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부터 보상·지원법 시행 "명확한 기준없이 범위 설정" 오히려 주민 갈등 깊어질 듯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보상과 지원법률(이하 송주법)이 29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송전탑이나 변전소 건설에 따른 주민피해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는 셈이다.

송주법은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밀양 송전탑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갈등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다. 밀양이나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삶의 터전을 지키고 싶을 뿐이라고 한다.

또한 송주법은 송·변전시설 건설에 따른 기본적인 보상 근거는 되지만 형평성 문제뿐만 아니라 완전한 보상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간접 재산보상 근거 = 송주법 핵심내용은 △재산적 보상 △주택 매수 △주변지역 지원사업 등이다.

송전선로 건설로 땅 가치하락에 대한 직접보상, 인근 주택 소유자는 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 또 간접보상인 주변지역 지원은 전기요금 보조 등 주민지원, 편의시설·주택개량 등 주민복지, 공동기업·생산물저장판매시설 등 소득증대, 장학금 등 육영사업 등이다.

보상·지원 대상범위는 규모별로 다르다. 밀양 같은 765㎸ 송전선로는 좌우 △재산적 보상 33m △주택 매수 180m △지역지원사업 1㎞ 이내로 한정됐다. 또 청도 같은 345㎸ 선로는 각각 13m, 60m, 700m 이내이다. 땅 가치하락에 따른 재산적 보상 범위가 이전(3m)보다는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154㎸ 송전선로는 보상·지원 대상이 아니다.

땅 가치하락에 따른 재산적 보상금액은 편입토지 감정가격의 28% 이내에서 영향 정도를 고려해 감정평가업자 2명의 평균으로 정해진다. 주택 매수가격은 송전선로 건설계획 승인 전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지가변동률을 종합하게 되는데 주거이전비와 이사비도 더해진다.

지역지원사업은 매년 이뤄진다. 정부는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보상과 지원에 연평균 2000억 원이 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재원은 한국전력과 발전회사 등 사업자가 부담하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지원제도가 시행됨으로써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한 기반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히려 갈등 확대 우려 = 송주법은 제정 과정에서부터 논란과 반대가 있었다.

송전탑을 반대하는 전국 곳곳 주민들의 연대체인 전국송전탑반대네크워크는 지난해 9월 '송주법, 송전탑 갈등의 대안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갈등을 풀기보다 더 확대할 것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밀양에서 봤듯이 보상과정에서 마을공동체는 무너지고 주민 간 골만 깊어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송주법은 기존 송전선이 지나는 지역에 대한 객관적 조사·분석 없이 마련된 졸속 법안"이라며 "앞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분쟁에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보상이 아닐뿐더러 이미 건설된 송전선로는 제외돼 형평성 문제도 있다. 송주법에 따른 재산적 보상과 주택 매수 대상은 송전선로 완공 후 2년을 넘지 않은 주변지역이다. 하 위원장은 "헌법의 '정당한 보상 원칙',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신훈민 변호사도 "송주법에서 피해지역이 지나치게 협소하게 설정됐고, 154㎸ 송전선로 지역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영농 손실 등에 대한 보상방안도 없는 등 명확한 근거없이 보상·지원범위가 정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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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밀양 상동면 고 유한숙(74) 씨는 자신의 돼지축사가 매수지역에 속하지 않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돼지축사에서 송전선로까지 거리는 350m였다. 한전이 파악한 765㎸ 송전선로 밀양구간 주택 매수 대상은 30가구 정도다. 180m를 벗어난 주택은 그대로 살아야 한다.

◇제대로 된 보상체계 필요 = 이 같은 송주법의 한계와 문제점은 입법과정에서도 제기됐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위 법안심사 때 조경태(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송전탑이 보이는 지역에서는 부동산 거래가 끊기는데 정확한 보상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 직접보상 33m도 실제 피해를 상쇄하기 태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김제남(정의당) 의원은 전자파에 대한 피해대책 등 주민 생명·건강·재산권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들은 법적 대응과 제도개선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밀양 765㎸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는 송주법 보상 제외 주민들의 보상금 청구와 위헌소송을 준비 중이다.

대책위 정상규 변호사는 "직접보상, 간접보상 범위 외 지역의 피해에 대해 포괄적으로 한전에 보상금 청구를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할 계획"이라며 "재산권이 제한되고 완전한 보상이 안 되는 송주법 문제점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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