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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솔숲에 안기니 무더위도 '잠시만 안녕'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 기행] (4) 경북 포항

김훤주 기자 pole@idomin.com 2014년 07월 15일 화요일

똑같은 풍경이라 해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6월 25일 창원서 두 시간 남짓 달려가 만난 경북 포항 북송리 북천수는 흥건한 논물에 발을 담근 벼포기들을 들머리에 베풀고 있었다. 농사짓지 않는 보통 사람들 보기에는 이 논 저 논 다를 바 없는데, 그 차이를 금세 알아채는 사람이 있었다.

오른쪽은 물이 흐려져 있었고 왼쪽은 씻은 듯 말간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얘기를 듣고 '그렇네! 왜일까?' 궁금해하는 차에 답까지 말해준다. "손김을 맸지 싶은데, 그렇게 맨 지가 얼마 안 됐기 때문"이라고. 볏잎 짙어진 푸른색을 보니 뿌리 내린지 열흘은 넘었음직 싶은데, 녀석들 아랫도리가 무척 시원하겠다.

농로를 따라 걷는 앞쪽에 북천수가 보인다.

흥해읍 북송리 마을숲 북천수는 그렇게 다가왔다. 소나무 단일 숲으로는 우리나라 으뜸이지 싶은데, 곡강천 따라 길게 늘어선 첫머리는 바로 흥해서부초등학교다. 2층짜리 조그만 학교는 소나무를 정원수로도 울타리로도 삼았다. 흥해초교 아이들은 정말 복받았다. 교실서 공부하다가도 고개만 살짝 돌리면 멋진 솔숲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소나무가 일러주는 곱고 차분하고 조용한 심성을 체득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소나무 숲인 북천수를 걷는 일행들.

일행은 흥해서부초교를 지나 곡강천 둑으로 올라가더니 얼마 안가 솔숲으로 쑥 들어간다. 천변에는 유치원 아이들이 놀러나와 있고 가장자리에는 텃밭 가꾸는 아낙이 고개도 들지 않고 일하는데 솔숲은 자기 품으로 안겨들어온 이들에게 그늘 한 자락 바람 한 줌을 천천히 건넨다.

솔갈비가 수북하게 쌓인 바닥에는 소나무 피톤치드가 제 몫을 하는지 풀도 드문드문하고 나무는 아예 없다. 덕분에 거치적거리는 데가 없어 걷고 뛰고 거닐기 좋았다. 바람은 때맞춰 다시 곡강천을 건너와 솔숲 한가운데서 잠시 숨을 골랐다가 빠져나가는데, 살짝 돋은 땀방울이 그 새 보송보송 마르고 말았다.

평상에 잠시 앉았다가 가까운 형제농원 밥집에 들어갔다. 점심으로 먹은 순두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하얀 색깔이 매우 고왔는데 우리 콩을 손수 갈아 내온다고 했다. 나무 키우고 조경하는 사업까지 겸하고 있어서 밥 먹은 뒤에는 갖은 나무가 있는 뜨락도 둘러보고 몇몇은 매실도 제법 따올 수 있었다.

달전리 주상절리를 바라보는 일행들.

달전리 주상절리는 바닷가에 있지 않다. 조그만 개울이 흐르는 산중에 있다. 주상절리라 하면 제주나 울산이나 경주를 떠올리며 죄다 바다에 있지 산에도 있을 수 있다 여기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여기 달전리 산중 말고도 전라도 광주 무등산에도 꽤 이름난 주상절리가 있는 것이다.

주상절리(柱狀節理)는 규칙적으로 갈라진 기둥 모양 바위인데 지각을 뚫고 솟은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다. 달전리 이 녀석은 높이 20m 너비 100m라는데 왼쪽은 수직에 가깝게 서 있지만 오른쪽으로 갈수록 수평에 가깝게 드러눕고 있다. 앞자리에 서면 백만년 전 시공으로 돌아간 듯하다.

사람들은 별난 모습도 좋지만 실은 꽃들 피어나는 모습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가지런히 펼쳐진 주상절리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더니 이제는 개망초꽃 수북한 데로 들어가 사진 찍기 바쁘다. 이런저런 설명보다 한바탕 즐기고 누리는 것이 좀더 확실하게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법이다.

돌아나오는 논두렁에서는 개울 건너편 바위절벽에서 마애비를 찾아내고는 얘기를 몇 마디 덧붙인다. 얼핏 보니 '행공조참의(行工曹參議)' 따위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행(行)'은 '그에 맞먹는' 정도 뜻이라 한다. 어쨌거나 여기 마애비는 옛적 여기가 지금처럼 한적한 논두렁이 아니라 발길 잦았던 한길이었음을 일러준다. 남들한테 보이려고 홍보 목적으로 애써 만드는 빗돌이니까 말씀이다. 어쩌면 조선시대 10대로 가운데 하나였던 흥해로가 이리로 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화산시대를 떠나 인간 선사시대로 나온다. 좁다란 골짜기 칠포리 암각화다.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에는 실패 꾸러미 또는 방패 또는 가면 또는 칼 손잡이 같은 무늬가 여럿 새겨져 있고 동심원과 알구멍(性穴)도 많다. 새기는 도구조차 변변찮았을 옛날,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을까? 열매 따고 짐승 잡고 농사 짓고 하는 대신에 새겼을 암각화는, 식량 마련만큼 또는 그보다 더 절실한 무엇이 있었음을 일러준다.

우주만물이 제멋대로였던 그 시절 어떤 절대존재 마음에 들도록 하는 일이 더욱 절실했을 수도 있고 집단의 능력을 뒷받침하는 생산력·노동력이 절실했을 수도 있겠다. 바위에 새겨져 있는 것은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그런 절실함이다. 지금 저런 바위가 다시 주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새겨넣게 될까?

돌아나오는 길에는 암각화 나들머리 생선 말리는 자리에서 고등어 새끼·꼴뚜기·멸치 따위를 샀다. 올라갈 때 거기 널린 것들 슬금슬금 집어먹기에 그리 하지 마십사 말렸더랬다. 민폐라 여겼기 때문인데, 살 물건 미리 맛보는 것이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꾹꾹 눌러 수북하게 담은 한 상자가 만원이었고 그렇게 산 사람이 스물은 넘었지 싶다. 뜻밖에 누리는 즐거움이란!

칠포해수욕장에 달려가 물결 밟기를 하는 모습.

칠포해수욕장에는 칠포리 암각화에서 금방 가 닿았다. 사람들은 세 패로 나뉘었다. 달려가 물결 밟기를 하더니 결국은 바닷물에 뛰어드는 축이 있고 이들 모습을 구경하는 축이 있고 적기는 했지만 동해안 으뜸이라는 칠포해수욕장 모래밭을 걷는 축도 있었다. 하지만 버스 다시 탈 때쯤 해서 막걸리나 맥주로 시원함을 더하는 데는 그런 구분이 있지 않았다.

칠포해수욕장은 곡강천 끄트머리에 달려 있다. 곡강천이 바다에다 펄 대신 모래를 내민 덕분이다. 동해는 이런 모래가 흩어지지 않도록 하고 안으로 석호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모래밭 위로는 솔씨가 내려앉아 솔숲을 만들었다. 첫 순서였던 북천수도 곡강천 덕분에 생겼으니, 곡강천이 없었다면 포항은 이래저래 무척 빈약하겠다.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에서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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