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언제나 팩트 처음부터 다뤄야…이를 실천하는 '지난 기사 새로 쓰기'

'왜 이렇게 재미없고 어려울까?' 내가 어릴 때 신문을 보고 처음 느낀 기분이다. 대통령과 정치인 등 온통 어른들 소식뿐인데다, 조금 읽어보려 하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항상 맨 뒤에 있는 사회면으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한두 줄 사건·사고 단신은 흥미로웠는데 멍청한 도둑 이야기나 횡재한 사람의 이야기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특별한 이해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또 싸우나?' 머리가 좀 커서 본 신문은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몸싸움하는 사진으로 도배되었고 정국대치와 정치혼란으로 짜증만 유발했다. 대신 연재소설은 신문의 피난처였는데 황석영의 장길산처럼 후련한 이야기와 함께 최인호의 야릇한 통속물을 번개처럼 읽던 기억이 난다. 언론이 왜 재미도 없고 어렵기만 한 무거운 뉴스들을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하면 어른이 된 것이고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한 것이다.

'깨알같이 작은 글자 크기, 매혹적인 글자 모양'. 뉴욕타임스를 처음 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다. 글자가 너무 작아 이걸 어떻게 볼까 할 정도이지만 읽다 보면 매우 놀라울 정도로 내용이 자세하다. 내가 처음 뉴욕타임스를 자세히 읽게 된 것은 희대의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풋볼 스타 오제이 심슨 재판 때문이었다. 수년간을 끌어 온 시점에서 내가 접한 기사에 그가 왜 어떤 혐의로 기소되었는지 그리고 사건의 개요와 전개과정이 나와 있었다. 놀라운 것은 다음 날 기사에도 기본적인 정보를 실어주고 이에 함께 새로운 소식을 보태었다. 누가 언제 읽어도 그 사건이 어떻게 뉴스가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말이다. 그러니 자세할 수밖에 없고 깨알 같을 수밖에 없으리라. 기사의 범위가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매우 넓고 깊다.

오늘 당장 한국에서 어느 신문이든 한 부를 잡고 제법 끌고 있는 사건에 관한 것을 읽어보라. 당일의 스냅 샷만 있을 뿐 나머지는 알기가 어렵다. 신문이 어렵다는 내 어릴 적 생각은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건의 스토리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지금의 현재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보도된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기 어려울뿐더러 항상 새로운 파편이 되기 일쑤다. 그러니 전개과정과 전모를 알기 위해서 독자는 스스로 기사들을 뒤져볼 수밖에 없다.

최근 경남도민일보가 선보인 에버그린 콘텐츠가 주목을 받고 있다. 쉽게 말해 재활용 기사인 셈이고 전문적으로 말하면 뉴스 데이터의 조직화를 통한 기사 생산을 의미한다. '지난 기사 새로쓰기'에 첫 번째로 선보인 것은 여름철 골치 손님 적조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혈세 먹는 괴물 김해 경전철의 탄생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구제역과 가축의 잔혹사를 선보였다. 적조에 관한 역사적 추적과 주요 사건에 대한 설명이 압권이었고, 탈이 날 것 같던 김해 경전철의 도입 과정이 알기 쉽게 제시되었다. 살처분 당하는 동물, 초주검 상태의 농민과 공무원의 애환도 축적된 자료에 의해 빛을 발했다. 적조기사 674건, 김해 경전철 기사 716건, 구제역 876건을 살펴보고 새로 쓴 결과, 독자에게 재미와 이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제공했다. 기사도 AS가 가능하다는 생각, 기록은 살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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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대교, 거가대교, 가포신항, 진주의료원, 밀양 송전탑, 그리고 4대강사업과 같이 누가 왜 그랬는지 경황 없이 지켜봐야 했던 어제의 미스터리들이 뉴스매체의 기록 분석이라는 현대판 사관 앞에 서게 되었다. 어떤 폭군도 기록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언론의 축적된 기록이 탐욕과 폭력을 제어하고 무거운 책임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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