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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것들의 재발견…이것도 언젠가 문화재

[토요 동구밖 생태·역사교실] (12) 진해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4년 08월 19일 화요일

진해의 봄은 군항제로 시작된다. 군항제 벚꽂 잔치가 올해로 벌써 쉰두 번째를 맞았다. 진해 벚꽃 으뜸 풍경은 해군진해기지사령부다. 이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때는 군항제가 열리는 열흘 정도다. 나머지는 일반인들이 드나들 수 없다.

그런데 해군진해기지사령부에는 근대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건물 자체가 일제 강점의 소산이고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긴 산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스무 사람 이상 단체가 신청하면 내부 탐방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7월 26일 역사탐방으로 해군진해기지사령부에서 함께한 진해지역아동센터와 다문화지역아동센터는 둘 모두 진해에 있지만 이곳을 처음 찾는 친구들도 많았다.

사령부 영내로 들어서자 짙은 초록으로 변한 벚나무 옆으로 철길이 이어져 있다. 철길 어느 쯤에 서 있는 간이역사는 언제나 아련함을 느끼게 한다. 진해선의 종착점, 통해역이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만들어지지 않은 어른들만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중간중간 보이는 건물과 동상을 설명과 함께 넘기며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향했다. 일본군이 통신대로 쓰던 건물을 해방 이후 대한민국 해군이 인수해 대통령 별장으로 활용했는데 지금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에서 대통령 의자 손잡이에 새겨진 사자조각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들.

아득한 옛날에 살았을 것만 같은 이승만, 그이가 썼던 물건이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데에서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역사라 하면 늘 오래된 건물과 물건을 연관짓는 관성이 작용한 탓이리라. 여기 물건들은 지금 눈으로 보면 모두 별스럽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느낌과 생각은 저마다 다른 법. 식탁·의자·부엌·침실은 자기 집보다 훨씬 좋은데 딱 한 가지 세면대 옆 옛날 화장실은 자기 집 것이 더 좋다는 아이가 있었다. 또 두산중공업 사회봉사단 등 어른들은 대통령 별장이라 아주 거창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참 소박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음을 안 것만으로도 대단한 지식을 얻은 것처럼 흐뭇해하는 아이들, 자기가 살고 있는 진해에 그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다는 사실도 그들에게는 새로운 지식이 아니었을까.

별장을 나와 바다 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니 솔숲이 내어주는 그늘과 바람이 무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하게 어루만져 준다. 육각정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중국(지금 대만) 장개석 총통이 만나 태평양동맹 결성을 위한 예비회담 개최를 필리핀 대통령에게 제안한 장소로, 별장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런 설명에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여기가 그렇게 유명한 장소라니~~!!' 이런 표정들이다. 물론, 그냥 모양이 육각형이라 정자 이름이 육각정이구나, 이런 정도 기억만 해도 훌륭하다.

대통령 별장 앞에 있는 정자 '육각정'도 돌아봤다.

하지만 아이들은 역사 이야기보다 육각정에서는 앞으로 거제도가 보이고 왼쪽으로 가덕도가 보인다는 이야기를 더 재미있어 한다. 머릿속에서는 제각각 흩어져 있던 섬들이, 이곳에서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육각정 앞에는 한결 무성해진 나뭇잎뿐이다. 전에는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리라. 군사기지라서 어선들이 함부로 들어와 고기잡이를 할 수 없는 덕분에 여기 바다는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이야기에도 재미있어 한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이야기보다는 실제로 손으로 잡거나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것에 훨씬 흥미를 느낀다. 거대한 군함을 보자 '우와'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군함 이름들이 독도함, 천안함이다. 유류공급선도 있고 '율곡 이이'라는 함정 이름도 있다. 해경이 타는 배는 눈에 쉽게 뜨이도록 흰색으로 하고 군함은 반대로 눈에 뜨이지 않게 회색으로 칠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같다는 이야기는 어른들도 잘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다.

해사 박물관에서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을 보고 있는 아이들.

마지막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해군과 관련된 물건들이 예와 이제를 가리지 않고 다 모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군 하면 으뜸이 충무공 이순신이다. 그래서인지 박물관에는 이순신 장군 관련 자료들이 많다.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모사본-정본은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다) 앞에 아이들이 모였다. 이순신 장군 영정은 유적지마다 다르다. 장군 생전에 그린 초상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에서 표준 영정을 정했다. 다음에 이순신 영정을 보게 되면 친구들은 해사 박물관에서 본 표준 영정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체험이든 탐방이든 함께하는 아이들이 과정 전체에 대해 즐겁게 관심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토요 동구밖 생태·역사 교실에서 모둠별로 미션 수행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는 이런 의도가 있다. 문제를 풀기 위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고 그런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정답이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남게 마련이다. 발품을 팔아 얻은 답이 그냥 들어서 쉽게 얻은 답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터득하는 것도 역사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해사 박물관을 비롯해 해군진해기지사령부 내부 문화유산을 돌아본 친구들 가운데 몇몇이 재미는 있었지만 좀 따분했다는 소감을 썼다. 아마 이전에 모둠을 이뤄 뛰어다녔던 즐거움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런 소감에 대한 대답은 한 가지다. 언제나 좋고 즐거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주어진 조건을 잘 받아들이는 훈련이나 경험도 필요한 법이니까…. 군사지역인 때문에 정해진 루트를 따라야 하고 정해진 설명을 들어야 하고 정해진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해사 박물관을 나와서는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자주 만두를 들곤 했다는 중국음식점 원해루에 들러 간짜장과 군만두로 점심을 먹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주인이 중공군 출신 반공포로였는데 지금은 중국 출신 화교(화상華商)가 주인이다. 이름도 영해루에서 원해루로 바뀌었다. 중국집 자체가 바로 이야기를 간직한 문화유산인 셈이다.

마지막 일정은 물놀이. 그래도 우리 할 일은 다하고 논다. 대장동 골짜기로 옮겨 가는 길에 나무 아래 그늘에 잠시 버스를 세웠다. 오전에 탐방했던 해군기지 근대문화유산 복습이 목적이다. 관련 낱말 30개를 일러준 다음 기억나는 대로 떠올려 적게 했다. 모두 열아홉 낱말을 틀리지 않고 적은 친구가 1등이다. 어른들도 덩달아 기억을 떠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더 많이 적었을까? 아이들이 더 많이 적었을까? 그건 비밀이다.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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