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의 미래를 찾아] (5) 구미단지의 변신

구미국가산업단지는 창원보다 먼저 구조 고도화 사업을 진행했다.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할 곳이다. 혁신산단 사업은 창원과 나란히 구미에서도 추진된다. 앞으로 선의의 경쟁으로 각기 다른 색깔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조 고도화 사업의 선배 격인 구미에서 창원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경지역본부 구조고도화추진단 김진영 과장(경제학 박사)과 사원 한정수 씨의 도움을 받아 구미산단의 구조 고도화 사업, 그 성과와 과제를 들어봤다.

오래된 1단지 구조 고도화

구미로 들어서자 커다란 수출산업의 탑이 눈에 들어왔다. 구미산단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산업단지 골목 한편에는 빈 호텔 건물이 스산하게 방치돼 있었다. 구미산단도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미산단은 1·2·3·4단지가 있다. 산업단지가 여러 개여서 도시 전체에 딱히 중심이 없단다. 산단을 조성하면서 신도시가 생긴 형태로 산단을 낀 부도심이 많다. 그래서 산업단지 안이지만 중심상가지역이 있고, 커피숍·스포츠센터·영화관·재건축된 아파트도 볼 수 있다. 주거단지와 공장지대가 구분된 창원산단과는 다른 모습이다. 민원이 적은 전자산업이 주력 업종이라는 점도 산업단지와 주거지가 어우러지게 한 이유다.

최근 만들어진 2·3·4단지는 공원이 넓게 퍼져 있고 고층 아파트 등 주거시설도 함께 있다. 2단지에는 공장을 지을 때 산을 깎아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4단지에서는 2012년 불산 누출 사고로 수많은 주민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동락공원 구미과학관에서 본 구미국가산업단지 3단지 일부. 비교적 최근 만들어진 단지여서 공원 등 녹지 공간이 주변에 많은 편이다. /박일호 기자

구미산단 구조 고도화 사업은 가장 오래된 1단지에서 이뤄졌다. 2009년 구조 고도화 사업 시범단지로 지정됐고, 2010년 11월 사업계획을 승인받아 2013년 6월까지 사업이 이어졌다.

모두 6가지 사업이었다. 산업단지공단은 사업비 3161억 원으로 △집적화단지 조성 △전자의료기기 생산단지 △체육시설 개선(오래된 운동장 리모델링)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벌였다. 지자체는 105억 원 예산을 들여 △공단특화거리 조성(상가 간판 정리·쌈지공원·지하도 개보수) △자전거 거점도시(자전거도로 개설) 사업을 마쳤다.

이 중 2506억 원이 투입되는 주거환경 개선 사업만 마무리되지 못했다. 입주업체의 낡은 기숙사 아파트가 있는 터에 3300가구 주거시설을 확충하는 내용인데, 사업 규모가 커 업체 의견을 수렴하면서 계획을 만드는 단계다.

공장 디자인이 비슷한 이유

㈜미래티앤에프와 위드시스템 주식회사. 서로 다른 회사이지만, 두 회사 건물은 구미 1단지 한편에 쌍둥이처럼 들어서 있다. 한 공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 터를 새로 조성해 건물을 지으면서 디자인 통일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주변 공장도 디자인이나 높이에서 비슷한 모양이다. 도롯가에는 주차하지 않고 공장 내부에 주차 공간을 둔 모습이다. 1단지 내 산학연 융합단지의 한 풍경이다.

융합단지 안 위드시스템 주식회사와 ㈜미래티앤에프 건물 모습. 디자인이 비슷하고 건물 사이 담장이 없어 간판만 떼면 한 공장인지 헷갈린다. /박일호 기자

집적화단지 조성과 전자의료기기 생산단지는 '산학연 융합단지' 사업으로 한 구역에서 동시에 추진됐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가 터져 대우그룹이 부도를 맞고 남긴 땅이 1단지 안에 있었다.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법정관리 중이던 ㈜대우일렉트로닉스 터였다. 공장 1개 동만 가동 중이고 나머지 건물은 철거된 상태였는데, 36만 5013㎡(11만 평) 터 매각이 난항을 겪었다. 결국 이 땅을 산업단지공단이 사들여 융합단지 조성을 진행했다.

이곳은 지금 59개사의 새 터전으로 바뀌었다. 구미 1단지 총 면적은 1022만 3000㎡(309만 평). 1단지 안에 작은 일반산업단지가 만들어진 셈이다. 무엇보다 지역기업 업종 고도화가 목적이었다. 그래서 융합단지 분양 당시부터 업종은 5가지로 제한했다. 초정밀 금형, IT 융복합 소재, 그린에너지, 3D 디스플레이, 전자의료기기. 이들 업종의 집적화단지가 들어섰다.

현재 입주 기업들이 공장을 가동하거나 짓고 있다. 2159명 신규 고용 창출, 공장 신축에 따른 1231억 4500만 원 설비투자 유치라는 결과를 낳았다. 또 1단지에는 전혀 없었던 녹지 공간도 이곳에 일부 조성했다. 한 구역에만 공원과 녹지대 13곳을 조성해 녹지 비율을 7%까지 끌어올렸다.

융합단지 안에는 R&D(연구개발) 터도 마련했다. 경북도, 구미시, 금오공대 등과 전자의료기기 부품소재 국산화를 위한 사용화지원센터를 건립하고, ICT(정보통신기술) 금형 시제품 제작센터 등 특화 업종 중심 R&D 센터를 유치할 예정이다.

산단공 대경본부 한정수 씨

융합단지는 기존 공장용지 가격과 비교해 약 20% 싸게 기업들에 공급됐다. 분양가를 낮춘 대신 공장을 지을 때 강제할 수는 없었지만, 공장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한정수 씨의 설명이다. "공장 담장을 없애고, 도로 경계선에서 공장 벽이 2∼3m 정도 떨어지게 했다. 건물 디자인에도 통일성을 기했다. 빽빽하게 공장만 짓는 게 아니라 나중에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입주 업체 불만도 많았지만, 공장 건축 이후에는 자유롭게 드나드는 개방된 모습에 오히려 만족도가 높았다."

모여서 힘 발휘하는 기업들

융합단지 안 금형 회사들은 모두 건물 위에 주황색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 구미테크노밸리협동조합 소속 19개 회사다. 이들의 협동조합 설립은 대표적인 협력 사례다.

융합단지 입주 전부터 금형 미니클러스터(Mini Cluster)를 중심으로 업체들이 모였다. 19개사가 원하는 면적대로 구획을 나눴고, 공동 터도 분양 받았다. 이 터에는 회의장과 식당을 지어 함께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각 기업이 회의장과 식당을 저마다 둬야 했지만, 공동 장소를 쓰면서 건축 또는 유지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공용 R&D 시설도 추진 중이다. 이들은 도롯가에 주차하지 말자는 자율규제를 만들기도 했고, 단합을 다지는 족구대회를 열기도 한다.

한 씨는 말했다. "협동조합이 되어 공장 건축도 공동으로 발주하고, 모든 기기와 컴퓨터 등 사무용품, 장갑 등 제조할 때 필요한 물품까지 함께 수주한다. 이런 모습이 '을의 반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업 혼자서는 어려웠던 은행 대출도 협동조합으로 해결하는 모습이다. 사업 초기에는 단지 조성이나 건축 등 하드웨어만 잘하면 된다고 여겼는데, 금형 협동조합 사례는 단지 안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협력 등 소프트웨어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구성원 이견 조율이 관건

지난해 6월 '창조도시 구미행복산단 정책토론회'가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구미산단 구조 고도화 사업이 주제였는데, 구미소상공인연합회와 금속노조 구미지부 등은 당시 "이 토론회는 구조 고도화 민간대행사업자로 신청한 KEC의 사업 계획을 홍보하는 자리"라며 "역외탈세 기업인 KEC에 특혜를 줘 노동자, 상인 생존을 위협하는 구조 고도화는 안 된다"고 반대 뜻을 밝혔다.

이런 선례는 구조 고도화를 비롯한 혁신산단 사업이 내부 구성원의 이견 조율에 달렸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한 사업을 추진하면 땅 주인, 입주기업, 일하는 사람들, 주변 상인들의 이해관계를 모두 따져봐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려면 산업단지공단과 지자체, 입주기업은 예산 확보부터 사업 추진 과정까지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

김진영 과장은 "공단과 지자체, 입주기업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사실상 공단 주도로 해왔는데, 이번(혁신산단)에는 큰 사업은 지자체와 함께하고, 민간 참여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김 과장은 "구조 고도화 사업은 관리 기관만 주도해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토지를 소유한 개별 사람들도 참여해줘야 한다"며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투입돼 민간 참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제공돼야 하는데, 아직 그게 제도적으로 안 돼 있다"고 짚었다.

구미는 이제 혁신산단과 노후 산단 재생사업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시행계획을 수립해 올해 말 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융합단지'도 R&D 등 기업지원 시설 유치는 부족했고, 문화·체육·정주시설 등이 없어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이나 청년층 유입 등으로 이어지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또 경운대, 구미대, 금오공대, 영진전문대 등 지역 4개 대학이 참여하는 경북산학융합지구와 모바일융합기술센터 등은 융합단지 밖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다. 융합단지 안에 들어와 이름대로 산학연의 시너지효과를 내야 하는데, 지금은 분산된 모양새다. 이런 문제도 혁신산단 추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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