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의 미래를 찾아] (7) 창원의 혁신이 시작된다

창원시 의창구 봉곡중앙어린이공원 들머리에는 어른 키를 넘는 커다란 비석이 서 있다. '아득한 세월 장복산 서기가 감돌아 맺힌 복된 터전에 할아버지의 할아버님께서 일구고 가꾸어 온 곳, 동뫼마을 연덕리(淵德里)다.

마을의 젖줄 남천 옥수(南川 玉水)에 살찐 아이들은 밤하늘 별을 헤며 해묵은 전설을 먹고 자랐다. 반세기를 넘긴 초등학교가 있었고 우체국, 동사무소가 자리했던 웅남의 중심마을이었다.' 2005년 12월 세워진 연덕마을 정착비다. 그 옆에는 연덕향우회, 대한노인회 창원시지회 연덕분회가 있다. 창원 산업단지 조성으로 옛 연덕마을 주민 200여 가구가 1983년부터 3년간 옮겨와 봉곡동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 같은 비석은 창원 곳곳에 모두 54기가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세워지는 10기 정도를 보태면 60여 기다. 이는 옛 창원군 3개 면(창원면·상남면·웅남면) 출신 원주민이 꾸린 단체인 '삼원회'가 주도해 만들었다.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과거 행적이나 전통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홍창오(78) 씨는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목격한 세대다. 삼원회 창립 멤버이기도 한 그는 창원역사문화바로세우기 시민모임 대표, 대한노인회 명곡동분회장을 맡고 있다.

전 창원시의원 홍창오 씨./박일호 기자

홍 씨는 태어나고 자란 옛 창원군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고, 옛 창원시의회 초대 산업건설위원장도 지냈다. 이렇다 보니 창원산단 추진과 관련한 내용을 훤히 알고 있다. 1973년 창원 산업기지 조성과 창원면·상남면·웅남면 마산시 편입부터 76년 창원지구 출장소 설치, 80년 창원시 승격, 95년 창원시와 창원군 도농통합까지. 몇 년 몇 월 며칠에 무엇이 추진됐는지, 법률 또는 조례, 고시 몇 호에 따라 일이 진행됐는지 그 과정을 A4용지 한 장에 상세히 메모해와 설명해줬다.

"77년 건설부 고시로 인공도시인 창원시가 건설됐다. 당시 인구 30만 명 배후도시로 계획해 원주민과 산업단지 공장에 다니는 직원들이 살 수 있도록 했다. 호주 환경을 본떴다는데, 호주 주택가를 모방한 첫 장소가 대원동 단독주택가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옛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공단 일부는 염전이다가 갈대밭이 됐고, 갈대를 가지고 비 올 때 쓰던 삿갓이나 방안에 깔고 쓰던 자리와 빗자루 등을 만들기도 했다. 창원종합버스터미널 건너편은 봉암에서 들어온 배에서 어패류를 내리고 곡물이나 소금 등을 싣던 물류 유통 지역이었다." 산업단지 형성 과정이 순탄하지만 않았다. "공영개발이라는 이유로 땅은 강제매수됐다. 처음에 원주민은 평당 500원을 받았다. 웅남면 정리·목리는 집단 마을이 형성돼 있어 땅을 못 준다고 데모를 하고, 똥바가지를 뿌리고 해서 800~900원 보상을 받았다."

연덕마을 정착비. /이동욱 기자

홍 씨는 창원산단과 창원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도농통합 전에 재정 자립도는 100%였는데, 3개 시가 통합되고 39~40%로 떨어졌다. 예산 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건데, 걱정스럽다. 또 공장이 많지만 본사나 연구실 등은 서울에 있으니까 산업단지도 활기를 못 찾겠더라. 자꾸 퇴보하거나 소외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화려한 겉모습보다 내적으로 질 높은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국 사람들이 와서 창원을 보면 녹지 공간도 도로변에 많고 좋아 보이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생산성이 없다. 주민들이 집을 가지고 있어도 전세나 월세만 놓고, 규제에 묶여 전혀 생산적인 활동을 못하고 있다. 옛날엔 못 먹고 못 살아서 양이 많은 것을 좋아했는데, 이제 사람들은 질 높은 것을 찾는다. 창원 공단도 터가 너무 크다. 자꾸 공장 터만 닦으려 하지 말고, 사장된 땅을 많이 찾아 지역 형편에 맞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산단 활성화는 당연한 바람이다. "사람이 사는 자리에는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 주된 먹거리가 과거 농업 위주에서 기계 공단이 됐으니까 공단이 활성화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취업도 되고 도시가 잘살 수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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