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74) 거창 덕원농원 허광우 대표

'3분 복숭아를 아시나요?'

거창 덕원농원 복숭아 이야기다. 블로그에 판매 글을 올리자마자 3분 만에 동나 '3분 복숭아'란 별칭이 붙었다. 덕원농원에서 생산되는 복숭아는 '그 집 과일'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전량 블로그를 통해 판매된다.

대부분 농민이 판로 걱정에 시름하지만, 덕원농원은 넘쳐나는 주문에 물량을 대지 못해 발송을 걱정한다.

◇부농 꿈꾸는 2세 농업인 = 복숭아와 사과를 주 작목으로 하는 덕원농원 허광우(29) 대표는 20대 젊은 '2세 영농인'이다. 이 농원은 아버지 허병주(58) 씨가 25년가량 일군 곳이다. 비록 아들 광우 씨가 '대표'라지만, 아직 아버지는 '거창 산천수 복숭아 작목반' 회장을 맡고 있는 '팔팔한 현역 농민'이다.

군대 가기 전만 해도 허 대표는 농사를 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모님 농장 일을 돕긴 했지만, 경남대 건축학과에 다니던 건축학도였다. 그런데 건축일이 적성에 안 맞았다.

"군대에 있으면서 농촌에 일손이 바쁜 시기가 되면 걱정이 되는 겁니다. 태풍이 와도 걱정되고, 복숭아 딸 때가 돼도 걱정이 되고…. 제대해서 부모님과 마음을 맞춰 같이 농사를 지으니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허 대표는 천안 연암대 축산과로 진로를 틀었다. 그 후 농민후계자가 돼 자금을 지원받아 축사를 지었다.

"낮에는 복숭아 밭에서 작업하고 저녁에는 축사에 갑니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는 것보다 마음도 편하고, 시간 여유도 있어서 좋습니다."

오랜 세월 관행 농업을 해온 부모 세대와 새로운 기술을 익힌 젊은 세대 간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허 대표는 '이해'로 갈등을 피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경험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

그런 한편으로는 올해 거창사과대학에 입학해 신기술 습득에도 열심이다.

◇블로그 인기 상품 '3분 복숭아' = 농사를 아무리 잘 지어도 공판장에 내놓는 순간 '높은 가격'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허 대표는 인터넷 판매에 눈을 돌렸다. 과수원 일에 축사 일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인터넷까지 엄두를 못 내는 허 대표를 위해 서울에 살고 있는 누나가 나섰다.

누나 연우(30) 씨는 블로그 '허여누와 돼지'(http://good_glam.blog.me/)를 만들어 부모님과 동생이 수확한 복숭아와 사과를 2년 전부터 판매하고 있다.

이 블로그는 농산물 판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연우 씨는 블로그에서 일상생활 등 여러 이야기로 누리꾼들과 소통하고 있다. 소통 공간 중 하나가 '그 집 과일' 코너이다.

'그 집 과일'의 '그 집 복숭아'는 입소문을 타고 없어서 못 팔 지경.

이달 초 일찍 수확된 50상자를 한정주문 받았는데 3분 만에 동났다. 지난 21일부터 다시 수확하며 이날 오전 11시 판매 글을 올렸는데, 하루 만에 400상자 주문이 들어왔다. 결국 며칠을 수확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문이 넘쳐나 이틀 만에 '품절' 공지하고 주문을 받지 않고 있다.

거창 덕원농원 허광우 대표가 수확한 복숭아와 농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원정 기자

◇인기 비결은 맛과 신뢰 = 사실 복숭아는 인터넷 구매가 여의치 않은 품목이다. 잘 물러지는 특성 때문에 택배를 보내면 갓 딴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 집 복숭아'는 고객들이 '공지글 알람' 설정까지 해놓고 판매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

허 대표는 그 비결로 '맛'을 꼽았다.

"축사에서 나오는 거름을 발효시켜 밭에 많이 줍니다. 그러면 당도가 높아져요. 다른 과수원 복숭아보다 당도가 훨씬 좋으니까 구매한 사람들 중 항의나 반품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거름을 무조건 주는 것은 아니다. 거창군 농업기술센터에 정기적으로 토양 검사를 의뢰해서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해준다.

블로그 운영에도 비결이 있다.

"고객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아침에 과수원에서 수확할 복숭아를 직접 사진으로 찍어 누나한테 보내면 누나가 블로그에 올립니다. 오늘은 이 정도 크기의 어떤 품종 복숭아가 수확된다고 알리는 거죠. 또 배송 과정에서 물러질 수도 있다고 미리 알립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판매하니까 고객들의 불만이 없습니다."

또 하나 블로그 판매의 비결로 1년 내내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보통의 농민 사이트는 특정 농산물이 생산되는 한철만 운영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사이트를 잊게 되죠. 그런데 우리는 복숭아가 끝나고 나면 사과가 나옵니다. 사과는 냉동창고에 보관하며 다음해 6월경까지 판매합니다. 그리고 사과즙과 양파즙도 판매하니까 1년 내내 상품이 끊일 날이 거의 없습니다. 계속 '그 집 과일' 마크가 소비자에게 기억되는 거죠."

◇복숭아를 거창 명품 농산물로 = 덕원농원은 복숭아 1만 6500㎡(5000평) 1000그루와 사과 3만 3000㎡(1만 평) 4000그루를 키운다. 연간 매출은 2억 원.

복숭아는 아직 어린나무가 많아 이들 나무가 자라는 3~4년 후에는 수확량이 급격히 늘어나 소득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복숭아는 백도 계열의 장택·대봉황·흰둥이와 황도 계열의 천중도·앨버트 품종을 키워 수확 시기를 분산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작았던 복숭아가 다음날 크고 빨갛게 익은 것을 보면 흐뭇합니다. 대신 복숭아는 매일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듭니다. 사과 솎기나 복숭아 솎기도 해줘야 하는데 요즘은 농촌에 일손이 귀해서 걱정입니다."

거창은 복숭아보다는 사과가 더 유명하다. 거창군은 사과테마파크를 만드는 등 사과를 주력 품목으로 지원하고 있다.

복숭아를 재배하는 사람은 남상면을 중심으로 20농가가량. 남상면 지역은 해발이 높지 않고 일교차가 크지 않아 복숭아를 재배하기 좋은 여건이라고 한다.

"FTA 지원 사업도 거창은 사과 농가를 대상으로 합니다. 복숭아는 지원이 없습니다. 사과는 현대화 시설을 지원하지만, 복숭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태풍이 오면 사과 낙과는 농협에서 받아주지만 복숭아는 방법이 없습니다. 복숭아도 사과만큼 거창의 명품 농산물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자 브랜드 만들고파 =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자랑하면서도 "내가 바라는 것에서 60~70% 정도 농사꾼이 됐다. 앞으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절대 욕심을 부리지 마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나씩 차근차근 이뤄나가야지, 욕심을 내게 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아버지도 아들도 꿈이 있다.

현재 덕원농원 복숭아는 '거창 산천수 복숭아 작목반' 포장지에 담겨 나가지만, 언젠가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아들의 꿈이다.

또 직접 접을 붙여 품종 개량을 하려는 계획도 품고 있다.

아버지는 거창 복숭아를 명품화해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 지역 복숭아 농가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희망이다. 관수시설과 지주목 등을 지원받을 수 있으면 농민의 허리는 한층 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농원에 체험시설을 만들어 6차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꿈을 아버지와 아들은 꾸고 있다.

<추천 이유>

◇강기학 경남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과수전문가 = 허광우 덕원농원 대표는 약 5만㎡ 규모에 사과와 복숭아를 주축으로 유기질 비료를 많이 활용하여 고품질 생산물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젊은 4-H 출신 강소농입니다. 4년 차 4-H 생활로 다져진 생활신조로 거창군농업기술센터와 경상남도농업기술원의 재배기술을 지원받아 매년 소득이 증가되는 진정한 영농주입니다. 앞으로 복숭아 재배에 주력하여 농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지역 실정에 맞는 신기술을 연구하면서 이웃 농가에 기술을 파급할 진정한 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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