 후 곧바로 결혼했다. 일명 '빡빡머리'인 채로 식장에 들어갔다. 주위에서는 '속도위반'을 의심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내가 학교 방학에 맞춰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학기 중에 결혼하면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기에, 그러기 싫었던 거죠."

결혼 후 한동안 둘은 '주말부부'로 지내야 했다. 현수 씨는 토요일 오후 퇴근 후 바로 부산행 열차를 탔다. 어떤 날에는 밤 12시 다 돼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내는 그때까지 저녁을 먹지 않고 백숙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현수 씨는 감동한 나머지 너무 과하게 먹어 설사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행복으로 다가왔다. 월요일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 회사에 출근하는 생활이었지만, 전혀 피곤한 줄 몰랐다.

그렇게 둘은 함께하며 50대 중반이 되었다. 애정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지난 결혼 30주년에는 삼선 씨가 '꿈 같은 세월! 참 행복했어요. 축 결혼 30주년'이라는 글을 새긴 예쁜 소품을 선물했다. 현수 씨는 "제게는 유명한 예술가 작품보다 더 귀중한 보물이지요"라고 말한다. 현수 씨는 이번 인터뷰 기사가 신문에 나오면 동판으로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할 예정이다.

아, 그런데 참 아쉬운 점이 있다. 43년 동안 서로 주고받았던 편지 수백 통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아들·딸이 중고등학생일 때, 부부 스스로 불태워버렸다. 아이들이 아빠·엄마 연애편지를 보게 되면 교육상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부부는 지금 그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가끔 그 편지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현수 씨는 결혼 전 '당신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 줄 테니 나랑 결혼해 달라'는 말로 청혼했다. 요즘 가끔 아내에게 물어본다. '행복하냐'고…. 그러면 아내는 '약속 잘 지키고 있다'고 답한다.

"우리 부부에게 지난 43년은 함께 꿈길을 걸었던 시간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또 함께 걸어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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