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이우기·박옥희 부부

케이블 채널을 틀면 17년 전 영화 〈접속〉을 요즘도 종종 볼 수 있다. PC통신 대화를 통해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사랑을 키워가는 내용이다. 진주에 사는 이우기(48·사진 오른쪽)·박옥희(41) 부부는 이 영화를 통해 옛 기억을 떠올린다.

우기 씨는 1996~1997년 PC통신 나우누리에서 '우리말 한누리'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교열업무를 오랫동안 봤다. 시삽(운영자)은 아니었지만 우리말에 대해 알려주고 설명하는 역할을 했다. 이곳 회원이었던 옥희 씨는 그를 특히 따르던 회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차에 첫 번째 오프라인 정모가 성사되었다.

우기 씨는 당시 기억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끄집어냈다.

"1997년 10월 대전 충남대에서 첫 정모를 했습니다. 10여 명이 만나 학교 구경하고, 막걸리 마시고, 노래방에서 놀다 헤어졌죠. 당시 집사람도 실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참 착하고 예뻤어요. 그날 만남 이후 급격히 가까워졌습니다. 집사람이 먼저 전화를 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이었죠. 제가 말과 글이 좀 되다 보니 그런 면에서 어필을 한 것 같아요. 저는 나이차가 있어서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어느 드라마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오기에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했지요."

정모 이후 둘은 PC통신에서 둘만의 대화를 속삭였다. 여러 명이 접속했더라도, 둘만 대화할 수 있는 '귓속말' 기능이 막 나왔을 때다.

실제로 만난 건 한 번이었지만 이미 불 같은 사랑을 시작했다. 당시 우기 씨는 진주, 옥희 씨는 안산에서 지냈다.

"평일에는 삐삐·시티폰으로 내내 연락했죠. 저는 부모님과 함께 지낼 때인데, 안 되겠다 싶어 제 전화를 별도로 설치했어요. 아내는 PC통신·전화로 긴 데이트를 하다 보니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나와서 부모님께 혼나고 그랬죠."

주말에는 서로 안산 혹은 진주를 오갔다. 때로는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나기도 했다.

"신문사 일을 저녁까지 해야 하는데, 저는 오후 4시 이전에 기사 마감하고, 담당 부장한테 '아가씨 만나러 가야 한다'며 나오곤 했죠. 영화 〈접속〉도 대전역 앞 극장에서 함께봤어요. 당시에는 PC통신을 통한 교제가 많이 없을 때입니다. 그 영화가 딱 우리 얘기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죠. 데이트 후 대전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는 너무 아쉬웠죠. 저녁 7시 좀 지나서 각자 타고갈 상·하행선이 거의 나란히 들어오는데 서로 창밖으로 손 흔들며, 영화 한편 찍고는 했죠. 송대관 씨 노래 '차표 한장'에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것 역시 우리 얘기나 마찬가지였죠."

장거리 연애를 하다보니 데이트 비용부담이 만만찮았다. 우기 씨는 적금까지 해약해서 충당해야 했다. '이럴 바에 빨리 결혼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기 씨는 연애한 지 3개월 좀 지나 처가 어른들을 뵙기로 했다.

옥희 씨 아버지는 보수적이고 불 같은 분이었다. 당시 딸이 교제하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면 화부터 내실 것 같아 아예 불쑥 찾아가기로 했다. 다행히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내내 무릎 꿇고 꾸지람·훈계·심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처가에서는 여전히 못 미더운 눈치였다.

"말은 안하지만 제가 결혼 한 번 한 사람으로 의심하는 눈치였어요.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처가에서 호적등본·건강진단서·재직증명서·대학성적증명서를 보내줬으면 하더라고요. 아내는 제 자존심 상할까 걱정했지만, 저는 단 1초도 고민 않고 바로 떼서 보내드렸죠. 그제야 안심하시고 결혼날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면접 먼저 보고 서류 심사에 통과한 셈이죠."

둘은 연애 9개월 만인 1998년 6월 결혼했다. 옥희 씨는 남편만 보고 진주로 오게됐다. 사투리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시어머니가 '정기(부엌) 가서 행기표(행주) 갖고 오니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껌뻑거리다 혼나기도 했다. 우기 씨가 중간에서 통역할 수밖에 없었다.

우기 씨는 결혼 전 청혼 이벤트 같은 걸 하지 않았다. 당시는 그런 것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 그 못지않은 선물을 아내에게 했다.

나우누리에서 '영화 접속과 같은 만남 콘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우기 씨가 사연을 보내 1등 영예를 안았다. 그 덕에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지금 둘 사이에는 중2 아들이 있다. 아빠·엄마 연애담에 나오는 PC통신·삐삐·시티폰 같은 걸 선뜻 이해 못한다. 부부는 '그땐 그랬지'라며 그냥 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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