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뜬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몇 번이나 거울을 보며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려고 머리를 올려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보지만 세월의 흔적을 가릴 수 있으랴.

부산대 앞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하던 딸 아이에게 엄마가 다녔던 대학을 보여주는 것도 교육적으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며 날씨 좋은 날을 잡아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딸 아이를 핑계 삼아 20년 전으로 시간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내가 더 들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경전철과 지하철을 번갈아가며 세 번이나 환승하면서도 힘들기는커녕 1호선 지하철이 동래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올 때 여전한 풍경은 옛 추억을 하나씩 떠오르게 했고,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첫사랑 애인이라도 만나는 양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1995년도에 신입생이었으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건만 마음만은 새내기 대학생인 듯 흥그러워졌다. 딸 아이 역시 그런 엄마의 기분을 맞춰 주려고 유난히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나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었다.

우린 모처럼 둘도 없는 다정한 모녀가 되었다. 서로를 바라보고 다정하게 웃으며 지하철 1번 출구로 나와서는 학교로 가는 셔틀 버스에 오르려 하는데 요 녀석이 옷자락을 잡아끄는 게 아닌가?

그랬다. 딸 아이가 가고 싶었던 곳은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앞이었던 것이다.

딸 아이는 남포동이나 서면을 돌아다니듯이 부산대 앞 문화와 쇼핑이 궁금했던 것이니 이런 동상이몽도 없으리라. 아이와 모교를 거닐어 보겠다는 엄마의 욕심과, 학교는 관심도 없고 눈앞에 펼쳐 있는 먹거리와 쇼핑센터에 눈이 휘둥그레진 딸 사이에 예기치 않은 갈등과 긴장이 잠시 흘렀지만 어쩌랴. 사춘기 외계인을 지구인이 어찌 설득할 수 있겠는가. 하는 수 없이 이번 첫 여행은 모교 정문 앞까지만으로 합의를 보는 수밖에….

우여곡절 끝에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몇 군데 맛집을 탐방하고 쇼핑을 하고 돌아오면서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했다. 양손에 쇼핑몰 봉지를 꼭 쥐고 대단히 만족스럽게 잠든 딸 아이를 보면서, 기어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서운한 마음보다는 다른 정체 모를 감정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학교 앞 풍경은 놀거리 먹거리가 많았지만 이번 여정에서 학교 앞은 너무도 낯설기만 했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는 정문 앞에 전공 서적을 높이 쌓아둔 여러 개의 서점이 있었고, 그곳을 드나들던 적지 않은 학생이 있었다. 지금은 서점 하나만이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고, 정문 앞에서 지하철역까지 그 방대한 거리엔 대학 문화를 알 수 있는 흔적이 없었다.

서점이나 소극장이 아닌 여기저기 정체 모를 다양한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쇼핑몰로 넘쳐났다. 세월이 흐르는데 변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화려한 변화보다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