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이강호·정경옥 부부

창원 사림동에 사는 이강호(56)·정경옥(52) 부부는 1983년에 결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줄어들기는커녕 커져만 간다. 지금도 사이클·수영 등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등 늘 붙어 다닌다. 처음 만났던 31년 전 그날을 기억해 본다. 엊그제 이야기처럼 여전히 또렷하다.

강호 씨는 첫눈에 반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경옥 씨는 그러한 남자가 무섭게만 느껴졌다.

(남편) "마산 오동동 선술집에서 한잔하는데, 옆 자리에 긴 생머리 여자가 앉아있는 거예요. 정말 예쁜 겁니다. 그래서 합석을 했지요. 제가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나와서는 그냥 집으로 가는 겁니다. 데이트 한번 하자니까 안 만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회사 앞으로 찾아갔지요."

(아내) "너무 겁이 났어요. 회사 앞까지 찾아와서 사람들 앞에서 '이 여자는 내 애인'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겁니다. 또 '안 만나주면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거예요. 무슨 불량배도 아니고…."

경옥 씨는 그렇게 회사 앞에서 끌려가다시피 첫 데이트에 나섰다. 벚꽃이 만개한 진해였다. 하지만 그 경치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풀어졌다.

(아내) "제가 장녀인데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 책임감이 무거웠죠. 이 사람도 비슷한 것 같았어요. 외로운 느낌 같은 게 전해졌죠. 겉으로는 강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경옥 씨는 여전히 가슴 한편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반면 강호 씨는 이미 첫 만남 때부터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 가는 대로 밀어붙였다. 연애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경옥 씨 집에 인사드리러 갔다. 예비 장인은 영 못마땅해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당시 강호 씨는 트럭 운전 일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백수나 다름없었다.

이강호·정경옥 부부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어른들께 인정받지 못하는 사이 일이 벌어졌다. 경옥 씨 배 속에 애가 들어선 것이다.

(남편) "여전히 장인어른은 반대하셨지만, 저는 개의치 않고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애까지 들어선 마당에 장인어른도 어쩌겠어요. 결국 결혼식장에는 딸 손 잡고 들어와 주셨습니다. 하하하."

(아내) "신혼여행으로 경주에 갔는데 제대로 구경도 못 했죠. 제가 입덧을 심하게 했거든요."

강호 씨는 결혼 후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지금까지 한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학·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1남 1녀를 둔 부부는 젊은 시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경옥 씨는 우유 배달·분식집 일을 악착같이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는 취미생활을 함께 즐기면서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프로야구 관람하면서 한 컷 찰칵.

(남편) "출·퇴근용으로 120만 원짜리 자전거를 샀어요. 아내한테는 60만 원에 샀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래도 비싸다며 구박을 엄청나게 받았죠. 1년 정도 지나고 나자 아내도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어요. 60만 원도 비싸다더니 자기는 250만 원짜리를 샀어요. 어쨌든 그때부터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는 등 곳곳을 다녔죠. 집사람이 허리가 안 좋아서 수영도 하게 됐는데, 저 역시 끌려가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딜 가든 집사람이 옆에 없으면 이상할 정도지요."

부부는 지난해 결혼 30주년을 맞았다. 젊은 시절 청혼 없이 정신없이 결혼식을 올렸었다. 강호 씨는 그런 미안함에 30주년 기념일에 '장미 30송이와 현금 30만 원'을 선물했다.

(남편) "긴 생머리에 반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머리카락 짧게 못 자르게 합니다. 예전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한 번 더 살아볼까' 고민 중입니다. 하하하."

(아내) "제가 뭔가 새로운 일을 할 때 남편은 '잘할 수 있잖아'라며 늘 용기를 북돋워 줬어요. 31년 전 그때 나를 찍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다음 생에서는 제가 좀 더 준비된 여자가 되어, 저보다 덜 준비된 이 남자를 키워보는 재미를 느끼고 싶네요. 제가 조금만 응원하면 더 클 수 있는 다재다능한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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