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따라 내 맘대로 여행] (25) 전북 무주구천동 계곡

어찌 이리 맑을까. 분명히 사람 손을 탔을 것인데 이곳은 마치 그런 적이 없다는 듯 속내를 훤히 보이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를 흐르는 땀과 습한 공기가 만들어내는 후텁지근함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덕유산국립공원을 품은 전북 무주군 설천면에 자리한 무주 구천동 계곡.

국립공원 북쪽 70리에 걸쳐 흐르는 이 계곡은 입구인 나제통문(신라와 백제의 경계관문)을 비롯해 은구암, 와룡담, 학소대, 수심대, 구천 폭포, 연화 폭포 등 구천동 33경의 명소들이 계곡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너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완만한 산행길을 오른다. 유명한 곳이 그러하듯 계곡으로 오르는 길에는 식당과 장사치가 곳곳에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무주구천동 33경 중 15경인 월하탄 계곡. '월하탄'은 선녀들이 달빛 아래 춤을 추며 내려오듯 폭포수가 쏟아져 푸른 소(沼)를 이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최규정 기자

그것도 잠시, 시원한 물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잔뜩 수분을 머금어 찜찜하기만 했던 공기가 어느새 기분 좋은 촉촉함으로 변해 피부에 와 닿는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 오기 시작한다. 무겁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던 발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이쯤에서 선택하면 된다. 국립공원 자연 속으로 산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계곡 쪽으로 방향을 틀어 물놀이를 즐길 것인가.

곧바로 계곡에 첨벙 들어가려던 계획을 잠시 변경했다. 33경을 다 구경하진 못하더라도 20분 남짓 오르면 만날 수 있는 무주구천동 33경 중 15경인 월하탄을 보기로 했다.

삼공탐방지원센터에서 백련사 방면으로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경쾌했던 물소리가 장쾌하게 바뀌면서 월하탄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월하탄(月下灘)은 선녀들이 달빛 아래 춤을 추며 내려오듯 폭포수가 기암을 타고 쏟아져 내려 푸른 소(沼)를 이룬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곳이다.

잔잔하게 흘러온 계곡물이 낙수가 되어 기운차게 내려앉는다. 계곡물이 기암괴석을 타고 여덟 줄기로 떨어진다. 이곳의 암석단애는 높이 7m, 폭 50m, 경사 60도의 수직절리가 동서 방향으로 발달한 기반암이다. 비록 흥행에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지난 2011년 개봉한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올리기>에서 영화의 대미를 장식했던 곳이 바로 월하탄 계곡이다.

자연보호와 등반객의 안전을 위해 가까이 가는 것은 허하지 않는다. 다만 안내판이 보이고 전망대에 몸을 기대 쉼 없이 가열하게 쏟아지는 월하탄의 물줄기를 바라볼 수 있다. 힘찬 기운이 충분히 느껴진다. 소리와 물 기운만으로도 에너지를 충전 받는 기분이다.

무주구천동 계곡. /최규정 기자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물놀이하고 싶다는 아이의 성화에 못 견뎌 올라왔던 길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는 적당한 계단을 찾아 내려가면 된다.

잔잔히 흐르던 물은 약간의 경사를 만나 하얀 물보라를 만들어 낸다. 고요하듯 잔잔한 물은 순식간에 굉장한 소리와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또다시 경사를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흐르는 듯 멈춘 듯 평화로움을 되찾는다.

차디차다. 맑디맑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눈이 시릴 정도로 반짝이는 계곡물은 내려앉은 햇볕이 무색할 만큼 차디찬 기운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발만 담갔을 뿐인데 뒷목이 서늘할 정도로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맑은 물에 물고기가 산다. 눈을 부릅뜨고 보아야만 보일 듯한 물고기들이 날랜 몸짓으로 이리저리 헤엄을 치고 그 뒤를 아이들이 열심히 쫓아간다.

아이가 들어가도 무릎을 채 넘기지 않는 맑은 물이라 어른들은 아이들을 눈으로 좇으며 초록 향기가 무성한 숲 속에서 신선놀음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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