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성당서 열린 평화 화해 미사에 주민 3명 참석…송전탑 반대 메시지 쓴 티셔츠와 편지, 신부 통해 전달

10년 동안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우며 고통받아온 밀양 주민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이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참석했다. 이날 미사에 초청을 받은 밀양 주민은 정임출(72·부북면 위양마을), 한옥순(67·부북면 평밭마을), 최민자(60·가르멜수녀원) 씨 등 3명이다.

지난 6월 11일 밀양시가 철탑 예정지 농성장을 행정대집행할 때 정 씨는 127번, 한 씨와 최 씨는 129번 움막을 지키다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오는 수모를 당했었다.

미사 참석을 위해 전날 서울에 도착했던 이들은 교황을 만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아침도 거르고 명동성당에 나가 교황을 기다렸다.

최 씨는 이날 오전 7시 성당에 도착해 찍은 사진을 <경남도민일보>에 보내왔다. 사진에서 한 씨와 정 씨는 교황이 지나갈 때 보이려고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로 "죽음의 송전탑으로부터 구해주십시오. 원전을 반대합니다"라고 쓴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

밀양 주민 한옥순 씨가 18일 명동성당에서 교황에게 보여주려 "죽음의 송전탑으로부터 구해주십시오"라고 쓴 손수건을 들어보이고 있다. /밀양 주민 최민자 씨

이들은 교황을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준비해간 선물과 편지는 신부를 통해 교황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온 한 씨는 <경남도민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그분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지만 대통령과는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한 선물은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입었던 '765㎸ OUT'이라고 적힌 티셔츠와 밀양 주민들이 쓴 호소문이다.

주민들은 미사 초대 고마움과 함께 지난 10년 동안 싸우는 과정에서 한국전력과 공권력에 의해 당한 폭력, 74세 노인 두 명이 분신과 음독으로 세상을 떠난 일들을 교황에게 전했다.

주민들은 밀양 송전탑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핵발전소 확대 등 잘못된 에너지 정책을 지목하며 "그동안 겪은 수치와 모멸, 마을공동체 분열의 상처는 너무나 깊어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지글은 "그저 살던 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며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글로 마무리됐다. 주민들은 "지난 10년간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저희를 어루만져 주시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이들을 향해 '이것은 옳지 않으니 중단해야 한다'는 그 한마디 말씀을 원한다"고 요청했다.

이날 교황이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시각, 밀양에서는 송전탑 공사 강행에 저항하는 주민과 이를 막는 경찰 간 충돌이 벌어졌다. 밀양 송전탑반대대책위는 "폭우가 쏟아지고, 명동성당에서 밀양 주민들도 초대돼 교황님이 집전한 '평화와 화해의 미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공사 현장에는 어이없게도 레미콘 차량 18대로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공사가 강행됐다"며 한전에 사과와 부실공사 우려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주민들과 연대자 101명은 지난 6월 11일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당한 인권유린에 대해 헌법상 자유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 18일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한 주민 3명은 19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릴 헌법소원 기자회견에 참석하고자 서울에서 하룻밤을 더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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