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흉흉하다.

그리 많은 세월을 살아온 것도 아닌데 올해처럼 사건 사고가 마음을 어지럽힌 해도 없었던 것 같다. 세월호 사건 규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군대 보낸 아들을 둔 부모가 가슴을 졸이고, 사춘기 딸을 둔 부모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오죽하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할까.

김해에서 일어난 여고생 살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지역 학생들이 불안하다.

자신이 늘 오가던 거리를 거닐었을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믿기도 어렵거니와 그 가해자 역시 학생이었다는 사실이 김해에 사는 부모와 학생들 모두를 더욱 불안에 떨게 하고, 괴담을 만들어내고 있다.

방학 중에 딸아이와 친자매처럼 지내는 친구가 집에 와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학교에서 선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데 그 이유가 황당하기 그지없다.

사소한 오해로 시작된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터무니없이 불려다녔고, 보복이 두려워 부모님께는 말씀도 못 드린단다.

급기야 개학하기 며칠 전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갔다가 선배로부터 수십 통의 전화를 받고 우리 집으로 도망을 오기도 했다. 무서워서 집에도 못 가겠다는 아이를 데려다 주는데 마침 또 그 아이들로부터 전화가 와서 내가 대신 받았더니 뚝 끊어 버린다. 심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화를 한 아이를 수소문해서 만났다. 내가 교사라는 사실을 밝혀서인지 아니면 어른이라서 그런지, 첫 만남부터 매우 적대적인 인상을 풍기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직 앳된 얼굴이었지만 화장기가 있는 얼굴에 껌을 한 뭉텅이나 털어 넣고 씹으며 늦은 저녁에 어두컴컴한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모여 있었다. 딸아이의 친구에게 한 짓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이런 일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설득하면서도 점점 힘이 빠지기만 했다.

나의 간절함을 비웃는 것처럼 시종일관 말장난 같은 이유를 갖다 붙이며 호전적인 반응만을 보였다. 학생의 담임과도 통화를 한 뒤 일찍 들어가라는 말을 하고는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모든 어른을 적대시하고, 어떻게든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어필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강하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자신이 괴롭히는 약한 아이들처럼 언제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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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아이들이 배운 적자생존이 서글프기만 하다. 세상이 힘의 논리에 지배되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약자와 강자가 아닌 다 같이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시작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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