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에서 꼴찌 되더라도 할 말 있었다

“저는 6·4 지방선거 무소속 기호 4번 허상탁입니다. 겨우 3%, 1만 4468표…. 꼴찌로 참패했습니다만 저를 선택한 3% 시민을 위해 그 대변인 역할을 하려고 오늘 창원시장 당선인께 부탁하고자 하오니 적극 반영해 주십시오. 우선 많은 지지를 받아 당선된 것에 축하합니다. … 도시철도를 건설하면 창원의 재앙이 될 것입니다. 가장 넓은 도로의 8차로 가운데 2.5차로를 제하고 나면 과연 소통될 것 같습니까. 합포구 같은 곳은 4차로에 2.5차로를 제하고 나면 과연 소통할 수 있을까요. 교통체증의 원인이 자차 증가 때문인데 도시철도 꿈의 트램 철도라는 게 생긴다고 자차를 버릴 분이 단 한 분이라도 있겠습니까. 수요예측 또한 뻥튀기임은 인근 김해뿐만 아니라 용인 의정부의 경우를 보더라도 뻔하지 않습니까. 별스런 안전망도 없이 시속 70㎞ 이상 달리는 텅텅 빈 기차는 기가 찬 기차가 되어 창원의 안전과 재정을 괴롭힐 것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6·4 지방선거 창원시장 후보 허상탁 씨가 안상수 당선인에게 보낸 민원 중.

“탁 탁 허상탁 4번 타자 허상탁.”

지난 6·4지방선거 기간 동안 창원 시내를 누비며 외쳤던 구호다. 선거가 끝난 지 1주일이 지나고 인터뷰를 했지만, 의외로 주변에서 이 구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선거 기간 중에도 창원시장 선거를 챙기던 기자가 “너무 천재여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보통 사람은 성사 가능성이 없다고 보면 바로 포기하는 데 그는 이상이 아니라 집착하고 이루고자 애쓰는 것이 범인과 다른 것 같다”고 얘기했다. 

사실 선거에 나와 떨어지는 사람이 당선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당선 가능성하고는 거리가 먼 후보도 많다. 창원시장 후보로 나선 허상탁(61) 후보도 그런 부류에 들어간다. 더구나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었다. 4년 전 통합 창원시장 선거에도 출마했다. 그때는 사실 그의 종교 포교에 더 방점이 찍혔다. 그가 4년 전 선거가 끝난 뒤 교회 소식지에 게재한 글을 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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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하는 허상탁 전 창원시장 후보(왼쪽)./김구연 기자

“울메나 싸노 108만 명(창원/마산/진해)한테 한꺼번에 전도하는데, 마산시장만 해도 1000만 원인데 세 개(마산, 창원, 진해)에 천만 원이라니 이것보다 싸게 메키는 게 없다. 30년간 수 십 만장의 전도지에다 수백 개의 현수막을 맹글어 달아봤지만 천리교 인지도를 올리는 게 쉽더냐”며 가족을 설득했단다. 그래 서울서 직장 다니던 딸이 마이너스 통장으로 만들어 준 1000만 원으로 겨우 공탁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출마해서 600여만 원을 써서 선거운동을 했지만 낙선했다. 이번 선거 출마는 아내나 자식들도 외면했지만, 그의 아내는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선거 사무장을 맡아줬다. 4년 전 겨우 5505표를 얻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선거에서 얻은 3%, 1만 4468표는 정말 대성공이다.

지난 11일 밤 그의 교회이자 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아무래도 선거 이야기가 중심이 됐고, 그가 제시한 핵심 공약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2시간 인터뷰했는데 한 시간 이상을 공약 설명을 들어야 했다. 중간에 말을 자를 수도 있었겠지만, 들을수록 일리가 있다는 생각과 정말 그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말을 자를 수가 없었고 고스란히 그의 얘기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본론은 그의 인생역정이었다.

자살을 결심하고…

그의 부친은 27살에 폐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그는 4살이었다고. 26살에 천리교를 알게 됐고 교회에 가면 그렇게 편해했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소도 먹여야 하고 들에 일도 해야 하는데 뭔 교회냐며 불호령이었다고. 그렇게 부친이 돌아가시고 천리교와 인연도 끊긴 듯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보니 그의 삶은 항상 빈곤하고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렁저렁 군대를 갔다 오고 부산에 정착(?)했지만 제대로 된 정착이 아니었다. 외사촌 형수 중매로 결혼해서 딸아이까지 생겼지만 그의 삶은 풀리지 않았다. 

“군대 갔다 오고 나서 해운대 동백섬 누리마루 그 앞에 절벽이 있는데 뛰어내려 죽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여러 가지로 괴로워하고 하고 있을 때 죽어야겠다 싶었지요. 그런데 죽기 전에 저 딸 하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키우겠지만 저 여자는 아마 다른 놈에게 안 가겠나 싶으니까 이상하게 마음 싸움이 되고 그런 거였어요. 그때 불현듯 아버지와 천리교가 생각나더라고요. 그전에는 종교에 대해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습니다. 그래서 아내보고 교회에 가보라고 했지요. 양가 부모님이 너그는 절대 못살 거라고 생각했죠. 내가 괴병이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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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상탁 전 창원시장 후보./김구연 기자

당시 그는 정말 막다른 골목까지 이르렀다. 

“그때 해본다고 했는데도 하나도 안됐습니다. 이런 장사도 해봐야겠다. 저런 장사도 해봐야겠다 했지만 할 때마다 안되더라고요. ‘신문이야’ 하며 가는 사람도 부럽고 비 오면 ‘우산이요’ 하며 가는 사람도 부럽고 하더라고. 어느 날 여름이니까 해운대에 사람이 많이 오니 거기 가면 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스케키 통을 멨습니다. 아이스케키 통을 빌려주라고 아무리 해도 선금을 걸어야 하니 안주더라고요. 사정사정해서 아이스크케키 통을 빌렸는데 11개밖에 못 팔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가져오면 사람들에게 앉아가지고 사세요 하고 그랬는데 나는 충분히 그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못하겠더라고요. 뭐를 할까 그러다가 극동호텔 앞에서 튜브 빌려주는 것 하면 되겠다 싶어서 그걸 하면서 집사람이 새댁인데 세워놓으니까 내 맘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그해 따라 날씨가 좋아 사람이 북적북적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내가 통닭 저걸 팔아볼까 생각하고 통닭 두 마리를 사와 가지고 기어이 못 팔고 타이어 맡기는 보관소에 하나 주고 한 마리는 아내와 같이 먹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좌절감에 빠지더라고요. 마음에서 불이 꺼지니까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마음의 불을 켜야 하는데, 이 세상에 등대가 있지만 내 마음의 불이 비칠 수 있는 등대여야지 꺼진 상태는 아무리 이 세상에 등대가 많고 가르침이 많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런 사정 속에서 그는 점점 이상하게 변해갔다. 말만 하면 쌍욕이고 예사로 주먹이 먼저 나가곤 했다. 굉장히 폭력적으로 되니 양쪽 가족들은 이혼을 은밀히 추진하기도 했단다. 처남이 미국이 있으니 미국에 보내려고 생각하는 그런 시점이었다는 것. 

“그때 우리 어머니께서 ‘니 친정에 가지 말고 천리교 함 가봐라. 천리교 거 가서 얘기도 들어보고 해라’고 권유한 겁니다. 아내가 천리교 가서 얘기를 듣고 아 인간의 나만 잘살려는 것이 아니다. 인연이 맺어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처음 맺었던 가정을 잘 안 꾸리면 자꾸 불행이 자손에게 연속으로 온다는 그러한 것을 듣고 거기서 마음을 천리교로 했죠. 자기는 강습만 3개월 받고 오는데 나는 아내가 받고 오면 내가 가야겠다 생각하면서 리어카를 하나 샀죠. 밤 장사해서 두 달 사이 600만 원 벌었습니다. 당시 600만 원이면 상당히 컸죠. 그 돈을 벌어 빚 갚고 천리교 가서 강습받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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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상탁 전 창원시장 후보./김구연 기자

밑바닥 삶에서도 꿈꾸었던 세상

밑바닥 인생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강습 받고 천리교 포교를 하겠다고 했더니 이미 천리교에 귀의한 아내마저도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그게 길이라고 생각하고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 개인용 텐트를 치고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그게 23년 동안의 움막생활 시작이었다. 처음 합성동에서 개인용 텐트로 시작한 마산 생활은 다음 해 5평짜리 움막으로 발전했다. 그 뒤 지금의 교회 자리인 합성1동에 10평짜리 움막생활까지 꼬박 23년을 움막에서 살았다.

“화장실도 없었어요. 아내더러는 시외버스 터미널 화장실 가라하고 아이들은 요강에 대소변 받아내고 그랬죠.”

이 시절 얘기는 그의 아내 손말순(59) 씨의 말이 더 절절했다. 

“3년을 넘게 수제비만 먹고 살았어요. 3㎏짜리 밀가루 한 포대 사면 4일을 먹었어요. 하루 두끼씩 해서. 수제비 끓일 나무가 있나요. 터미널 주변 행상들이 버리는 사과상자 아이 아버지가 주워오면 그걸로 불 때서 수제비 끓여 먹곤 했죠.”

그런 삶 속에서 그는 소중한 철학을 건져 올렸다. 

“돈을 벌어야 하는 건 남보다 잘해야 하고 남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건데 나는 살아오면서 항시 뒤처지는 느낌이었는데 그걸 포기하고 보니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렇게 정말 끝까지 간 밑바닥 삶 속에서도 그는 꿈을 꾸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지 않으며 나누려는 세상. 그건 그의 종교와도 끈이 닿았으며, 그의 철학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 출마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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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상탁 전 창원시장 후보./김구연 기자

“저는 시장이 됐더라도 극빈층인 하위 10%를 위한 정책을 펴려고 했습니다. 이제 다 꿈같은 얘기지만요.”

그 꿈의 배경은 이렇다. 하위 10%의 땀과 눈물을 진정으로 닦아주고 그들이 외로워서 괴로워서 자살해야겠다는 생각 안 할 수 있게 사회가 배려해준다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잘 살 거라는 거다. 

사실 그는 이런 생각을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실천해왔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창원 마산 진해 사이를 오가는 시내버스는 많았지만 시 경계를 넘을 때면 안내양이 버스 안을 돌면서 추가 요금을 거뒀다. 시민은 내가 창원시민이니 진해시민이니 마산시민이니 이런 생각 없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 시내버스는 유독 경계 지으며 추가 요금을 받고 있었던 것. 이것을 보다 못한 그는 3개 시에 민원을 냈지만 한결같이 조례가 없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백방으로 뛰어 결국 3개 시와 시의회가 합의하고 시내버스 요금을 단일화하게 됐다.

“단일화 전에 시내버스 요금은 570원이었는데 단일화 하고 나니 요금이 700원으로 오르더라고요. 그건 지금까지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동마산IC부근 공터를 공원으로 만들어 시에서 관리하게 했다거나 합성동에 노천 풀장을 시에서 설치하게 했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은 그의 공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했을 때는 직접 편지를 썼다. 지금까지 전라도 사람이라고 외면하고 놀렸던 것에 대해 경상도 사람으로서 사과한다는 것이었고, 김 전 대통령도 화답했다. 이런 인연을 계기로 2002년 월드컵 때 상암 축구장 앞에서 1주일간 기도도 했다. 8차로 도로 옆에서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큰 펼침막을 걸어놓은 채. 그리고 1993년 대전 엑스포 때는 대전에서 100일 동안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기도도 혼자서 했다. 

“비록 큰 성과는 없었지만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정말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내가 창원 마산 진해 통합 시장만 된다면 종교간 지역간 계층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자신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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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상탁 전 창원시장 후보./김구연 기자

창원 도시철도는 절대 안돼

정말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고, 60평생 살아오면서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이나 카드 하나 없이 살아온 그가 17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밑 빠진 독에 들이부어야 하는 선거에 왜 두 번이나 출마했을까. 한 달 수입이 100~150만 원 남짓하다는데. 더구나 그 1700만 원마저도 선거운동 하다 보면 정말 아끼고 아껴야 이룰 수 있는 한계인데다, 죄다 빚으로 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처음 출마는 사실 반반이었다고. 자신의 꿈을 펼치려고 하는데 가족부터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려니 종교 핑계를 댈 필요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종교 포교 목적도 아예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딸이 마이너스 통장으로 마련해 준 1000만 원을 포함해 1600여만 원을 날려먹고도 다시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이나 주변 반응은 안 봐도 짐작된다. 

하지만 그는 출마했고, 보기 좋게 낙선했다. 출마한 가장 큰 이유는 창원 도시철도는 절대 안 된다, 막아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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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상탁 전 창원시장 후보./김구연 기자

“도시철도 저것이 탁상공론에 의해 생겨지는 것 같아요. 저걸 반드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다른 후보 얘기 들어보니 막을 의지가 별로 없고, 재검토한다거나 장래를 봐서 해야 한다는 건데, 나는 도시철도 저게 생긴다면 창원에 재앙이라고 생각했죠. 창원 시내 제일 넓은 도로가 8차로인데 그중에서 크게는 3차로까지 할애해야 하는데, 평균 2.5차로라 보더라도 안전망도 별로 없이 달리면 괴물기차입니다. 합포구 같은데는 4차로 도로인데 2.5차로를 할애하면 남는 도로가 없됴. 애물 철도가 됩니다. 버스나 택시를 확충하고 체계를 개편해야지 아직은 창원에 도시철도는 시기상좁니다. 창원이 서울보다 더 넓고 인구는 적어요. 인구 밀도 높아야 수요 많은데 인구밀도는 서울의 1/10밖에 안 되는데 도시철도가 생긴다는 것은 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인근 김해시의 경전철을 보면서 더 굳어졌다.

“국책연구기관의 수요예측 보면 뻥튀기가 많아요. 대전이나 대구 같은 데 지하철 2호선 수요예측 보면 80만 명까지 이용한다는데 현실은 아니거든요. 인근 김해나 용인 같은 데도 수요예측이 잘못돼 빚이 1조 원대 이상 올라갔는데 우리 마산이라고, 도시철도라 해서 안전하지 않다고 봅니다.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는 시간을 50분대로 보고 있는데 50분 내에 주파하려면 최소한 시속 70~80km로 달려야 합니다. 철도 건널목이라는 것은 안전에 대한 의미가 크거든요. 기차가 오기 한참 전부터 딸랑딸랑 울리면서 통행을 막을 정도인데 그런 안전망도 별로 없는데다 신호체계도 일반 버스 신호체계와 다르게 이뤄져야 하는데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너무 심각한 문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도시철도만은 어쨌든 막아야 한다 생각하고 이번에 나간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대처 못한 정부에 분노

그뿐 아니다. 세월호 문제도 그의 출마를 부추겼다. 

“가라앉은 배도 인양해서 띄울 수 있는데 가라앉고 있는 배를 만 하루 동안 가라앉지 못하도록 작전 한번 펴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떠 있는 배는 4000톤이라도 40톤만 있으면 못 가라앉게 할 수 있어요. 물줄기를 뿜으며 공기가 빠져나오고 있으면 곳 가라앉는 건 시간문젠데도 그게 한 시간도 아니고 30시간 가까운 시간을 띄워놓고 작전 한번 안 펴봤다는 겁니다. 군함들이 와서 로프를 이용하든지 해서, 나중에 침몰할 값에 헬기를 띄워 못 가라앉게 임시처방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도 그런 작전이 없었습니다. 이는 군 미필자들이기 때문에 가능했죠. 대통령부터 주위 측근들조차도 그런 작전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리된 겁니다. 저는 이거를 가라앉힌 총괄책임은 해경이 질 것이 아니고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봅니다. 노력하다가 침몰하는 것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속수무책으로 있다가 퐁당 가라앉힌 거하고 같을 수 없습니다.”

그는 진도 팽목항에 3박 4일간 기도봉사를 갔다 왔다. 그의 얘기로는 진도 팽목항에 슬픔보다는 분노하고 절규밖에 없었다. 이 분노와 절규를 침몰하도록 방치한 정부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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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상탁 전 창원시장 후보./김구연 기자

특히 이번 사고에 대한 야당의 대응도 화가 난다고 했다. “야당이 제대로 된 야당도 아닙니다. 가라앉고 나서 정부가 우왕좌왕했다거나 언론이 이런 저런 오보로 사태를 왜곡했다는 것은 사후 얘깁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총괄적인 정부 책임론이 아니라 ‘왜 가라앉지 않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은 야당도 함께 져야 할 문젭니다.”

18대 국회 마지막 회기인 임시국회가 2012년 5월 2일 열렸다. 이날 해운항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것. 하지만 문제는 운항 책임자가 과적하면 안 되고 적재한 화물은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야 하는데도 이러지 않았을 때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번 사고에도 책임자를 벌 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일부러 알고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세심하게 따져보고 생길 수 있는 문제는 없는지 고심했어야 했는데 임기 마지막 국회다 보니 그러지 못한 게 결과적으로 이런 사고를 불렀습니다.”

세월호 참사 여파는 그의 득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통령이 눈물 좀 흘렸다고 우리 같은 군소 후보들 지지자들을 빨대로 빨아들이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에 손을 흔들어보니 정말 많은 사람이 호응도 하고 했는데 나중에 대통령 눈물 흘리고 나서 쫙 빨려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싶다

그가 꿈꾸는 새바람은 무엇일까?

“세월호 이 문제에 대해 이러한 정부·여당 시스템이라면 정부·여당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참패한 상황이니 할 말이 없지만 당시만 해도 새바람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물로 내려온 사람은 정부·여당이나 청와대에 인맥정치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인맥정치라는 것은 결국 말하면 청탁 사과 상자와 같은 거거든요. 인맥정치 하면서 청탁 사과 상자 들여놓는 것고 같은 건데 새바람이 승리한다면 대 사건이죠. 정치에 큰 경종 줄 수 있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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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상탁 전 창원시장 후보./김구연 기자

그런 새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소망이 단순히 선거에서 졌다고 꺾일 수 있을까?

대놓고 물었다. 선거병 그거는 약도 없는 고질병인데, 혹시 감염되지 않았느냐고. 일단은 손사래 친다.

“모르겠어요. 창원에 도시철도 삽을 뜬다면 내 몸으로라도 막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선거는 두 번 다시 나서고 싶지는 않네요. 그때 가서 도시철도 같은 재앙이 될 만한 이슈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종교인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역할에 충실해야죠.”

인터뷰 동안 밖에 나가 있었던 그의 아내가 인터뷰 마무리쯤 해서 옆에 와 있다가 이 얘기가 나오자 울컥하며 눈물을 보였다.

“정말 어렵게 살았지만, 이이의 뜻이라면 다 들어 줬어요. 하지만 선거는 안됩니다. 선거 끝나고 마을 사람 중에 이이에게 ‘선거는 삼세번’이라는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내 평생 그렇게 나쁜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정말 욕을 했습니다. 다시 선거에 나선다면 이혼할 거예요.”

하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그의 집을 나서는데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요구했다. “기자라면 도시철도가 무엇인지 문제는 없는지 끝까지 파헤쳐서 재앙을 막아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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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상탁 전 창원시장 후보./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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