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오백리] (6) 함양군 유림면 성애교~산청군 생초면 고읍교

남강 물길은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와 유림면 대궁리 성애마을을 잇는 성애교(聖愛橋)를 지나 수유교, 재궁교를 차례로 지난다. 그리고 크게 휘돌아 흐르면서 함양군과 산청군의 경계를 넘는다. 물길은 이내 산청군 생초면 생초삼거리와 생초면 하촌리 보전마을을 잇는 고읍교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고읍교에 닿기 전, 남강 물길은 생초면 어서리 강정마을 앞에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큰 물길을 이룬다. 강정마을은 남원시 운봉읍에서 산내면, 마천면을 차례로 훑어온 임천 물길과 남강 본류가 합류하는 두물머리다. 자갈과 모래로 이뤄진 넓은 둔치와 '곱내들'이라 불리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임천은 남강 상류에서 주요 지류다. 성애교에서 고읍교에 이르는 이 구간은 남강 본류와 지류 임천(일명 엄천강)으로 나누어 2회에 걸쳐 이야기하고자 한다.

백운산에서부터 흘러온 위천과 합류한 남강 물길이 이내 닿은 곳은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와 유림면 성애(聖愛)마을 앞이다. 두 마을을 잇는 성애교(聖愛橋)가 있다. 성애마을은 지명에서 엿보이듯 주민이 모두 기독교 교인이고, 한센인촌이다. 이곳이 한센인촌이 된 것은 1940년대라 하는데 지금도 30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한다.

이번 구간인 성애교와 고읍교까지 남강 물길을 톺아가는 길에는 산청군 생초면 계남리 원계남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유홍준(52·이병주문학관 사무국장) 시인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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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통재가 원래 분통(憤痛)재였던 까닭

수유교는 1997년에 지은 다리로 함양군 수동면 본통교차로에서 대궁리 사안마을을 잇는다. 사안마을은 밭사락안이라 불리었고 들녘은 까막섬이라 했다. 수유교는 유림면 사무소로 가는 지방도 1034번으로 이어진다.

수유교를 지난 물길은 유림면 대궁리 재궁교에 이른다. 재궁교와 재궁마을은 함양군과 산청군의 경계에 있는 본통재 아래에 있어 국도 3호선을 타고 가면 잘 보이지 않는다. 재궁마을에는 호랑이를 물리친 머슴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마을 창고에는 그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놓았고 강둑 옆에는 표지판과 호랑이 동상 등을 세워놓았지만 지금은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방치돼 있다.

유홍준 시인의 어린 시절 기억이다.

"재궁 입구에 고기 잘 잡히는 데가 있었지예. 우리 동네가 계남천 맨 끄트머리 원계남이었는데 어른들이 솥단지 들고 솔빗재를 넘어 회치(물놀이 또는 마을 공동 회식이라는 뜻의 옛 토속어) 갔던 뎁니더. 고기 잡아서 놀기에 딱 좋았어예."

현재 국도 3호선은 본통재 위쪽 태봉산 생초터널로 이어지지만 옛 3호선은 본통재를 넘어야 했다.

"본통재를 여기 인근 사람들은 원래 분통재라 했지예. 화살보다 빠른 말을 주인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고마 쓸모없다며 목을 베는 바람에 사람들이 분통이 났다는데…. 본통마을은 분통마을이라 했고예…. 어디서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깁니다. 생각해보면 함양이나 거창으로 가려면 재를 넘어야 하는데 한 번 넘자니 워낙 힘이 들어서 그랬던가 싶기도 하고요. 국도 3호선이 생기고도 눈이라도 한 번 올라치면 사람이든 차든 다니기가 힘들었지예. 사고도 마이 났고…."

본통재는 함양군 유림면과 산청군 생초면을 잇는 태봉산 자락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원래는 외길이었는데 유신정권 때 생초사람들이 울력해서 넓혔고 다시 1977년 확장 공사를 했다. 이 고갯길은 지금도 수풀이 무성해서 한낮에도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짧은 구간이지만 원시림에 들어선 듯하여 지나는 순간 잠시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러다가 다시 눈앞이 환해지면서 까막섬 들녘과 고즈넉한 강변 풍경이 달려들어 사람의 마음을 와락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엄천강과 남강이 만나는 강정 두물머리

남강 물길은 본통재 서쪽 아래를 흘러 임천과 합류하면서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마을에 이른다. 강정마을은 백사장과 모래자갈이 섞인 평평한 강변 유역을 가지고 있어 수십 년 동안 인근 주민들의 꽃놀이, 물놀이 장소였다.

남강 본류와 임천이 합류하는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마을 두물머리./권영란 기자

유 시인은 이곳 강정마을에 대한 기억이 남달랐다.

"학생들 매년 소풍 오는 데가 강정이었지예. 넓은 백사장에서 천지를 모르고 뒹굴고. 그러다가 땀나면 수영하고 고기 잡고…. 친구들끼리 동네 닭서리 해서 놀러 오는 데도 여기였지예. 동네에서 회치한다꼬 어머이들이 모여서 모래뜸찔 하러 간다모는 요기 강정이었고요."

하지만 현재 강정마을 앞 둔치는 모래보다 자갈더미가 많다. 오히려 강정 건너 임천 물줄기가 끝나는 생초면 하촌마을 곱내들 앞 둔치가 훨씬 넓고 뛰어놀기에 좋다. 강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달맞이꽃이 노란 밭을 이루고 굵고 자잘한 자갈들이 굴러다니고 이어 부드러운 백사장이 이어진다.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도 파라솔과 텐트를 치고 낚시를 하거나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곳 주민들은 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 물길을 두고 '경호강'이라 말한다. 강정마을에서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까지 흐르는 경호강은 은어낚시를 하기 좋은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때마침 궂은 날씨에도 낚시를 하고 있는 김창하(43), 김용희(37)씨를 만났다.

"강원도 삼척에서 왔습니다. 여기가 워낙 은어낚시가 잘 된다고 하잖아요. 휴가 기간에 가족을 뿌리치고 겨우 왔는데…. 8월 말 산란기가 시작되면 못 하거든요. 두어 시간 전에 왔는데 아직 포인트를 못 잡아서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주민들은 최근 가까운 대구,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은어낚시를 하기 위해 낚시꾼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마을 앞에서 김창하(43) 씨가 은어낚시를 하고 있다./권영란 기자

"고기잡이가 아닌 그냥 건져묵는 거였다"

어서리 강정마을을 돌아온 남강 물길은 대전~통영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고읍교에 이른다. 고읍교는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와 하촌리를 잇는 다리다.

고읍교가 생기기 전에는 생초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나루터가 있었다.

"노 젓는 게 아이고 줄배였는데, 맷삯을 곡물로 줬어예. 그때야 돈이 귀허니까. 고읍에 있는 아이들은 줄배를 타고 강을 건너 왔습니더. 큰 물이 들면 배를 탈 수 없어 등교를 못했는데 학교에서도 결석으로 치지 않으니… 아이들이야 우짜든지 비가 마이 와서 강을 건널 수 없었으모는 했지예."

유 시인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 아이들에게 넓은 강과 백사장은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더할 수 없이 마냥 좋은 놀이터였다고 말한다.

"생초 아이들은 눈만 뜨면 투망질했습니더. 여기 사람들이야 강에 있는 고기는 국물건데기 건져묵는 거라 여겼지예."

함양군 유림면 대궁리 성애교에 서서 물길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돌아보면 남강 본류를 가로질러가는 대전~통영고속도로 남강천2교가 눈에 들어온다./권영란 기자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예닐곱 살 때부터 틈만 나면 철사고리로 낚싯바늘 만들고 삼대로 찌 만들어 강으로 고기를 잡으러 다니고 좀 커서는 족대나 투망을 이용해 고기를 잡으러 다녔다는 것이다.

"주전자조차 귀한 시절이니 버드나무 가지에 고기를 꿰어가지고 돌아왔지예. 그걸 사주는 어른이라도 만나는 날은 운수 터진 날이었고. 300원, 500원씩 받는 재미로 다음날 또 가서 잡고…."

고읍교는 1987년에 착공해 1988년에 지은 다리다. 생초면 소재지 앞을 지나던 국도 3호선은 생초면 신연리 생림마을 뒤를 돌아 고읍교 위를 지나 생초터널로 이어진다. 현재 이 구간은 공사가 진행 중이라 아직 개통되지 않았다.

"지금보다 높이가 낮은 다리가 있었는데 1987년 셀마 태풍에 쓸려서 다시 지은 거라요. 1970년대 말까지는 구멍 뚫린 쇠로 된 것, 철구다리라 했나 그런 게 있었지요."

남강을 따라 가다보면 고읍교를 비롯해, 성애교 등 1988년에 완공한 다리가 제법 있다. 1987년 태풍 셀마에 다리를 잃고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강 때문에 먹고살고 강 때문에 운다

생초면 소재지 옛 국도 3호선 변에는 민물고기를 잡아 30~40년 동안 장사를 해온 식당이 늘어서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이곳은 강정 두물머리를 찾는 사람들이나 관광버스가 쉬는 곳이라 인근에 널리 알려진 민물식당 마을이다.

생초남원식당 김준자(70) 아지매는 40년 가까이 이곳에서 쏘가리매운탕 장사를 한다. 그런데 해마다 장마나 태풍이 오면 마음을 졸인다고 했다.

"초곡천이 넘치면 우리는 죽어나요. 길이고 가게고 죄다 물이 벙벙하게 차있으니…."

생초면 소재지에는 두 개의 물줄기가 흐른다. 계남천과 초곡천이다. 이 두 물줄기를 따라 양옆으로 차례차례 마을이 형성됐다. 계남천은 골짜기가 짧지만 초곡천은 골짜기가 길다. 골짜기 안 향양저수지에 닿아있다. 좀 더 위로는 거창군 남상면 진목리에서 거창군 신원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1034번에 닿는다. 두 물줄기는 생초면 소재지 앞에서 남강 본류와 합류한다.

초곡천이 남강 본류로 합수하는 지점에는 초곡교가 있다. 1977년 국도 3호선이 포장되면서 완공한 다리인데 주민들은 이 초곡천과 초곡교가 문제라고 말한다.

"올해는 별일 없이 지나갔는데 매년 그런 물난리를 겪어요. 지난해도 물이 넘쳐 여기 도로를 덮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예. 그래도 앞에 도로변 둑을 높여서 예전보다는 좀 낫습니다."

생초면 소재지를 지나는 남강 본류는 고읍교를 지나오면서 강 가운데 제법 큰 섬을 만들며 두 갈래 물길이 되었다가 생초면 신연리 앞에서 다시 한 물길을 이룬다.

"하도 수해를 입으니 섬을 없애고 전부 물길로 만든다 하데예. 근데 유물이 나오는 바람에 발굴을 해야 된답니다. 빨리 끝내고 물길을 저 건너편으로 돌리기만 해도 훨씬 나을 텐데…."

생초면 어서리 주민들은 오랫동안 강 때문에 먹고살았고 또 오랫동안 강 때문에 울고불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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