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환경은 물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감각이 너무나 다른 상황"에 직면하면 소위 '멘탈 붕괴'를 겪게 된다. 17세기에서 21세기로 시간여행을 한 것도 아니고, 출입처를 옮기면서 창원에서 서울까지 단 3시간 만에 '순간 이동'을 했을 뿐인데 나에게는 약간의 멘붕 기미가 찾아왔다.

그래서 '서울은 어떤 곳인가?'라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좀 모자란 의문을 품게 됐고, 지인의 소개로 <서울은 깊다>(돌베개)라는 책을 손에 들게 됐다.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근·현대사를 전공한 전우용 교수가 쓴 것으로, 역사뿐 아니라 대중문화, 건축, 공간, 시사 등을 종횡으로 넘나들고 있었다.

서울이 근대도시로 성장하는 모습을 찬찬히 살피면서 '서울 사람'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서울'에 대한 깊이 있는 소개서를 읽는 느낌이었는데, 여행안내서 등의 소개서가 품고 있는 특유의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10년 넘게 '서울학'을 연구해온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서 '서울 중심적 시각'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인 듯싶다.

아무리 지역 분권을 목놓아 외치더라도 '서울 중심적 시각의 기름기'가 남아있기 마련인데, <서울은 깊다>에서는 그 기름기가 쏙 빠져 있었다고나 할까?

더욱이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발현되는 창의성마저도 거침없이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공간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이 저변에 깔려있었다. 급기야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이런 상황인데도 왜 지방 사람은 민란을 일으키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표출되고 있었다. 물론 이 역시 현실성이 없는 서울중심적 시각의 과격함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정해져 있는 틀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뿌리깊은 서울 중심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정치의 현실성은 인정해야겠지만, '정해진 틀' 속에서 대형 개발사업에 대한 건의사항만 난무한 대통령과 시·도지사 간담회는 그래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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