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동구밖 생태·역사교실] (11) 의령

사람은 예로부터 자연에 기대어 살아왔다. 자연생태가 역사나 문화랑 동떨어져 있지 않은 까닭이다. 사람은 때로 생태 조건이 좋은 자연을 찾아 스며들기도 하고 반대로 생활 환경을 좋게 만들기 위해 인공으로 자연을 가꾸기도 한다. 7월 26일 통합 창원시 진해 해담·참살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찾아나선 토요 동구밖 생태체험은 사람이 애써 가꾼 자연 생태를 대상으로 했다.

먼저 요즘 들어 새롭게 가꾼 숲길을 찾았다. 가례면 운암리 평촌마을 은광학교 뒤쪽에 있는 활터 가까운 데서 의령읍 중동리 충익사까지 3.5km가량 이어지는 멋진 둑길이다. 충익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 장군과 그이를 도왔던 열일곱 장령을 모시는 사당이다. 여기 둑길에는 양옆으로 잣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우레탄으로 된 자전거길과 흙으로 만든 사람길이 나란히 나 있다. 비가 와도 젖지 않고 뙤약볕이 내리쬐도 그늘이 풍성한 멋진 길이다.

이 의령천 제방 잣숲길은 의령 사람들한테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아침 오는 길에 마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바람에 늦어져 처음부터 걷지는 못하고 가운데를 뚝 분질러 의령천변으로 들어섰다. 제방으로 올라서니 시원하게 바람이 불어온다. 두산중공업 사회봉사단과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퍽이나 좋아라 한다. 시원한 바람이 고맙고 우거진 그늘이 고마운 노릇이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모둠을 이뤄 걸어간다.

의령천 잣나무 둑길을 걸으며 풀도 만져보고 곤충도 살펴본다. 옆으로 한 어르신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김훤주 기자

걸어가면서 보니까 뜻밖에도 길섶에 난 이런저런 풀들을 눈여겨 보거나 손으로 만지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거기 있는 엉겅퀴·지칭개·메꽃·민들레·환삼덩굴·달맞이꽃·나리·여뀌 따위 그 이름들은 잘 몰라도 이렇게 눈길과 손길로 몸소 느껴본다는 자체가 소중하고 좋은 일이다. 아이들은 방아깨비·메뚜기·매미·잠자리·개구리 등을 마주하면서 입도 따라서 더욱 크게 벌어지고 소리도 좀더 커진다. 거뭇거뭇한 바위로 덮여 있는 의령천에서 군데군데 서 있던 백로나 왜가리가 아이들 소리 때문에 조용히 날갯짓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제 구름다리를 건널 차례다. 의령천이 남산천을 만나 좀더 풍성해지는 자리다. 지금껏 걷던 길을 벗어나 높직한 구름다리에 올라가니 물줄기 좀더 넉넉해져 있는 품새와 나무로 우거진 남산 푸름이 좀더 잘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구름다리 출렁거림 덕분에 더욱 신이 났다. 손으로 잡았던 곤충들까지 놓아주고 팔짝팔짝 뛰어오르며 구름다리를 굴리는 입가에는 웃음이 물려 있다. 같은 아동센터 아이들이랑도 어울리고 다른 아동센터 아이들이랑도 어울린다.

구름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데크를 따라 내려오니 바로 충익사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잘 가꾼 잔디밭을 가로지르고 2012년 문을 연 의병박물관을 지나 충익사로 들어선다. 충익사 뜨락은 나무들이 엄청 좋다. 둥치 굵은 배롱나무들은 둥그랗게 퍼져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모감주나무나 가문비나무도 좋고 오래된 감나무, 500년 넘게 세월을 견뎌온 뽕나무도 한 그루 있다. 300년 가까이 된 모과나무도 있는데, 곽재우 장군 의병들 꿋꿋한 기상처럼 곧게 자라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충익사 연못가에서 그림 그리기에 빠진 아이. /김훤주 기자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눠받은 종이에다 볼펜으로 그림을 쓱쓱 그리고 있다. 누구는 조그만 나뭇잎을 그리고 자기가 잡은 방아깨비나 개구리·잠자리·애벌레, 멀리 보이는 백로나 물을 뿜는 분수를 그리는 친구도 있다. 선 채로 또는 앉은 자리에서 자기가 포현하고 싶은 바를 그리는 아이들 태도가 나름 진지하고 또 집중력도 있어 보인다.

③방아깨비를 잡아서 자세히 그려보는 아이들도 있다. /김훤주 기자

의령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버스를 타고는 밥집 강남가든으로 갔다. 신경써서 장만해 낸 반찬에다 쌀밥 한 그릇씩을 해치운 다음 곽재우 장군 생가가 있는 유곡면 세간리로 향했다. 버스로 가면서는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다. 그런데 대부분 아이들이 곽재우를 모른다.

"여러분, 곽재우는 몰라도 이순신은 다 알지요?" "예." "이순신이 어떤 사람인가요?" "임진왜란!", "한 번도 안 졌어요!" "맞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또 있어요. 바로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랍니다." "군사가 아닌 보통 백성이면서 왜군과 싸운 사람이 의병인데요, 어쨌든 둘이 다른 점은 이순신은 바다에서 싸웠고 곽재우는 육지에서 싸웠다는 것뿐이랍니다. 지금 우리는 곽재우 장군이 태어난 생가로 가는데, 거기 가면 마을에 현고수(懸鼓樹)라는 느티나무가 있어요." "현고수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 "몰라요." "한문으로 북을 매단 나무라는 뜻인데, 곽재우가 그 나무에 북을 매달아놓고 쳐서 의병을 모았다고 해요. 그렇게 의병을 모아 곽재우는 바다와 육지를 통틀어 임진왜란 첫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니 나이가 많겠지요? 나무 둥치가 여러분들 열 아름은 넘거든요. 나중에 가서는 한 번 안아보고 쓰다듬어 보세요. 오전에 하다 말았던 그림 그리기도 현고수 밑에서 좀더 하고요." "예∼."

④곽재우 장군 생가가 있는 세간리에서 느티나무 '현고수' 아래 평상에 앉은 아이들. 그림도 그리고 곤충도 잡고 장기판도 만지작거린다. /김훤주 기자

어느 새 세간 마을에 버스가 닿았다. 현고수는 'ㄱ'자 위에 'ㄴ'자를 올려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옆으로 뻗은 어디 즈음에 곽재우는 북을 매달았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나무를 기르고 자란 나무는 사람을 위해 쓰인다. 현고수 아래에는 평상이 여럿 놓여 있다. 지금은 현고수가 이렇게 쓰이고 있다.

동네 어른들한테 양해를 얻어 아이들을 나무 아래로 스며들게 했다. 이렇게 생긴 나무는 처음 본다는 둥, 이렇게 굵은 나무도 처음이라는 둥 웅성대던 아이들이 평상에 오르거나 또는 선 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개구리나 메뚜기를 잡으려고 논두렁을 타는 아이도 있었고, 동네 어른들 심심풀이 장기판에 장기알을 놓아보는 아이도 있었다. 현고수 아래 그늘로 드니 뙤약볕 더운 기운이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일어설 때가 됐다. 가까이 유곡천 캠핑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스스로도 살아 있음을 입증하듯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싸움을 즐겨 한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소감을 썼다. 20분쯤 지나니 아주 조용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둘러보니 하루 활동으로 몸이 나른해진 때문인지 다들 곤하게 잠들어 있다.

※이 기획은 두산중공업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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