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만 매립, 그 20년 간의 기록]가포신항 착공 사라진 바다와 주민

마산에서 택시기사들에게 '가포의 기억'을 물었다.

대부분 "캬∼가포" 하고 시작했다. 소주 첫 잔 마셨을 때처럼.

"가포 하면 '유원지'아임미꺼. 가포유원지 하면 또 '연애' 아임미꺼. 유원지나 가게마다 단체손님보다 연인들이 많았지예.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횟집은 나중에 많이 생겼고 본래는 카페나 커피숍이 안 많았슴미꺼."

50대가 넘어보이는 기사들마다 연애담이 술술 풀려나온다. 가끔은 '19금' 수준이다.

"송정여관하고 가포여인숙이 안 있었슴니꺼. 저녁에 7시도 안돼서 버스가 끊기삔께네 그거 노리고 ㅋㅋㅋ."

매립공사 직전의 가포유원지. /연합뉴스 DB

◇사라진 가포바다

연인을 유혹한 미끼는 뭐였을까.

"뽀드(보트)하고 카페 아임미꺼. 가포바다가 워낙 잔잔한께네, 이건 뭐 한강물에 배 띄워 노는기지. 살랑살랑~. 그라고 카페가서 한 잔 하는 기지."

가포해수욕장이 사라진 1980년대 이후 가포 바다의 명물은 '뽀드'였다.

명물은 또 있었다.

"가포해수욕장 다이빙대 모릅니꺼? 거서 내 친구가 맨날 안 띠내릿심미꺼. 와그랬는줄 암미꺼?"

알 리가 없다. 택시기사 모 씨가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한참을 잠수하는기라예. 그라고는 안경도 쭈 오고 수경도 쭈 오고, 큼지막한 소라까지 안 쭈오는 기 없었다니까예."

웬 다이빙대 이야기? 그런데 가포의 추억을 말하는 중년들 중에서는 의외로 해수욕장 다이빙대를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4년 6월의 김옥준(69) 씨는 여전히 마산만을 35년 생업현장으로 삼고 있는 가포어촌계 회원이다.

"아이구 참내, 그기 보존운동까지 했는데 모르는가베?"

화제는 또 낚시로 이어졌다. 장소는 가포유원지 건너편 해안선 쪽.

"뽈락(볼락)에다 감시(감성돔)까지 안 잡혔슴미꺼. 와 그 해수욕장 건너편 해안선 있잖아예? 그리 들어가면 포인트가 많았지. 고등학생 때 진짜 마이 갔는데. 뭐 타고 갔냐고예? 신마산서 걸어갔다 아임미꺼. 슬렁슬렁 가면 금방이라예."

노는 이야기만 했나. 이번에는 가포에 놀러갔던 사람이 아닌, 살았던 주민 이야기를 들어보자.

30대였던 1970년대 초부터 가포동에서 어업과 보트 임대업을 한 김옥준(69) 씨.

"내가 서른둘 때 들어갔으니까 인자 40년 돼가네. 그때는 가포 들어가는 버스가 도라무통(드럼통) 껍데기로 만든 기였는데. 신마산에서 가포고개 가면 사람들이 버스에서 다 안 내릿슴미꺼. 그라고 버스가 고개에 올라서면 다시 타고."

"2005년 12월에 가포신항 착공하면서 시작된 바다 매립때매 가포동 4통이 통째로 안 사라졌슴미꺼. 무허가 상가하고 주택까지 전부 합치가꼬 50집 가까이 됐지예." "오데로 갔나고예? 전부 다 흩어짓지예 뭐. 한 집에 대여섯씩 쳐도 주민들이 300명은 넘었것네."

기억의 관점이 달랐다. 그는 사람들 생존의 터전이 사라졌다는 기억부터 말했다.

1994년 당시 가포유원지에서 보트 임대업을 하던 49세 때의 김옥준(왼쪽) 씨./김구연 기자

◇사라진 향수

김옥준 씨 회상이 계속됐다.

"가포동이 저 안쪽 본동부터 1통 2통, 그라고 지금 동사무소 앞길 경계로 왼쪽 3통 오른쪽 4통으로 나눠졌거든예. 또 가포고개 쪽 넘어오면 5통 6통이 있고예. 그런데 지금 장어집들 빼놓고는 4통이 몽땅 사라져삔기라예."

1994년 마산 가포유원지에서 보트놀이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 /김구연 기자 

사라진 것은 또 있었다. 어민들이었다.

어업을 했던 김옥준 씨는 "그때 가포어촌계에 포함됐던 집이 모두 50집이 넘었어요. 그중에 가포동 1통이나 2통, 5통쪽 일부 어민들 말고는 다 털고 일어났지."

"흔적예? 없심미더. 옛날 버스 종점 앞에 있던 공중변소는 지금도 남아있지예. 그라고 장어집 앞에 수로 안 있심미꺼? 그 수로가 매립지 따라 쭉 둘러쳐져 있는데, 지금은 그거 보고 아 옛날에 바다였구나 하는 거지예 뭐."

아니나 다를까. 최근 언론은 창원시내 읍·면·동별 인구 차이 문제를 보도하면서 가포동 예를 들었다. 주민 수가 8월 1일 현재 1501명으로 같은 창원시내 성산구 사파동 인구 5만 5960명보다 36배나 적다는 요지였다. 이에 대해 가포동 관계자는 "3000가구가 넘는 가포본동 보금자리주택 건축 때문에 많은 주민이 집을 옮겨 빠진 상태다. 분양과 입주가 완료되면 1만 명 이상의 인구유입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포바다 매립은 가포동 인구에 어떻게 작용했을까. 창원시 통계에 따르면 매립되기 직전인 2004년 12월 말 가포동 주민 수는 2241명으로, 정확히 10년 뒤 매립돼버린 가포동 주민보다 730명이 더 많았다.

그래선가. 옛 가포주민 박영주(53) 씨는 '사라진 향수'를 이야기했다. 이제는 장어구이집촌 등 일부만 남은 가포동 4통에서 10년 넘게 살았던 주민 박영주 씨.

"가포바다가 매립되면서 사라진 건 '향수'가 아닌가 해요. 바다매립으로 삶의 터전이 사라진 가포동 4통 주민들에게는 고향이 사라진 거죠. 옛날부터 가포동은 안쪽 본동하고 결핵병원 쪽 밤구미(율구미), 그리고 가포유원지 쪽 세 땀으로 이뤄졌죠. 밤구미는 일제 때 일본 지바현 어민들이 유입되면서 '지바무라'로 확대됐고 1940년대 결핵병원이 들어서면서 더 커졌죠. 유원지 쪽은 그 이후에 상가 위주로 형성됐고. 그중에서 옛 유원지 쪽 터전이 모습조차 없어졌으니 향수조차 사라진 거고."

"일요일 하루 휴식을 위해 가포를 찾았던 마산시민들에게도 즐거웠던 공간이 사라졌습니다. 시민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공원이었거든요. 60~70년대는 해수욕장의 모습을 했고, 80~90년대는 보트장을 포함해 가포유원지의 모습을 했던 공원. 그런 놀이공간이 일시에 없어져버린 것도 향수가 사라진 것이라고 봐요."

밤구미 끝 '이심리끝발(이심이곶의 끝이라는 의미)'에서 1990년대 가포바다를 전망하며 살던 그 또한 팍팍한 매립지를 더 볼 수 없어 2009년 가포와 작별했다.

◇마산항 개발의 첫 삽

가포지구 주민들에 대한 보상 현황을 보면 신항공사 이전 가포지역 어민들 규모가 드러난다.

마산항 개발사업 어업보상업무 위수탁은 마산아이포트(주)-해양수산부-옛 마산시 간. 2004년 6월 실시협약은 해양수산부와 마산아이포트(주)가 체결했다. 협약서 제14조에 토지, 물건 및 어업권 등의 보상은 정부의 부담으로 한다고 명시됐다. 2005년 1월 해양수산부와 옛 마산시 간 어업보상 위수탁협약 체결로 보상업무는 마산시가 맡았다.

창원시 해양사업과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지급된 보상액만 172억여 원. 이 중에는 인근 해운동 서항지구 보상액이 일부 포함됐다.

보상 내역을 보면 가포동 4통 내 철거지역 분포를 이해할 수 있다. 지장물 보상이 모두 72건에 66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간접피해를 포함한 영업피해가 78건에 39억 원, 토지 보상이 1만76㎡(12필지)에 34억 원 등이었다.

또 가포어촌계에 대한 마산항 개발 어업보상금 집행현황은 모두 56건에 24억 원. 가포어촌계를 포함한 마산만 일대 16개 어촌계에는 취소보상 348건에 219억 원, 제한보상 1148건에 267억 원이 보상됐다.

2013년 6월 준공된 가포신항. /연합뉴스 DB

보상 추진현황 앞에는 2005년 12월 착공 직전 최종 확정됐던 마산항개발 1-1단계사업 개요가 나왔다.

'위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동 전면 공유수면 일원. 사업량은 부두 5선석(컨테이너 2, 다목적 2, 관리 1)과 야적장 등 40만6253㎡(12만2891평). 여기에 정부투자분(배후도로, 준설, 보상)이 포함됐다. 사업기간은 2005.12.27∼2012.12.26. 실제 가포신항은 2013년 6월 완공됐다. 예정 사업비는 3677억 8600만원(사업비 3091억 6400만 원, 보상비 587억 1200만 원). 사업시행자는 마산아이포트(주)'로 설명됐다.

이로써 '율구만'이라는 고유 지명을 가진 가포 바다 매립공사가 시작됐다. 매립된 정확한 면적은 39만 7880㎡(12만 359평). 이는 해양수산부가 2004년 11월에 발표한 고시 제2004-70호에 따른 것이다.

1994년 마산항개발 기본계획에 따라 최초 입안되고, 1999년 정부가 민간투자사업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된 마산항 개발사업이 실제로 첫 삽을 뜬 것이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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