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공직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와 그의 자식이 손에 손잡고 거리를 누비는 게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지난 7·30 재보궐선거에서 화제를 모은 주인공은 서울 동작을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아들 기대명이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훈남' 외모로 이목을 집중시킨 기 군은 "내가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아빠… 새정치연합이 승리하길 원하는 국민을 믿고 우리 꼭 승리하자"는 공개편지를 써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자식이 아버지를 돕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가장의 정치 철학과 노선, 가업이나 직업, 종교 따위를 대대로 물려받는 문화가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는지 몰랐다. 물론 기대명 군도 나름의 정치적 소신이 있을 수 있다. 아버지가 새누리당 후보였어도 과연 새정치연합에 힘을 실었을까 궁금해지긴 하지만 말이다.

후보자들의 마음 모르지 않는다. 득표에 도움만 된다면 아들·딸뿐 아니라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할 것이다. 문제는 부모 옆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식의 '자격'이다. 누가 봐도 번듯한 자식만이 후보이자 부모를 빛낼 수 있다. 정책 대결은 뒷전. 종국에는 "누가 누가 내 새끼 잘 키웠나" 경연장이 된 지난 6월 서울교육감 선거를 돌아보자. 당시 한 후보자(고승덕)는 자식 때문에 선거를 망쳤다는 소리를 들었고 다른 후보자(조희연 현 서울교육감)는 반대로 자식 덕을 톡톡히 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조 교육감을 도운 '훈남' 두 아들은 모두가 선망하는 외고 출신에 연세대·서울대생이었다. 대학 교수와 중등교사인 '좋은' 부모의 물적·정서적 후원 속에 '좋은' 학교를 다니는 자식들이 아버지 선거운동까지 발 벗고 나섰으니 이 얼마나 이상적인 부모-자식 관계인가. 야권 지지자는 물론 언론까지 나서 부러움을 표현했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잘 키운 자식, 잘 키운 부모 소리 들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16일 기동민 새정치연합 후보 서울 동작을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는 아들 기대명 군. /기동민 페이스북

경쟁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들은 더욱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정신 바짝 차려라, 부모들이여. 자식의 성공이 곧 내 성공이다. 남들한테 꿇리지 않는 자식이 되려면 떼돈을 벌든 높은 자리에 올라가든 스스로 공부를 하든 교육 여건이 빵빵한 곳으로 이사를 가든 무엇이든 해야 한다. 다른 부모와 출혈 경쟁은 불가피하다. 모두 다 올라갈 수는 없다.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외고, 일류대, 일류 직장에 들어가고 싶은가? 패배는 곧 낙오고 실패한 인생이다. 성적이 안 되면 잘생기거나 예쁘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 선거운동 지원할 자격도 생기는 것이다. 지지리 공부도 못하고 외모도 달리고 허구한 날 사고나 치고 다니는 자식을 어느 후보가 유권자 앞에 내놓고 싶겠나?

정치인들, 특히 '진보'를 입에 달고 사시는 분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그렇게 자식이 자랑스러웠습니까? 사교육비는커녕 하루하루 먹고 살기조차 버겁고 배움까지 덜해 가족에게 그저 미안하고 미안할 뿐인 '평범한' 부모들 마음은 헤아려 보셨습니까. 행복은 성적과 외모, 재산, 결국에는 부모 잘 만난 순임을 매분 매초 확인하며 살고 있는 아이들·청년들의 절망은 생각해보셨습니까. 무릇 진보라면 이런 사람들이 끝내 무너지지 않을 세상을, 어깨 쫙 펴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하거늘 하시는 짓은 정반대이니 참으로 역겹기 그지없습니다. 당신들에게 자식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진보란 대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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