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사라진 천진용 씨는 어디에] (2) 가족을 아꼈던 사람

육남매 중 첫째인 천진용 씨는 아래로 여동생만 다섯이다. 하지만 천 씨는 그의 어머니에게 막내인 양 애틋한 아들이다.

마음이 여려 자라면서 동생들에게 손찌검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어머니가 동생들에게 회초리라도 들 때면 말리던 장남이었다. 때문에 동생들도 피가 마른다. 하지만 어머니 앞에서 울 수도 없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어머니 앞에서 슬퍼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도 여름휴가를 내 함안과 내서 곳곳을 찾아 헤맸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딸들과 사위들이 안쓰럽다. 입술이 갈라져 터지도록 찾아다니는 사위들을 보면 죄진 맘이다. 어머니마저 쓰러질까 싶어 딸들이 권한 주사액을 맞으면서도 맘이 편할 리 없다. 자식들은 저렇게 길에서 말라가는데 잠시 누운 것이 죄스럽다.

지금은 천 씨 목소리라도 한 번 듣는 게 소원이다. 그래서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에도 밤새 한 시간 간격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마음의 병이 원인이었다면 엄마 전화니까 받을까 싶어서였다. 전화를 걸어보니 통화연결음으로 현철의 '고장난 벽시계'란 노래가 나왔다. 천 씨가 사용한 구절은 이랬다.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답답한 마음에 가족은 철학관도 찾았다. 그곳에선 천 씨가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라 했다. 살아 있는데, 너무 오래 혼자 두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

천 씨 어머니는 무엇보다 천 씨 건강이 걱정이다. 지난 설에 마지막으로 다녀간 천 씨를 보고 어머니는 보약을 지었다. 부산의 아는 곳을 통해 보약을 지어 보냈는데 잘 먹는다 해서 한 번 더 보냈다. 그게 올해 봄이다.

천 씨는 술을 즐기는 편이었다. 많이 마시진 않았으나 근무가 없는 날이면 약간의 술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특이한 점은 항상 200㎖ 페트병에 든 소주만 구입했는데, 집 근처 마트 주인이 언젠가는 이를 신기하게 여겨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천 씨는 "아이들이 볼까봐 그런다"고 대답했다.

이토록 천 씨는 가족을 위해 맘을 썼다. 집 근처 갈비집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달에 꼭 한 번은 가족과 들렀다는 천 씨. 사실 그는 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가족이 고기를 먹는 동안 순두부나 된장찌개 등을 시켜놓고 소주를 마시던 가장이었다고 갈비집 주인은 기억하고 있었다.

천 씨는 어머니에게도 곧잘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실종되기 일주일 전에도 전화가 왔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세 번도 왔었다. 무척 더운 날이었는데, 밭일 오래 하지 말라고 전화가 왔었다며 천 씨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더 애가 탄다. 경찰은 천 씨의 통화기록과 금융거래내역, 진료기록 등을 모두 뒤졌지만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집에서 사라진 물건도 없었다. 퇴근길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천 씨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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