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만 매립, 그 20년 간의 기록] (9) 태풍 매미 피해 속 해양신도시 확정

'바닷물이 역류하면서 서항부두에 적재돼 있던 수입원목이 떠밀려 해안도로와 경남대를 잇는 간선도로는 물론 댓거리·상가 주변도로·주택가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시내버스조차 널브러진 원목 때문에 통행에 불편을 겪었고, 때마침 전기까지 끊기면서 이 일대는 온통 암흑천지로 변해버렸다. 상가 간판은 강풍에 맥없이 떨어져 이리저리 나뒹굴고 깨진 유리파편은 폭풍속의 모래알처럼 흩날렸다. 이 일대 아파트와 상가·병원 등 대부분의 건물지하는 온통 물바다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차량들은 손쓸 겨를도 없이 수장됐고 간혹 지상으로 끌어올려놓은 차량도 한길이나 되는 물속에 잠겼다. 그 와중에 노래방이 있던 해운동의 한 상가 지하는 순식간에 물이 차면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3년 9월 12일 밤 마산만 일대 태풍 매미 피해 현장을 담았던 경남도민일보 기사 중 일부다.

◇매립이 태풍 침수 불렀다

당시 마산기상대는 태풍이 가장 극심했던 12일 오후 9시 53분께 만조가 이루어지고, 10시를 전후해 초속 54m 이상의 태풍이 상륙하면서 두 현상이 충돌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로 인해 10시를 전후한 마산만 해안의 파고가 2m를 넘었다. 밤 9시41분께 기록했던 풍속 33.8m는 마산기상대가 관측을 시작한 1986년 이후 최고였다.

문제는 마산만의 대부분 침수피해 지역이 예전에는 바다였으나, 그동안 신·구항 매립계획에 따라 매립된 지역이라는 점이다.

2003년 태풍 매미 당시 서항부두에 적재돼 있던 원목이 떠밀려 도로를 점령했다. /김구연 기자

'매립지이기 때문에 침수피해가 컸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국립 해양조사원 해양과 허룡 연구원은 "같은 만 지역이라도 수면적이 좁은 지역은 파고의 고저 차이에 더욱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매립으로 인해 마산만의 수면적이 현저하게 줄어든 점은 태풍 때 생길 수 있는 상당한 높이의 파도나 해일 현상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론도 있었다. 당시 마산기상대 최우영 예보사는 "만조와 겹친 태풍으로 침수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지형적 요인과 태풍 자체의 위력, 만조시각이 겹친 점 등 3박자가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마창환경운동연합 등은 피해 크기와 유형에 주목했다. '마산시 월영동·해운동 등 80년대 이전 매립했던 서항 지역에는 건물지하의 침수로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동서동·신포동 등 옛 구항을 매립해 그만큼 어시장이 확대된 지역에도 광범위한 침수피해가 나타났다. 바닷물이 들어온 지역은 지난 100년간 진행되었던 마산만 매립지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마창환경운동연합은 그해 '과제로 남은 2003년 뉴스'를 통해 "태풍 매미가 마산만 매립지를 강타했는데도, 반성 없는 마산시는 오히려 이를 매립정책의 논리로 악용하고 있다. 마산만 매립과 난개발을 반성하기는커녕 마산시는 여전히 가포와 서항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태풍 매미 당시 침수된 차량들.
태풍 매미 당시 바닷물이 가득 찬 지하주차장 에서 수색하는 모습. /김구연 기자

◇태풍과 만조가 겹친 탓이다

마산시는 대한토목학회 부산·울산·경남지회에 의뢰한 '태풍 매미 해일피해 원인조사 및 재해방재대책' 결과를 다음해 8월 내놨다. 우선 태풍피해와 매립의 영향관계에 대해서는 '매립으로 인한 조위 상승의 효과를 검토한 결과 부진동 등 기타 영향을 제외한 순수한 조석에 의한 수면 상승은 불과 3~5㎝ 내외로 변화가 크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해일고에 대한 매립의 영향은 수 ㎝에 불과하며, 매립 전 수심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해도 매립이 해일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산시에서의 극심한 해수면 상승은 ①바람에 의한 파랑과 취송류, ②조석에 의해 마산만 쪽으로 향한 밀물의 창조류, ③그리고 폭풍해일로 인해 마산만 폐쇄수역으로 밀려온 해수의 충적효과가 거의 동시에 복합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사료됨. …해일모형의 모의결과에서 나타난 것으로 사료됨'(부호 ① 등은 편의상 붙임)으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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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내린 해일방재 대책은 특히 주목됐다. '마산시는 해안에 인구와 도시기능이 밀집되어 해일피해에 구조적으로-구조물을 설치하는 방법- 대처하지 않으면 안되며…콘크리트 파라펫이나 직립호안과 같이 친수성을 저해하는 방법은 곤란하다. 즉 선적방어보다는 면적방어개념을 도입해야 한다…현재 마산시는 해안매립에 의한 신도시 건설과 친수성 인공둔덕인 매미언덕 조성을 계획 중에 있다. 도시가 해안저지대에 밀집돼 있는 상황에서 월류나 월파에 의한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자연적 해안사구의 역할을 하는 인공둔덕을 조성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해일방재대책공법의 하나이며…'

이 대책은 10년이 지난 지금 두 가지 현실로 나타났다. 해양신도시 매립과 마산어시장 앞 방재언덕 조성이 그것이다. 당시에 참여한 연구진이 책자 앞부분에 공개됐다.

◇매립해서 태풍 침수 막자

마산시는 결과적으로 태풍피해 대책을 서항·가포지구 매립정책 논리로 활용했다. 그 근거가 1993년 12월 4일 마산시 서항·가포지구 개발방안 타당성조사 중간보고였다. 그해 9월부터 타당성조사를 벌여 온 (주)서영기술단은 이날 보고에서 서항·가포지구 매립에 따른 매립지 55만4000평과 현재 국립마산병원과 MBC송신탑·시민버스 등이 위치한 가포B지구 25만 평 등 총 80만4000평의 개발 예정지를 대상으로 신도시 개발계획을 밝혔다. 마산시의 도시개발 용지 확보 야심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전체적 개발방향을 지역개발 축에 순응한 도시공간 창출과 경쟁력 있는 부도심개발 등으로 제시한 서영기술단은 방재 기능의 친수공간 확보를 그 다음 순위로 배치했다. 서항매립지의 용도는 행정·상업·주거용지와 국제업무·방재형 친수공간 등으로 잡았다. 또 가포B지구는 친환경적 단독주택지구로, 율구만 매립지는 항만물류와 공공업무지원·일부 공동주택지역 등으로 제안했다.

이는 결국 해수부-마산시 간의 서항·가포지구 개발협약으로 연결됐다. 해양신도시 사업을 확정한 것이다. 2004년 1월 1일자 경남도민일보 관련 기사다.

'마산시는 2003년 12월 30일 오후 해양수산부 장승우 장관이 시가 제출한 협약서에 서명하는 형식으로 협약이 체결됐으며 시는 이날 밤 늦게 체결된 협약서를 받았다고 31일 밝혔다.

이는 서항지구 42만4000평과 율구만 13만평 등 55만4000평의 공유수면 매립을 해양수산부가 허용한 것으로, 해당된 터를 신도시 도시용지로 개발하려는 시의 계획이 잠정적 여건을 확보한 셈이다. 대규모 매립을 뜻하는 서항개발 계획의 확정 전에 매립지와 태풍연관관계의 규명과 마산항 경제성검토 선행 등을 요구해온 시민단체의 강행반대 의견은 수렴된 부분이 전혀 없어 개발을 둘러싼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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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 매미 해일피해 원인조사 및 재해방재대책을 연구한 연구진.

협약의 정식 명칭은 '마산항개발 민간투자사업관련 서항·가포지구 개발계획에 관한 협약서'로, 사업내용과 매립지소유권·토지이용계획·개발사업의 중단 등 경과조치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도시연대 등 시민단체의 강행반대 이유였던 항만경제성 검토에 대해 해양수산부 민자계획과 권준영 계장은 "별도의 경제성검토를 하지 않기로 했다. 마산항 사업비 4040억 원 중 1800억 원의 국비가 지원되는 만큼 경제성이 인정된 것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반대입장을 펴 왔던 도시연대 허정도 운영위원은 "항만경제성 검토와 같은 마산항 강행반대 입장을 논의하겠다던 해양수산부와 마산시가 여론이 모아질 수 없는 한해 마지막 날에 협약체결 사실을 발표한 것은 정당한 공무수행 태도로 보기 어렵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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