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쌀 시장 개방…분노하는 농민

지난 18일 정부는 '쌀 관세화', 그러니까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선언했다. 올해 말까지 국내 법령 개정 등 절차를 거친 후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 발표 직후 창녕군 도천면 일리 들녘에 사람들이 모였다. 한 농민이 자신의 논 2015㎡(600여 평)를 갈아엎었다. 젊은 농민 김창수(43·창녕군 도천면) 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벼농사 과정 하나하나가 갓난아이 키우는 것과 다름없는데, 그걸 갈아엎는 심정을 농민 아닌 이들은 알기나 할까….'

그는 쌀 시장 개방이 이어진 그간의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만 얻었다.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더 늦출 수 없는 큰 이유로 '의무수입물량 확대 부담'을 들고 있다.

"정말 화가 나는 건 정부가 사실을 호도한다는 겁니다. 정부는 의무수입물량 확대 이야기를 할 때 필리핀 사례를 꺼냅니다. 얼마 전 농민단체 토론회에 오신 필리핀 분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사례와는 달랐습니다. 필리핀은 쌀 자급률이 70%밖에 안 되기에 자기들 필요 때문에 수입을 늘리는 거였습니다."

젊은 농민 김창수 씨.

정부 발표 이후 '국내 쌀 보호 장치'로 '관세율'이 언급된다. 현재 80㎏ 기준 가격은 국내 쌀 17만∼18만 원, 미국 쌀 6만∼7만 원 수준이다. 예를 들어 관세 300%를 매기면 미국 쌀 가격은 18만∼21만 원이 된다. 그러면 가격 경쟁이 된다는 이야기다.

"제가 생각하기에 관세율이 최소 300%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단언컨대 그 이하로 떨어지면 벼농사 짓고 살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 농민단체는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건 관세율 300% 이상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정부에서도 '관세율 300∼500%'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우리끼리 김칫국 마시는 겁니다. 우리끼리 관세 300∼500% 이야기 백날 해봐야 상대 국가가 안 받아주면 아무 소용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 농민들은 법적·제도적 장치를 우선 만들어 놓자는 것이었는데, 정부는 안 받아들였습니다. '믿어달라', 오직 그것밖에 없어요."

정부는 농업 보호를 위한 방향을 제시했지만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나도 기대 안 해요. 예전에 국내 농업에 몇십조 투자한다고 해서 들여다봤죠. 기도 안 차요. 매해 고정 예산을 10년 정도 합친 것일 뿐인데, 마치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처럼 부풀리더군요."

김창수 씨는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농민이 됐다. 농과대학을 나와 고향 땅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20년이 흐른 현재, 그는 어머니·아내와 함께 2만 7768㎡(8400평) 땅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그런데 '쌀 시장 전면 개방' 현실은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그는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농민 길에 들어섰다. '젊은 사람들이 꺼리는 걸 제대로 하면 오히려 성공할 수 있다'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농과대학을 나와 고향 땅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20년이 흐른 현재, 그는 어머니·아내와 함께 2만 7768㎡(8400평) 땅에서 벼농사를 짓는다.

지난해 손에 쥔 돈은 1000만 원이 채 안 된다. 수확한 것 가운데 양식으로 쓸 것을 제외하고, 내다팔아 통장에 들어온 돈은 1800만 원이다. 투자 비용은 3.3㎡(1평)당 1000원으로 잡아도 840만 원이다. 여기에 토지 임차료까지 빼면 순이익은 몇백만 원으로 떨어진다. 그나마 이모작 마늘 농사로 근근이 버틴다.

그는 고2 딸, 중3인 아들이 있다. 벌써 대학 학비 걱정이 크다. 부채도 늘고 있다. 그래도 20년 전 시작 때 마음으로 끝까지 농촌 땅을 지킨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쌀 시장 전면 개방' 현실은 그의 머릿속을 다시 복잡하게 하고 있다.

/남석형 기자 nam@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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